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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기이택생 Nov 30. 2021

첫 눈 내리던 날의 기억

어렸던 나에게 묻고 싶어

공부에 집중이 되지 않는 늦은 밤이면

어두운 밤공기를 쐬며 기숙사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을 뽑아 마신다.


낮 동안 바쁘게 돌아가던 학생 식당 옆 삼거리는

휑한 겨울바람 소리만 들릴 만큼 고요하다.


무심코 올려다본 까만 겨울 하늘에는

회색 구름이 보기에도 답답할 만큼 가까이 내려앉아 있다.


하늘과 눈 씨름하며 점점 식어가는 캔 커피를 홀짝이는데,

문득 며칠 전 첫눈이 내리던 날

한밤중에 혼자서 교내 동산을 올랐던 일이 생각났다.


연인들 몇 무리가 나보다 서둘러 동산에 자리를 잡고

느리게 내리는 하얀 첫눈을 맞이하고 있었다.


첫눈 오는 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하진 않았었나?


문득 눈송이를 잡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소원이 더 확실하게 이뤄지지 않을까?


손을 뻗어 눈이 닿기를 기다렸다.

손바닥 위로 슬며시 내려앉은 눈송이는

그 아름다움을 느낄 새도 없이

차갑게 녹아버렸다.




문득 고등학교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눈이 내릴 거라는 소식에

기숙사 옥상에 앉아 밤이 새도록 하염없이

눈이 오기만을 기다렸던 기억.


하늘은 어두웠고, 추웠고, 바람이 불었고,

해가 뜨도록 눈은 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언젠간 올 테니까,

내가 잠든 사이 몰래 다녀갈 수도 있으니까,

하는 어린 마음에

아침을 맞으며 무작정 소원을 빌었다.


그때의 나는 첫눈을 기다리며

무엇을 그토록 원했던 걸까.

지금의 나는 무엇을 꿈꾸는 사람이고 싶은 걸까.


어렸던 나에게 묻고 싶어. 지금의 나를 너는 어떻게 생각할까?




--

MBC 라디오 푸른밤 종현입니다’에 사연을 보내

16년 12월 07일 하루의 끝’ 코너에서 소개되었던 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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