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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랙빈 Jan 04. 2024

블랙빈에게 쓰다

28 애도


우리에게는 시공간의 한계를 추월해 애도와 사랑을 표현하는 새로운 단어가 필요하다. 아마도 우리는 세포 단위로 서로를 매일 다시 만들어내는지도 모른다. 기억을 통해서, 이야기를 통해서, 예술을 통해서. (p160)


애도는 주로 사랑하던 사람의 죽음(사별)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모든 의미 있는 상실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을 일컫는다. 애도의 지배적인 기분은 고통스러운 것이고, 이러한 기분은 외부 세계에 대한 흥미의 상실, 상실한 대상에 관한 기억에의 몰두, 새로운 대상에게 투자할 수 있는 정서적인 능력의 감소 등을 수반한다.(네이버 지식 백과 중에서)


사라진 것에 대한 상실감에서든 떠난 것에 대한 미련에서든 ‘애도哀悼’라는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뜻은 슬프고 또 슬프다는 것이고, 그 감정 또한 소멸에서 오는 슬픔이 지배적이다.


가져보지 못한 것에 대한 잃어버림이 아니라 소중하게 가지고 있던 것에 대한 놓쳐버림이다. 관계가 소원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유로 끊어지는 단절에서 오는 공백상태가 만들어내는 공허함의 슬픔이 아픔으로 전환되는 것이  ‘애도’라고 여자는 생각한다.


낸시의 수제자 필립 하워드의 말처럼 환영받지도 못하는 손님처럼 오는 ‘애도’는 처치 곤란한 귀찮은 탄원자이고 좀처럼 떠날 생각이 없는 미운털 박힌 삼촌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살아가면서 누구나 맞게 되는, 맞을 수밖에 없는  손님이고 꽤 여러 번 상대해야 하는 불편한 존재인 것이다. 한마디로 애도는 모든 사람들을 빈자리에 앉게 만들고 그 자리를 보게 만든다.


그 빈자리. 그 자리에 앉는 일과 보는 일에 절대적으로 의연해질 수가 없다. 사건 사고를 겪으면서 혼자가 아닌 단체를 넘어 범 국민적인 애도의 시간을 가지면서 그 시간의 무게가 슬픔을 넘어 아픔이 되면서 여자는 불안하다.


살아가는 동안 사랑하고 사랑받으면서 살았다는 것도 알고 ‘자신’이라는 존재가 필멸의 존재인 것도 안다. 무엇보다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았던 모든 것들을 떠나보내는 연습을 해야 하는 것도 안다. 알지만 애도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 빈도가 많아지는 것에 불안해하고 그 불안이 자신을 갉아먹을까 봐 겁낸다. 슬픔이 아픔이 되는 과정이 여자에게는 쉽지 않고 또 연습되지도 않는다. 해서 ‘애도’는 부딪칠 때마다 더 아프고 더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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