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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우영 Mar 22. 2024

마포 00 호텔 이야기 - 1

오래된 건물의 개보수로 호텔 만들기

"호텔과 모텔은 어떻게 다른 거야? "


여관이나 여인숙이란 간판이 거의 사라진 것처럼 지금은 모텔이란 간판도 찾기 어렵다. 규모가 작건 크건 대부분의 숙박시설은 00 호텔이란 이름으로 명찰을 달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디든 휴가지에 가면 자연스럽게 모텔이란 이름을 만나볼 수 있었다. 호기심 많은 초등학생 딸아이의 질문이었다.


건축법에서는 시행령의 별표를 통해 모든 건축물의 용도를 세분해서 정리해 두고 있다. 그 분류표는 건축행위의 모든 법규의 적용에 있어 우선적인 근거가 된다. 단독주택, 공동주택, 근린시설, 의료시설 등등 29가지로 건축물의 용도를 분류하고 있고 숙박시설은 그중 15번째 분류에 속한다.


사실 이것만 가지고는 모텔, 펜션 등등 우리가 접하는 숙박시설을 모두 알아채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관할하는 관광진흥법의 분류 내용은 우선 접어두기로 하자. 간단하게 호텔이란 분류는 

숙박의 목적과 함께 음식, 운동, 오락, 연수 등의 활동을 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고 보면 조금은 간단해진다.


모텔(Motel)이란 말은 Motor와 Hotel의 합성어로 말 그대로 자동차 여행자가 자동차와 함께 이용이 가능한 숙박시설이다. 1900년대 초 미국에서 시작되었는데 우리나라에는 7-80년대 지방의 농림지를 중심으로 무분별하게 설치되어 한때 환경 파괴의 주범이 되기도 했다.


"세상에 저것 봐! 호텔 객실이 훤히 보이는 통창이야"


수년 전 가는 해와 오는 해를 기념하는 카운트다운을 현장에서 보기 위해 강남 한복판 삼성역 사거리를 방문한 적이 있다. 인산인해, 수많은 인파 사이에서 발을 옮기기도 어려웠다. 여길 뭐 하러 나왔는지. 딸아이는 태어나 이런 들뜬 광경은 처음이라며 신난 표정을 지었다. 


10,9,8,7,6…. 카운트다운이 울리는 순간 올려다본 곳은 다름 아닌 호텔이었다. 24층 규모의 파크하얏트 서울호텔이었는데 객실 전체가 통창이었다. 가운만 걸친 숙박객들이 발아래 인파를 구경하고 있는 듯했다. 누가 누구를 구경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최소한 호텔에서 내려다보는 사람들의 여유는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강남 한복판의 호텔에 그것도 가장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은 그런 자부심이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모텔은 어딘가를 가기 위해 잠시 머무는 곳이다. 하루 중 잠깐 사용하는 대실의 용도인 모텔도 마찬가지다. 그곳이 목적지는 아니다. 하지만 호텔은 다르다.(건축법이나 관광진흥법의 용도 분류와는 다른 암묵적인 문화의 해석이 있다) 우리가 여행을 생각할 때 관광코스와 함께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호텔이다. 

호텔은 하나의 문화로 인식되고 있다. 문화라는 의미가 워낙 방대하고 다양하지만 호텔이라고 하는 한정된 단어에서 정리해 보자. 호텔이란 공간을 경험하고 누군가 그 경험으로 인해 그곳을 그만의 장소로 기억하는 과정, 그것이 호텔의 문화이다. 


파크하얏트 서울호텔의 로비는 건물의 최상층 24층에 위치해 있다. 호텔을 예약하고 처음 방문하는 호텔의 로비가 1층이 아니라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다. 객실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방문객은 공간 하나로 최고의 서비스를 받는 것이다. 서울이 내려다 보이는 최고의 공간을 경험하면서 그곳은 그만의 장소로 기억된다. 


물론 이렇게 최고 수준의 인테리어와 비용을 통해서만 호텔의 특별한 공간을 경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동작구의 신대방동에 있는 어느 호텔은 그 위치로 보나 크지 않은 규모로 보나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평범한 호텔이다. 그다지 세련되지 않은 동네의 초입이고 게다가 주변의 시설도 별것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곳은 이미 마니아들 사이에서 꽤나 유명세를 타고 있다. 그만의 독특한 분위기와 또 진심이 담긴 호텔의 자부심 덕분이다.


숙박공간을 경험하며 그곳은 개인의 욕망을 채워주는 자랑질의 공간이 되기도 하며 때로 그곳은 나만을 위해 특별히 디자인된 것만 같은 휴식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공간의 경험 두 가지 모두 그곳을 사용하는 숙박객들에게는 하나의 문화로 다가온다. 그렇게 사람들은 호텔을 하나의 문화로 인식한다. 호텔, 그 공간에 있는 자가자신을 숨길 리가 없고 차라리 내가 경험하고 있는 이 문화의 공간을 자랑스러워하고 있다고 하는 편이 더 맞는 말이다. 호텔의 창문이 통창에 가깝게 큰 이유다. 


그에 비해 모텔은 그 규모와 관계없이 사용자들에게 하나의 문화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물론 젊은이들 사이에선 방해받지 않는 대여섯 시간을 빌려 나만의 공간으로 이용하는 일도 많다. 하지만 이 경우 하나의 문화가 만들어지고 문화의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기보다는 젊은이들(특히 대학생들)의 필요에 의해 제공되는 가성비 좋은 공간일 뿐이다. 그 공간에서 방해받지 않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니 창문의 크기가 클 이유가 없으며 가능하면 사용자들의 동선이 겹치지 않는 구조가 가장 중요해 보인다. 오픈된 커뮤니티 공간이 필요 없다.

물론 경치가 좋은 서울근교에 위치한 모텔과 호텔의 중간쯤인 경우도 있다. 규모는 모텔 정도이나 창문의 크기나 기타 기능은 호텔의 그것에 뒤지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 경우도 남한강과 같은 자연풍광을 위한 하나의 부속건물의 역할을 할 뿐 그 자체로 어떤 문화를 만들고 있지는 못하다.


오래된 건물의 개보수로 호텔 만들기


30년은 족히 된 건물이었다. 건축주의 안내로  망원동의 왕복 4차선 이면도로에 있는 건물에 도착했다. 이미 임차인들은 모두 이사를 간 상태였다. 사람의 흔적이 없는 건물에 들어서면 때로 건물이 을씨년스럽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이상한 여유와 평온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아마 건물을 관리하는 사람의 애정이 묻어나는 그런 차이일 것이다. 말끔한 상태의 건물이었고 오래되었으나 화장실의 설비도 양호하고 깨끗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지하 1층, 지상 5층 건물이다. 


정가운데 계단실이 있고 가로 x세로 각 35미터 x10미터 가량, 금방 머릿속으로 계산해 봐도 호텔로 구성하기 나쁘지 않은 규모였다. 게다가 기둥 간격도 외벽을 따라 정간격을 유지하고 평면의 가운데는 기둥이 없는 구조였으니 말이다. 


설계를 의뢰받으며 들은 건축주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10여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물려주신 건물과 토지 덕분에 먹고사는 문제는 없어요. 보시다시피 제가 사업을 크게 한다고 이걸 말아먹을 인물도 못되고요. 그런데 얼마 전 파주에 있는 맹지였던 땅에 도로가 뚫리면서 보상을 좀 받게 되었어요. 아마 하나님이 뭘 하라고 그러신 거 같아요"


이 얘기를 어떻게 들어야 할지 잠시 혼란스러웠다. 갑자기 생긴 돈은 뭐고 또 하나님의 일이라니.


"파주 땅에는 10년쯤 후에 선교사 분들을 위한 어떤 건물을 지으려고 해요. 잠자고 쉬고 공부하는 그런 건물이요. 이번에 지으려고 하는 호텔에서 돈도 벌어서 10년 후의 그 건물 공사비, 운영비로 쓰면 어떨까 합니다. 그렇지만 이 호텔도 시내에 있는 그런 이상한 모텔은 아니었으면 좋겠고요" 정리하자면 이번 호텔공사는 하나님의 사업을 위한 디딤역할이며 또 평생 살아갈 직업이 되는 것이다.



기존 건물 평면도 및 개보수 증축 평면도 (c) 윤우영 건축가

 


위 그림의 왼쪽하단 작은 평면도에서 엘리베이터를 삭제하고 계단실을 수직으로 세워서 화장실을 배치하면 그대로 30년 된 건물이다. 계단실을 중심으로 좌우 근린생활시설로 사용되었다. 증축과 대수선(주요 구조물인 주계단 기둥 등을 해체하고 수선하는 일), 용도변경이 복합적으로 수행되는 일이다.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일이 구조이다. 당연히 구조보강이 따라올 일이지만 그 보강의 방법과 범위에 따라서 차라리 철거하고 신축하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건축주는 구조변경과 신축이 같은 비용이라면 건물을 그대로 사용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만큼 물려주신 건물에 대한 애정이 컸다.


 건물의 맨 꼭대기 옥탑층에 관리실 겸 사무실이 있었는데 사무실의 풍경에 적지 않게 놀랬다. 30년 전 처음 건물이 신축되던 때 그때의 사무실 그대로라고 해도 믿을만했다. 어른 키높이의 세워두는 괘종시계는 물론이고 천정의 갈색몰딩과 철제책상, 무엇보다 종이서류는 왜 버리지 않고 그대로인지.


 한 개 층에 15개 정도의 객실을 배치해서 한동안 고민했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객실 하나에 화장실을 배치하고 나면 객실의 규모가 신림동의 고시텔보다 겨우 큰 정도였다. 이래 가지고는 건축주가 생각하는 호텔은 언감생심이다. 일본과 중국 관광객들에게 숙박을 제공할 계획이니 객실의 규모도 최소 2인실부터 가족실 정도까지 있어야 하고 아침식사를 해결할 식당도 필요했다.


 위 그림의 큰 평면도에서 가로방향으로 그어진 빨간 선 위로 약 3미터를 수평증축하는 안을 제안했다. 기존의 건물 기둥 간격에 맞춰 철골기둥을 신설하고 바닥면적이 늘어나니 피난법규에 맞게 비상계단을 신설했다. 위의 평면도는 화장실이 갖춰진 2인실로 일반적인 호텔의 객실을 상상하면 딱 그 규모정도이다. 각 층마다 객실 두 개를 합치면 가족실로 쓸 수 있고 3.6미터X6미터(가로X세로)를 기본 모듈로 다양한 객실을 계획할 수 있다. 


 물론 구조기술사는 연일 걱정이 많았다. 구조보강 방법도 만만치 않고 그 비용도 걱정이라고. 구조 보강의 경우 기둥은 철판을 덧붙여 보강하고 천정과 슬라브는 탄소보강이라는 방법을 사용한다. 이렇게 해서 마무리된다면 다행이지만 이 모든 힘을 받는 곳은 기초이다. 결국 맨 하부 지하층의 바닥에서 땅속을 보강해야 하니 그 공법이 만만치 않은 일이다. 게다가 건축법과 마찬가지로 구조 관련 법도 30년 전에 비하면 엄청나게 강화되었고 증축을 포함해 용도변경 등 모든 변경사항은 현행법에 맞춰야 한다. 



입면 컨셉 스케치 (c) 윤우영 건축가



망원동은 지역 특성상 주거지 밀집지역이면서도 바로 앞 강변로와 한강을 곁에 두고 있다. 초기 입면 스터디는 주거지역의 특성에서 힌트를 얻어 계획되지 않은 망원동 도심지의 이미지를 살려 디자인했고 다른 안은 한강변으로 확장해 가는 시선과 상상력이 모티브가 되었다. 두 가지 안 모두 가능하면 주거지에서 너무 튀지 않는 디자인이어야 하고 또 호텔이라는 특별한 느낌도 동시에 가져야 했다.


모든 스케치 안을 폐기하다


하지만 이렇게 계획안이 진행될수록 건축주나 건축가나 모두 마음에 흡족하진 않았다. 호텔이 하나의 문화로 선명하게 자라 잡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건 커뮤니티 공간이다. 기존 건물을 개보수한다는 전제조건 속에서는 그 한계가 분명했다. 기존건물 뒤로 꽤 넓은 여유분의 땅이 있어서 부족한 커뮤니티 공간을 확보하고자 했지만 기존 건물에서의 연계가 쉽지 않았다. 별동으로 증축한 공간은 빽빽한 지상주차장으로 인해 그 시선처리도 갑갑했고 무엇보다 억지로 끼워 맞춘 느낌이 역력했다.


처음부터 다시 생각했다. 기존 건물을 개보수해서 호텔의 객실로 용도변경을 하는 일은 어느 정도 가능했다. 하지만 호텔의 기능을 위한 부대시설의 확보를 위해서는 규모가 크건 작건 새로운 건물을 신축해야 하며 아무래도 완성된 호텔의 컨셉에는 미치지 못했다. 


같은 비용이면 기존 건물을 살리자고 했으나 결정적으로 그 비용이 효율적이지 못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호텔에 대한 서로의 생각이 같았다. 규모가 크진 않아도 시내의 그렇고 그런 호텔은 아니어야 했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관광객들이건 일반 사람들이건 그리고 선교사들이건 모두에게 새로운 공간을 제공해주고 싶었다. 그 새로운 공간은 객실이 아니라 밖에 있다. 커뮤니티 공간이 그렇고, 정원이 그렇고, 한강이 보이는 옥상이 그렇다. 


결국 한 달 내내 고민한 계획안은 폐기되었다. [2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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