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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록펜 Jan 06. 2021

로드킬 당한 고양이를 보고 든 생각

고양이가 죽는 걸 봤다

    도서관에 가는 길에 고양이가 로드킬 당하는 모습을 봤다. 찻길을 건너려던 고양이가 달려오는 SUV 차량을 피하지 못해 일어난 사고였다. 반대로 SUV 운전자께서 길을 건너는 고양이를 인지하지 못해 일어난 사고이기도 했다. 인도의 폭이 좁았고, 사각이라 내가 운전자였어도 고양이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충돌 후 운전자는 몇 미터쯤 간 후에 차를 세웠고, 고양이는 도로 한복판에서 조금의 시간 후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차갑게 식어가는 고양이를 피해 서행하는 차를 두어 대 보낸 후에, 나는 고양이를 도로의 가장자리로 옮겼다. 다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검색했다. 휴대폰을 열어 검색창에 '고양이 로드킬 신고'를 입력했다. 찾은 게시글에서 알려주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고 상황을 설명드리자 관할 기관인 구청으로 연결해 주셨다. 나는 연결된 구청 직원분께 위치와 상황을 알려드리고 통화가 종료되었다. 그리고 기다렸다. 구청 직원께서 언제 어떻게 조치될 거라는 말씀을 해주시진 않았지만, 그 조치를 꼭 눈으로 확인해야 자리를 뜰 수 있을 것 같아서.


    기약 없이 기다리는 중에 한 아주머니께서 말을 걸어오셨다. 자신을  '고양이 밥 주는 사람'이라고 소개하신 그분은, 나에게 신고했냐고 묻고는 고맙다고 하시며 인스턴트커피를 타 주셨다. 커피는 따뜻했지만 맛이 이상했다. 곱씹어보니 아주머니의 감사 말씀도 뭔가 이상하게 들렸다. 왜 나한테 감사하시지. 평소에 '캣맘'이라 불리는 사람들을 좋지 않게 보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스스로가 좋은 일 또는 옳은 일을 한다고 믿지만 그에 따른 책임, 다른 이들이 입는 피해에는 무관심한 사람들. 죽은 고양이가 본인이 밥을 주던 아이 같다고 하시면서, 그 아이가 맞는지 확인하는 일도 내 눈을 빌려서 하셨다.


    구청의 '조치'를 기다리는 시간이 30분쯤 되자, 나는 다른 뭔가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가 계속 길에서 얼어가는 게 마음에 걸렸다. 캣맘 아주머니가 구청에 전화를 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재촉하시기도 했고. 다시 검색을 했다. 로드킬 당한 개나 고양이가 죽은 경우에, 이들을 보내주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종량제 봉투에 담아 보내주는 거라고 한다. 동물 사체는 폐기물 관리법상 생활폐기물이라, 임의로 사체를 땅에 묻거나 소각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구청에 전화를 다시 걸어야 하나 내가 직접 '조치'를 취해야 하나(믿기 힘들겠지만, 나에게 로드킬 당한 동물의 마지막을 함께 한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고민하던 차에, 오토바이를 탄 아저씨 한 분이 고양이 근처로 다가가셨다.  아저씨께서 장갑을 끼고 신문과 봉투 같은 걸 꺼내시는 걸 보고 구청에서 보낸, '조치'를 해주실 분이란 걸 알았다. 따로 인사를 건네거나 감사를 전하지는 않았다. 왠지 내가 캣맘 아주머니께 받은 이상함을 그분께 드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도서관으로 가는 길에, 책에서 읽은 구절 하나가 떠올랐다.

    이 사회가 동물을 대하는 태도는 실제나 인식이나 완전한 도구, 수단, 물건이다. ... 수단으로서의 쓸모가 없어지면 학대와 방치의 대상이 되는 일도 흔하다. 이것은 수단의 사회에 사는 인간이 또다른 인간을 대하는 태도, 그중에서도 약자를 대하는 태도와 흡사하다.

                                                                                    하재영,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


[사족]

       유난히 오래 기억하고 있는 죽음이 있다. 5년 전에 일어난, 구의역 스크린 도어를 수리하던 청년의 죽음. 수첩과 볼펜, 컵라면 등 고인이 남기고 간 물건이 찍힌 사진을 기억한다. 얼마 전 많은 이들이 고인을 떠올리게 하는 일이 있었는데, 최근에 임명된 장관이 과거 고인을 두고 한 막말 때문이었다. 도서관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했다. 그의 인사청문회에서 모 국회의원이 고인의 어머니께서 오열하는 음성을 틀었다고 한다. 그 국회의원은 후보자에게 질타와 비판을 쏟아냈고, 후보자는 사과했다. 후에 후보자는 장관이 되었고, '생명과 인권 감수성이 박약하고 차별에 익숙한 사람에게 요직을 주면 안된다'던 그 국회의원은 장관 임명에 찬성했다. 촛불 혁명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정부에서 일어난 일이다. 내가 들었던 촛불이 무엇을 바꾸었는지 요즘 나는 의문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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