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과 효율에 대해
올해 초여름의 일이다. 독서모임 회원분들과 뒷고기를 먹기로 했다. 약속장소가 한번도 가본 적 없는 동네라 경로를 검색했다. 네이버 지도가 알려준 경로는 두가지였다. 지하철을 타면 환승을 해야하지만 빨리 갈 수 있고, 버스를 타면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바깥 풍경을 보면서 한번에 갈 수 있다.
내가 선택한 경로는 버스. 마을버스에 올라 바깥 풍경을 본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좌우로 흔들리면서. 그렇게 특별한 건 없다. 높낮이가 수시로 바뀌는 길. 길가엔 낮은 건물과 작은 가게들, 오래된 간판들, 사람들. 분명 처음 지나는 길이지만 어디선가 본적 있는, 다른 어디선가 또 보게될 풍경.
버스가 아파트 단지에 가까워지자 단지의 정원이 보이며 시야가 초록으로 가득찼다. 싱그러웠다. 지하철을 탔으면 보지 못했겠구나.
지하철과 버스. 삶에는 지하철의 시간과 버스의 시간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지하철은 빠르다. 곧게 달리며 바깥을 볼 수 없다. 지하철의 시간은 효율이 중요한 시간이다. 주변을 살피기보다는 목표를 향해 힘껏 달리는 시간. 학업에 열중하거나 시험을 준비하거나 프로젝트를 마감까지 해내기 위해 몰입하는 시간.
버스는 반대다. 구불구불하게 달리며 창밖을 살핀다. 버스의 시간은 효율보다 방향을 우선하는 시간이다. 조금 느리더라도(멈추더라도) 외부 세상을 탐색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지, 잘 가고 있는지 점검하는 시간. 필요한 고민을 기꺼이 끌어안고 마주하는 시간.
‘실패는 두 부류의 인간에게 찾아온다. 생각없이 행동하는 이에게, 그리고 생각은 하지만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이에게.’
지하철과 버스의 균형이 중요하다. 욕심이 많은 나는 방향과 속도를 모두 손에 쥐고 살고 싶다. 각각을 저울의 양 팔에 올렸을 때, 그 저울이 평행하기를 원한다.
그 욕심에 맞는 버스의 시간을 지금 나는 보내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