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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의 Konadian Life Apr 07. 2024

유언장

한 장을

한국에 남기고 왔다.










1990년대 말 경에 갑자기 직장 동료를 통해  생명보험사 영업사원을 만나 난생처음으로 알게 된 종신보험이라는 상품을 소개받은 후  나의 미래를 생각해 보, 아내와 아이들이 만약 가장이 없는 상황이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가정을 해본 다음 내가 가족들을 위한 대비책으로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인 생명보험이라는 것에 가입했었다.



당시 외국에서 들어온 0000 보험사의 고객 모집책인 라이프 플래너라는 영업사원들이 담당했었는데, 나를 담당했던 플래너는 정말 친절하고 상세한 설명으로 나의 보험 혜택 내용을 알려주었고, 보험료 규모와 향후 보험 상품기간에 보험 가입액의 증액 및 사고 시 지급내역 등에 대해서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그때 내 나이가 30대였던 만큼 그다지 크게 생명보험에 대한 생각이 없었던 터라 당시 월급에 비해서 작지 않은 금액을 매월 납부해 넣기가 쉽지 않았지만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해서 보험가입을 결정했다. 그러고 나서 보험 가입조건 중에 하나였던 건강검진을 받은 후 마지막으로 보험가입을 승인해 주고 보험증권을 전달받았었다. 이때 플래너가 한 가지 특별한 내용을 제시한 것이 있었는데 바로 가족에게 유언장을 남기는 것이었다. 난 단순하게 생명보험 가입을 하면서 유언장을 작성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보험사에서 요구한 '유언장'이라는 것은 법적 효력을 다투거나 변호사와 상의한 다음 적법하게 작성해법률사무소에서 공증을 받아서 보관하는 것은 아니고, 만일의 상황이 생겼을 때를 가정해서 가족들에게 내가 남기고 싶은 말을 적어 놓는 정도의 수준이라서 심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감상 '유언장'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은 변호사 사무실에서 작성하는 것 이상으로 내 마음속에 와닿았었다.



내가 세상을 떠나고 남은 아내와 아이들에게 어떤 말이 위로가 되고 힘을 낼 수 있을지를 나름대로 고민하면서 유언장을 작성했었다.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낀다. 지금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내에게는 내가 없는 상황을 가정해서 내가 아내와 오랫동안 함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남긴 것 같고, 아들과 딸에게는 아빠가 세상에 없어도 엄마와 함께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내고 사회에 필요한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란다는 내용의 글을 썼던 것 같다. 가볍게 생각하면 별다를 것 없는 내용이지만 막상 세상에 내가 없는 시간에 가족들이 느낄 감정까지 생각하게 된 유언장. 지금도 그것을 생각하면 알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이 느껴진다.



지금은 0000 보험사가 한국 내 굴지의 대형 금융기관에 합병이 되었고, 그동안 시간이 많이 지난 만큼 나를 담당했던 당시의 라이프 플래너도 더 이상 그 보험사에 근무를 하지 않지만, 보험료는 다달이 한국에 있는 은행의 통장에서 자동으로 납부가 되고 있다. 인터넷 애플리케이션으로 조회를 해보니 앞으로 몇 년만 더 지나면 납부끝나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만 보험료 납부가 끝나게 되어도 종신보험이라는 상품 특성상 보험가입자의 가족들에게 보험이 지급되는 것이라서 직접 나에게 돌아오는 금액은 없다. 보험수령액이 많지 않다고는 하지만 그나마 나의 가족에게 내가 주고 갈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을 남기는 의미로 생각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언젠가 내가 없는 시간이 되어서 보험사에서 보험금을 지급할 때에는 내가 한국에서 25년 전에 작성해 놓은 '유언장'이라는 것을 남은 가족들에게 보여주게 될 것이고, 그것을 읽고 어떤 느낌을 받을지 아니면 어떤 표정을 할진 모르지만 아마도 나를 한번 더 생각하면서 아내와 아들, 딸이 슬퍼하기보다 나의 가족 모두가 얼굴에 미소를 띠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서 나이가 들어 늙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인생의 진리인 만큼 그것을 마냥 슬퍼만 하기보다 다소 시간은 걸리더라도 이별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남은 가족들이 떠난 가족을 가끔씩이나마 생각하면서 추억을 나누고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미 떠난 사람은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으니 말이다. 떠난 가족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만 간직해 줘도 감사할 것이다.



유언장에 대한 글을 쓰다 보니 캐나다에서 알게 된 이곳 문화중에 하나인 Memorial Bench가 생각났다.

Benchmark Program은 Edmonton 시에서 개인과 단체가 사랑하는 사람을 기리거나 도시공원과 열린 공간의 벤치에 기념 명판을 부착하여 특별한 경우를 기념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일정 기부금을 내고 기존의 벤치에 새로운 명판을 부착해서 10년간 유지시킬 수 있고, 기부금이 큰 경우에는 환경을 고려한 새로운 장소를 물색해서 새 벤치를 설치하고 명판을 부착할 수 있다. 캐나다의 많은 도시에서  시행 중인 프로그램으로(도시마다 프로그램 명칭은 다소 다를 수 있다. Calgary에서는 Commemorative Bench라는 명칭으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가족들이 평소에 고인이 좋아하던 장소나 의미 있는 공원의 한자리를 정해서 벤치를 설치하고 기념할 수 있도록 만든 프로그램이다. 만약 캐나다에서 유언장을 새롭게 작성한다면 벤치마크를 내용에 넣어 기념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가족들이 나를 생각하며 가끔은 벤치에 찾아와서 앉았다 가면 남은 가족들에게 작은 힘이라도 줄 수 있을듯한데, 물론 사후에 대한 나의 욕심이고 남은 가족들이 해결할 문제이니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을 따름이지만 말이다. ^^

(사진 : Whitemud Park 산책로에 위치한 Benchmark Program  의자, 피터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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