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내린 싸락눈이 좋다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모든 것에 대한 찬가
세상에는 두 종류의 눈이 있다.
함박눈과 싸락눈.
함박눈은 눈송이가 크고 수분을 품어, 하얗고 포근하다.
눈이 내릴 때도 몽글한 눈송이가 하늘하늘 흩날린다.
싸락눈은 눈송이가 작고 뾰족한 얼음 결정으로 이루어져, 투명하고 날카롭다.
눈이 내릴 때도 날 선 눈송이가 햇빛을 잘게 찢으며 쏟아진다.
그래서 글이나 영화에서 보통 함박눈은 긍정적인 이미지로, 싸락눈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다루어진다.
요즘 내가 사는 동네에는 싸락눈이 자주 내린다.
함박눈이 포근하게 땅을 덮는다면, 싸락눈은 지표를 눈으로 얇게 코팅하듯 날카롭게 쌓인다.
그래서 언뜻 보면 눈이 내리는지 알아채기도 어렵다.
밟으면 뽀드득하는 재미라든지, 차지게 눈덩이로 뭉쳐지는 맛도 없다.
그러나 밤이 되면 싸락눈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다.
연구를 늦게서야 마치고 아무도 없는 새벽길을 혼자 걸어 퇴근하다보면, 눈에 덮인 온 세상이 나를 반긴다.
싸락눈이 쌓인 잔디밭을 가로질러 걸어가면, 눈밭 전체가 반짝반짝 빛난다.
싸락눈송이가 새벽 가로등 불빛을 갈래갈래 반사하며 빛을 내는 것이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한없이 반짝이는 눈밭 위를 걸으면, 나조차도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기분이다.
수고한 하루의 끝에 예쁜 선물을 받은 듯 사람처럼 두근거리다가,
자연이 마법을 부려놓은 미지의 땅에 도착한 여행자가 된 듯 경이롭다가,
우주의 별들 속을 걷는 위대한 존재가 된 듯 가슴 뛰다가,
수많은 카메라로부터 플래시 세례를 받는 유명인이 된 듯 황홀해진다.
이보다 만족스러운 하루의 마무리가 또 있을까.
그래서 나는 새벽 퇴근길이 좋다.
싸락눈이 좋다.
이 세상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씌워진 것들이 좋다.
그것들의 우리가 잘 모르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해 가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