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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 미 Dec 01. 2020

20.12.01

한 계절의 새벽 편지

한 계절의 새벽,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다.




    벌써 12월이 되었네요. 아마 오늘을 맞이하는 많은 사람들이 벌써 12월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될 텐데, 어떠한 생각을 더 하게 될까요.

    2020년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아프고 힘든 해였습니다. 코로나 19는 겨울을 빌어 더 기승을 부리고 있네요. 한 해는 저물어 가지만 도저히 저물 기세가 보이지 않아 답답한 날들입니다.

    저는 매일 광화문에 한 전시장으로 나갑니다. 전시를 보러 가기 위함이 아니라 전시장을 지키기 위해서지요. 코로나 때문에 박물관은 시간 단위로 예약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전시 관람을 받고 있습니다. 때문에 제가 머무는 전시장에 사람들이 몰리거나 사람들 사이로 전시를 보기 위해 고개를 빼꼼히 내밀거나, 기다려서 보는 일은 없습니다. 전시장을 지키는 입장에선 훨씬 수월하고 아마 관람객 입장에서도 여유롭게 전시를 볼 수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코로나 19라는 전 세계적 재난 앞에서 울고만 있을 수는 없다 보니 이렇게 아이러니한 부분들이 자꾸 눈에 들어옵니다. 사람들이 몰리지 않아 전시를 편하고 여유롭게 볼 수 있구나.라는.

    

    하지만 마냥 편하게 생각할 수만은 없는 일들도 있습니다. 전시장의 주 출입구를 통제해야 하는 상황이라, 전시 관람을 마친 관람객에게 부 출입구를 알려줘야 했습니다. 한 남성이 마지막 세션까지 다 관람을 마친 것을 확인하고 다가갔습니다.

“실례하겠습니다.”

남자는 말이 없었습니다. 혹시나 마스크 속에 내 말소리가 묻힌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어 한 발짝 다가가는데 남자는 제게 말했습니다.

“가까이 오지 마세요.”

한 걸음 다가가기보다 두 걸음 뒤로 물러선 채로 안내했습니다. 또다시 남자는 대꾸 없이 뒤돌아 부 출입구를 향해 갔습니다. 내용은 전달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자리에 잠시 멈춰 서 있었습니다. 나는 이 곳에서 일하는 사람이고, 발열체크도 했으며 마스크도 코를 다 덮을 만큼 푹 쓰고 있었는데 지금 나를 당황케 한 것은 무엇일까. 처음 겪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당황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불편하고 불쾌해지는 기분을 어쩔 도리가 없었어요. 생각을 곱씹게 됩니다.

    전시장 행사 있던 날, 담당하시던 분이 제게 다가와 이름을 물었습니다.  행사장 내부라 사람들이 좀 있어 시끄러웠을 수 있습니다. 이름을 듣지 못했는지 가까이 다가와 다시 물었습니다. 마스크 근처에 귀를 댈 정도로 가까이.  같은 날 다른 층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볼멘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마스크로 인해 이름을 듣지 못해 가까이 오는 사람이나 대꾸조차 하지 않고 가까이 와서 말하지 말라는 사람이나 모두 코로나 때문이지만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바뀐 일상이라는 것이 이렇듯 모두를 아이러니한 상황으로 내몰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러한 일상들의 반복으로 결국 한 해는 마무리되어 가고 있습니다. 누구도 적응하지 못한 채로 누구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로 말입니다.


    2단계 격상으로 인해 출퇴근 길에 만원 버스를 타지 않게 되었고, 점심식사 시간에 줄을 서서 회사들이 가득한 식당 앞에서 기다리진 않습니다. 전시장 내부도 한산하고 사람들은 충분히 간격을 두고 자신의 일상을 지켜갑니다. 야간개장을 하지 않아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찍 퇴근할 수 있습니다. 좋은 점이라고 하기엔 일상과 다른 현실이고 불편하지만 어쩐지 한가로운 느낌도 납니다. 연말이지만 연말 분위기라는 것은 전혀 없고 길거리는 한산하다 못해 사람의 인기척이 없을 정도예요. 무엇이 더 좋다는 없습니다. 결국 만원 버스에 끼여 타고 점심식사 시간이 다 끝날 때까지 밥을 먹어야 하는 일이 그리울 테니.


    날이 점점 추워지고 작년보다  추운 겨울이  거라는 일기예보를 들으면서 사람 간의 온기를 느낄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해봅니다. 미루어 두었던 안부 인사를 전화나 메시지남기는 걸로는 성에 차지 않으니 이번 달은 아무래도 어떤 안부를 서로에게 전하고 온기를 나눠 받을  있을까를 생각하지 않을  없습니다.


아직도 동이 트지 않은 새벽, 이제 라디오를 켜봅니다. 누군가의 목소리로 시작하는 하루를 맞이하려고 합니다. 오늘도 건강하고 평안한 하루가 되시길 바라며 편지를 마칩니다.





                                                                                                2020.12.01 한 계절의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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