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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반전★믿었던 사위의 충격적 배신

by 아들딸며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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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Twsqyvqgajw&t=7s



안녕하세요 요양원의 밝은 창가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는 56세의 여자입니다. 최근 척추 협착증으로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데, 병실에 누워 천장을 보다 보니 인생이 너무나 허무하게 느껴집니다. 특히 저녁 무렵 간호사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릴 때마다 가슴이 철렁거립니다. 평생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일을 해온 사람으로서, 이제 제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현실이 정말 힘듭니다.

저는 교육자였습니다. 38년간 초등학교 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어요.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학생들의 순수함과 신뢰를 받으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 자신의 가족 안에서 벌어진 일들을 보면서, 신뢰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 것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제 인생의 절반을 무너뜨린 배신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벌어진 일들, 제가 거의 범죄자가 될 뻔했던 그 충격적인 사건들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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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서울 강남의 작은 아파트 4층에 살았지요. 아버지는 회계사였고 어머니는 전업주부셨습니다. 외동딸로 자라면서 부모님의 모든 기대와 사랑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아버지는 "교육이 최고의 투자"라고 항상 말씀하셨고, 어머니는 제가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챙겨주셨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저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와 인형들을 일렬로 놓고 수업하는 시늉을했던 어린 시절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아버지는 웃으면서 "우리 딸은 미래의 좋은 선생님이 될 거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서울교육대학교에 합격했을 때 아버지는 직장을 다니면서도 제 임용 시험 준비에 매번 도움을 주셨습니다. 혼자서 공부하기 힘들 때는 아버지의 조언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아이들은 정보를 배우는 게 아니라 인생을 배운다. 너는 그들에게 좋은 인생 선배가 되어야 해."

1989년, 저는 서울의 한 공립 초등학교에 발령받았습니다. 첫 담당반은 3학년 54명의 아이들이었어요. 순수함 그 자체였던 그 아이들을 보면서 저는 교사라는 직업의 소중함을 깨달았습니다.

38년간 저는 수백 명의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한 해에 30~40명씩, 아이들이 글을 배우고, 세상을 이해하고, 친구를 사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저는 행복했습니다.

교직 초기에는 정말 힘든 날들도 많았습니다. 문제 학생들, 민원을 거는 학부모들, 교육청의 비효율적인 정책들. 하지만 아이들의 성장이 모든 것을 보상해 주었습니다. 수업이 끝난 후 아이가 "선생님, 오늘 수업 너무 재밌었어요"라고 말할 때의 그 기쁨이라니.

30대 초반, 저는 학교 안에서 가장 신뢰받는 교사 중 한 명이 되어 있었습니다. 학생들도 그렇고, 동료 교사들도, 학부모들도 저를 따랐습니다. 교육청에서 우수 교사 상도 여러 번 받았고, 교육 개혁 프로젝트에도 참여했어요.

그때였습니다. 회계감사 전문가인 남편 이남편를 만난 것이.

33살 때 저는 연말 회계감사 회의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그는 우리 학교 PTA 회계를 맡고 있었던 전직 국세청 공무원이었어요. 청결한 외모, 명확한 논리, 책임감 있는 태도. 그는 학교 재정을 투명하게 관리하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이은수 선생님, 항상 학생들을 잘 지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회계사님이 회계를 이렇게 깔끔하게 관리해 주셔서 저희가 편합니다."

그 만남이 계기가 되었고, 우리는 학교 행사 이후 함께 차를 마시게 되었어요.

남편은 저의 교육 철학에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어떤 가치를 전달하려고 하는지, 교사로서 어떤 보람을 느끼는지. 그는 항상 귀 기울여 들었습니다.

"은수씨의 교육 철학은 정말 순수합니다. 아이들이 그 열정을 느낄 거예요."

그런 말들이 제 마음을 다독였습니다. 지치고 외로웠던 교사의 마음을.

약 6개월간의 만남 후, 남편는 저에게 프로포즈를 했습니다. 낭만적인 고백보다는 차분한 다짐이 정말 믿음직 스러웠어요

"은수씨, 저는 당신의 순수함에 반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인생의 동반자가 되고 싶습니다. 결혼해 주시겠습니까?"

결혼식은 소규모로 진행했습니다. 학교 동료들과 가까운 친구들, 학부모들만 모여 웨딩홀이 아닌 한정식 집에서 했어요.

결혼 후 저희는 서울 마포의 작은 아파트에서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회계감사 회사에서 일했고, 저는 교단에서 계속 일했구요 아이는 당분간 계획하지 않았습니다. 제 경력에 단절이 생기는 것이 두렵기도 했고 무엇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너무나 만족스러웠으니까요.

하지만 37살 때 저는 딸을 낳게 되었습니다. 유진이. 예기치 않은 임신이었지만, 남편은 기뻐했습니다.

유진이는 정말 밝고 착한 아이로 자랐습니다. 엄마 아빠를 보며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돌봄과 배려를 배웠어요. 유진이가 자신의 길을 선택한 것은 고등학교 때였습니다.

"엄마, 나 간호사가 되고 싶어."

"정말로? 힘들 수도 있어. 보통의 사명감으로 어림도 없을까ᅠ강ㅑ."

"난 괜찮아. 엄마 보면서 자랐으니까.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이 하고 싶어."

유진이는 서울 간호대학교에 합격했고, 졸업 후 대학병원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집중치료실 간호사로서 생명을 살리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29살 때 유진이는 금융 회사의 펀드매니저인 32살의 박민준을 만났습니다.

MBA를 이수한 엘리트로, 여러 대형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경력이 있었어요. 첫 만남은 병원의 건강검진센터였다고 했습니다. 유진이가 진료실에서 그를 만났고, 이후 카페에서 연락이 이어졌다고요.

처음 박민준을 본 것은 유진이가 그를 집으로 데려왔을 때였습니다. 명품 시계에 고가의 정장을 입은, 세련되고 자신감 넘치는 인상의 남자였어요.

"어머님 아버님, 오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박민준 씨죠. 들어보니 증권사에서 일하신다고요."

"네, 여의도 금융업계에서 일해 왔습니다. 아직 부족하지만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씨는 예의 바르고 겸손했습니다.

유진이는 그날 밤 제게 박민준과의 결혼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엄마, 민준오빠가 프로포즈할 것 같아."

"그래? 너는 어때?"

"좋아. 정말 멋진 사람 같아."

우리는 박민준을 환영했습니다. 같은 전문직으로서의 신뢰감 때문이었을 겁니다. 저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박민준은 실제로 좋은 인상을 주었거든요.

2년 후 유진이와 박민준은 결혼했습니다. 웨딩홀은 서울의 럭셔리한 곳으로 선택했어요. 박민준 쪽에서 모든 비용을 감당하겠다고 했고, 결혼식은 화려했습니다. 유진이는 두 번이나 드레스를 갈아입었고, 더없이 행복해 보였어요

"민준이가 정말 유진이를 사랑하는 것 같아."

남편은 저에게 속삭였습니다. 저도 고개를 끄덕였어요.

결혼 후 유진이와 박민준은 강남의 신축 아파트에서 살았습니다. 30억대의 럭셔리한 공간이었어요. 박민준의 금융 사업이 정말 잘되고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1년 후 유진이는 첫 아들을 낳았습니다.

박민준은 훌륭한 남편이자 아버지로 보였습니다. 유진이의 병원 근무에 지장이 없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왔고, 아들을 돌보는 모습도 애정이 가득했습니다. 저희는 정말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그로부터 3년 후에 이 세상을 떠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요.

지난 겨울, 남편은 잠을 자다가 가슴 통증을 호소했습니다. 저는 당장 119에 전화했고, 구급대원들이 왔을 때 남편은 이미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병원 도착 30분 후, 의사는 저에게 매우 유감스럽다는 말을 했습니다.

"심근경색이 너무 광범위했고, 도착 시간에 이미 대부분의 심장 조직이 손상되어 있었습니다."

50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난 남편. 아직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 따뜻한 손, 그 낮고 다정한 목소리, 항상 웃고 있던 얼굴이 영영 돌아오지 않을 거라니.

장례식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조문했습니다. 남편은 정말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사람이었거든요. 유진이는 며칠간 말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를 잃은 딸의 슬픔 속에서 저는 자신의 슬픔을 숨어야 했습니다.

상복을 벗은 이후, 집은 너무 조용했습니다. 남편은 있던 자리가 자꾸 눈에 띄었어요. 그의 서재, 그의 의자, 그의 책상. 모든 것이 저를 울게 만들었습니다.

남편의 빈자리가 너무 컸지만 딸 내외와 손자를 보며 하루하루 힘을내어 살아갔습니다.

그러던중, 박민준이 제 사무실을 찾아와 말했습니다.

"어머니, 혹시 새로운 금융 상품에 투자해 볼 생각이 없으실까요?"

"투자? 무슨 투자?"

"제가 지금 운영 중인 펀드 말입니다. 글로벌 주식 펀드인데요. 정말 수익률이 좋은 상품입니다."

"구체적으로 얘기해 줄 수 있어?"

"네, 필요한 자금이 2억 정도고요 어머니께서 일부 투자해 주시면, 절대 손해 보지 않을 거예요. 배당율도 높고요."

그의 눈빛이 달랐습니다. 진지했어요. 아니, 절박했습니다.

"고맙지만 나는 투자는 잘 모르니 유진이와 상의해 봐."

"어머니, 이건 정말 너무 좋은 기회라서 그래요. 타이밍이 중요한거 아시죠? 지금 주식 시장이..."

"미안하지만 그만해줬음 좋겠네.“

박민준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 졌지만 저는 이내 모른척 했습니다. 괜한 분란을 만들기 싫었으니까요.

남편이 사망한지 6개월이 지났을 때, 박민준의 펀드 운영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작은 문제였어요. 한 고객이 "수익률이 낮다"면서 불평했고, 다른 고객은 "약속한 배당금이 늦다"고 연락했습니다.

박민준은 처음엔 이를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금융 시장의 변동성은 흔한 일이니까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은 더 악화되었습니다.

실제로 박민준이 운영하던 펀드는 글로벌 주식 시장의 변동으로 심각한 손실을 입고 있었어요. 고객들의 돈이 증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평균 30~40%의 손실. 어떤 고객은 50%를 넘는 손실을 입었습니다.

박민준은 처음엔 자신의 다른 펀드 수익으로 이를 메우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펀드가 비슷하게 피해를 입고 있었어요. 그는 절박해졌습니다.

은행 대출을 받기 시작한 것이 그때였습니다. 2년 전 일입니다. 개인 명의로 5억, 법인 명의로 10억. 그렇게 15억을 빌려서 고객 손실을 메웠습니다.

하지만 대출 이자가 쌓였어요. 월 이자만 해도 수천만 원. 그리고 새로운 펀드 손실도 계속됐습니다. 박민준은 새로운 대출을 받아 이전 대출을 갚았습니다. 악순환이었습니다. 매달 이자를 내기 위해 더 많은 돈이 필요했거든요.

유진이는 처음엔 모르고 있었어요. 박민준은 정말 잘 숨겼거든요. 회사 업무라며 밤샜고, "시장이 안 좋다"며 스트레스를 받는 척했습니다. 유진이는 남편을 위로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심각했어요.

1년 전 봄, 금융 당국에서 감시가 들어왔습니다. 박민준의 펀드 거래 기록들이 이상했거든요. 손실을 감추고, 허위로 수익을 보여주던 것들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금융감시 기관의 조사는 그의 모든 사업을 위협했습니다.

박민준은 공황상태에 빠졌습니다. 적발되면 사기죄로 고발될 수 있었거든요. 그는 절박했어요. 정말 절박했습니다.

그 시점에서 유진이에게 검은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유진아, 어머니 요즘 건강하신 거 같아? 어머님은 재산관리를 어떻게 하셔?"

유진이는 그 질문이 이상했습니다. 왜 갑자기 어머니의 재산을 물어보는 걸까요?

"그건 왜?"

"아니야, 그냥... 어머니 혼자 계시니까 혹시 금융 상담이 필요하신가 싶어서."

거짓말이었습니다. 박민준은 저의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제가 혼자 사는 상황을 이용할 수 있을지를 계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후 박민준은 저를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님 혼자계시는 게 마음이 쓰인다면서 말이에요. 하지만 실제로는 제 재정상황을 파악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은행, 자산, 통장, 인감. 모든 것을요.

그러면서 또다시 은근슬쩍 너에게 투자를 권유하더라구요 매월 20%의 수일을 보장한다면서 말이에요.

"신경써줘서 고맙지만 나는 투자는 잘 몰라. 유진이랑 상의해 보게나."

박민준의 표정이 순간 굳었습니다. 그렇게 호의적이었던 사위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한 것 같았지요

그것도 모자라 몇 주 후, 유진이가 전화로 연락을 해왔습니다.

"엄마, 정말 급해서 그러는데 그이 좀 도와줘"

"무슨일인데?"

"민준씨가 회사에서 손실이 좀 있었대. 고객들한테 돈을 돌려줘야 하는데... 이번 달에만 5천만 원이 필요하대. 다음 달에는 또 얼마가 필요할지..."

그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이 빚을 절대 갚을 수 없다는 것을요.

그때부터 박민준은 스스로 불구덩이에 뛰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박민준이 처음 접촉한 사람은 유흥가의 업소 경영자였습니다. 그 사람은 마약 유통망의 중간 연결고리였어요. 박민준은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습니다.

"나 좀 큰돈이 필요해."

"얼마나?"

"15억 정도 가능할까?"

유통 조직은 박민준에게 기회를 줬어요. 초기 자본금 5천만 원으로 마약을 공급받고, 판매 이윤의 60%를 가져가는 것이었습니다. 나머지 40%는 조직의 몫.

박민준은 신용카드로 5천만 원을 긁었습니다. 또 다른 빚이었어요. 하지만 그는 이미 절박했습니다.

약 2개월 동안 박민준은 여러 유흥점, 클럽, 나이트클럽에 마약을 공급했습니다. 판매액은 예상보다 많았어요. 그는 매달 3천만 원에서 5천만 원을 벌 수 있었습니다. 예상보도 빨리 수익이 났지요

하지만 위험도 컸습니다. 경찰 수사에 걸릴 가능성, 조직 내 다른 유통책들 사이의 갈등, 그리고 고객들의 추적.

그때 박민준은 생각했습니다.

"어머니 집."

50대 혼자 사시는 중년 여성의 집. 경찰이 관심 가질 리 없는 곳. 조용한 주택가.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장소. 그것이 완벽한 보관 장소였습니다.

박민준은 그렇게 악의 깊숙한 곳으로 빠져들었습니다.

남편이 사망한 지 2년이 지나갔을 때, 박민준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범죄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일요일 오후, 저는 제 집에서 2층으로 올라가려고 계단을 올랐습니다. 그날은 날씨가 안 좋았어요. 비가 오락가락했고, 무릎에 낀 습기가 관절을 뻣뻣하게 만들었습니다. 올라가다 발을 헛디디는 순간, 몸이 계단 아래로 굴렀습니다.

꽝! 하는 큰 소리와 함께 극심한 통증이 몸 전체를 관통했어요. 이웃 어머니가 비명에 달려나왔습니다.

"어머, 괜찮아요? 119 불러야겠어!"

병원에서 MRI 검사를 받은 후, 의사는 내게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전방 십자 인대가 파열되었고, 반월상 연골도 손상됐습니다. 당장 수술을 해야 합니다."

수술 후 나는 2주간 입원했습니다. 50대 후반의 나이에 무릎 수술을 받는다는 것은 정말 힘들었어요. 화장실을 가는 것도 간호사의 도움이 필요했고, 통증 때문에 밤새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퇴원 후에는 목발이 필수였습니다. 목발 짚고 겨우 화장실을 가고, 거동이 불편했어요. 특히 계단이 문제였습니다. 1층의 문화센터와 2층의 나의 공간을 오갈 수 없었거든요.

유진이는 저를 위해 휴직을 하고 저를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집을 청소해 주고, 반찬을 만들어 놓았어요.

"엄마, 내가 근처에 월세를 생각하고 있어. 그럼 자주 와서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아."

"그럴 필요 없어. 나 혼자도 괜찮아."

"엄마, 나 엄마마저 일찍 보내고 싶지 않아. 이번만큼은 내 말 듣고 그렇게 하자."

수술 후 약 한 달이 지났을 때였습니다.

그 날은 특별히 날씨가 좋았어요. 오후 햇빛이 제 사무실 창문으로 들어오고 있었죠. 저는 목발을 짚고 의자에 앉아 있었고, 학생들을 위해 준비한 교재를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박민준이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요즘 자주 방문하는 것처럼요.

"어머니, 안녕하세요. 요즘 어떠세요?"

"그럭저럭 많이 낫고 있어. 자네는 요즘 어때? 바빠 보이네."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정말 지쳐 보였습니다. 눈 밑에 다크서클이 있고, 셔츠는 구겨져 있었어요. 예전의 정갈한 박민준이 아니었습니다.

"아, 요즘 펀드 운영이 좀 복잡해서요. 고객들 건 정리하느라..."

"그래도 건강하게 지내야지. 유진이는?"

"네, 유진이는 다 괜찮습니다. 요즘 당번이 많아서 바쁘고요."

그가 제 사무실을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요.

뭔가 이상했습니다. 그의 눈이 자꾸 제 냉장고로 향했거든요. 평범한 가정용 냉장고인데, 왜 자꾸 그곳을 보는 걸까요?

"자네 뭐 필요한 거라도 있나?"

"아, 아니요. 그냥... 어머니 혼자 계시니까 음식 관리는 어떠신지..."

"음식은 유진이가 반찬 갖다놓고 가고, 그럭저럭. 근데 왜 자꾸 냉장고를 보는 거야?"

박민준의 얼굴이 굳었습니다. 마치 들키면 안 될 무언가를 한 사람처럼요.

"어머니, 혹시 냉장고 안에 뭘..."

"뭘 말이야?"

"아, 아니요. 그냥... 언제 한번 정리를 도와드릴까 싶어서요."

박민준이 떠난 후, 저는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 날 저녁, 의심에 찬 나는 냉장고를 열어봤습니다. 음식들이 평소처럼 정리되어 있었어요. 유진이가 갖다 놓은 반찬들, 계란, 우유. 아무것도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냉장고 내부 깊숙한 곳, 동파수 뒤쪽에 뭔가 정리되지 않은 물건이 있는 것 같았어요.

다음 날, 박민준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이번에는 진짜 냉장고를 정리한다면서 말이에요.

"어머니, 어제 생각해 보니 냉장고가 좀 낡아 보여서요. 오늘 정리를 좀 도와드리고 싶어요."

"아, 괜찮아. 이 정도면..."

"어머니, 냉장고 관리는 정말 중요해요. 음식도 보관 온도에 맞게 보관해야 하고요."

박민준은 냉장고 구석구석을 들여다봤어요. 마치 뭔가를 찾고 있는 것처럼.

"어머니, 이거... 언제 사신 거예요?"

"뭐가?"

"아니요, 그냥...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들이 있어서요."

그러곤 그는 갑자기 뭔가를 냉장고에 집어넣었습니다. 검은 비닐봉지 같은 것이었어요. 완벽하게 숨기면서요. 동파수 아래쪽, 가장 보이지 않는 곳에.

"자네, 뭐 하는 거야?"

"어? 아니요, 그냥 음식 정리하다가요."

"어? 그건 음식이 아니잖아. 뭔데?"

"아, 어머니 냉장 보관이 필요한 약품들이에요. 요즘 건강기능식품들 중에 냉장 보관이 필요한 게 있거든요. 제가 가져다 드릴 거예요."

그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 저는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뭔가 묻고 싶었어도 그의 태도가 이상해 보여서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 날부터 1주일이 지났습니다.

박민준은 계속해서 제 집을 드나들었고, 매번 올 때마다 냉장고에 뭔가를 더했습니다. 작은 봉지, 작은 상자, 약병 같은 것들이 계속 들어갔어요. 매번 영양제라고 말했지만, 저는 의심스러웠습니다.

유진이도 이상한 걸 눈치 챘나봅니다. 어느 날 전화에서 "엄마, 최근에 민준오빠가 자주 드나드는 거 같던데 뭐 하는 거예요?"라고 물었거든요.

"뭐 하는 게 아니라, 냉장고 정리한다고 자꾸 와. 건강기능식품을 갖다 놓는다는데..."

"어? 냉장고? 엄마 냉장고에?"

유진이의 목소리가 달라져 있었습니다. 위험한 톤으로요.

"응, 약품이라고. 근데 뭔가..."

"엄마! 냉장고 절대 열지 마세요. 아무도 건드리지 마시고!"

"왜? 뭔데?"

"지금 일이 있어서 내가 확인해 보고 연락할게요. 아무한테도 얘기 하지 마세요. 특히 민준이한테!"

그 저녁, 저는 혼자 앉아 냉장고를 바라봤습니다. 평범한 냉장고. 하지만 그 안에 뭔가 위험한 게 들어 있는 건 분명했습니다.

시간은 정말 느리게 흘렀습니다. 밤 10시쯤, 제 휴대폰이 울렸습니다. 유진이였어요.

"엄마, 지금 어디 계세요?"

"집. 침대에 누워 있어. 뭐 했어?"

"엄마, 냉장고...혹시 그거 마약 아닐까 싶어서..."

"마약?!"

그 단어가 떨어지는 순간, 제 심장은 멈추는 듯했습니다.

"엄마, 마약성 진통제 같은 거 냉장고에 보관하는 범죄자들이 있대. 민준오빠가 요새 아무래도 수상해.. 아 정말..."

유진이는 울먹이고 있었습니다. 제 딸이 울고 있었어요.

"유진이, 진정해. 그게 진짜야?"

"엄마, 지금 차타고 그리고 갈게. 혹시모르니 경찰에 신고도 할게"

"유진아, 신고라니? 경찰에 신고한다고?"

"응. 엄마 냉장고에 불법 약품이 있으면 엄마가 마약 유통자로 모함받을 수 있어. 그러니 아무것도 손대지 말고 가만히 있어야해"

경찰이 도착한 후, 경찰관들은 제 신원을 확인하고 냉장고 검사를 시작했어요. 검사관은 라텍스 장갑을 끼고, 매우 조심스럽게 냉장고 동파수 아래쪽을 살펴봤습니다.

"여기 봅시다."

그는 검은 비닐봉지를 꺼냈어요. 그리고 다른 봉지들도. 하나, 둘, 셋... 총 다섯 개의 봉지가 나왔습니다.

경찰관이 봉지를 열어서 냄새를 맡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마약성 진통제들이네요. 프로포폴, 케타민, 그리고 여러 마약성 물질들입니다."

제 다리에 힘이 풀렸습니다. 목발을 짚고 있는 팔도 떨리고 있었어요.

경찰관이 하나하나 약품을 꺼내면서 확인했어요. 냉장고 안에는 내가 본 적도 없는 약들이 가득했습니다.

"어머니, 이런 약들을 처방받으신 적 있으세요?"

"아뇨. 저는 일반 감기약, 혈압약, 그리고 관절 약만 먹어요."

더 충격적인 것은 서류들이었습니다. 제 이름으로 된 병원 진료기록, 처방전, 약물 복용 기록들이 있었거든요. 날짜를 보니 최근 3개월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병원들을 가 본 적도 없었습니다.

"어머니, 이런 서류들 아세요?"

"아뇨. 저는 이 병원들 본 적도 없습니다."

경찰관이 서류를 자세히 봤습니다.

"위조 서류 같네요. 누가 넣은 건지 아세요?"

유진이가 울먹이며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민준이가 엄마를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려고 한 것 같아."

내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뭐? 그게... 무슨 말이야?"

"민준이가 엄마를 마약 중독자로 만들어서 정신 병원에 입원 시키고 재산을 가로채려 한 것 같아"

신음이 나왔습니다.

경찰에게서 들은 더 상세한 설명은 더욱 충격적이었습니다.

박민준은 유진이의 명의로도 수억 원의 대출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유진이는 자신의 신용도가 떨어진 것도 그때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박민준은 그동안 다른 투자자들로부터 막대한 돈을 빌렸지만 주식 투자로 날렸고, 사채까지 끌어온 상황이었습니다.

박민준의 혐의는 다양했어요. 그중에서도 마약유통은 용서받지 못할 범죄였죠. 저는 법정에서 박민준과 마주했습니다. 수갑을 한 그의 모습은 초라해 보였어요.

그는 저를 향해 중얼거렸습니다.

"어머니,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미쳤었어요."

할 말이 없었습니다.

판사는 박민준에게 약 3년의 징역형을 선고했습니다. 금융 공시 위반, 사기, 문서 위조, 마약 관리법 위반 등으로요.

유진이는 법정에서 펑펑 울었습니다. 자신이 사랑한 남편이 실은 자신의 어머니를 해치려고 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정말 힘들어 보였습니다.

이제 나는 요양원에서 회복 중입니다.

무릎도 많이 좋아졌어요. 목발 없이 지팡이로 걸을 수 있고, 계단도 천천히 올라갈 수 있습니다.

유진이와 손주는 지금 나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이혼 소송은 진행 중이고, 아이의 양육권은 유진이가 가져왔어요. 범죄자가 아버지라는 것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이 걱정되지만, 유진이는 아이를 잘 키워내고 있습니다.

저는 요즘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절대로 온전히 신뢰할 수만은 없다는 것.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상을 의심하며 살 순 없다는 것.

유진이는 천천히 회복하고 있습니다. 정신과 상담을 받고, 아이와의 시간을 늘리고, 다시 병원에 나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어요.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는 것. 그것이 인생의 후반부에서 배워야 할 가장 큰 과제인 것 같습니다.

요양원 복도에서 유진이가 손주를 데려왔습니다. 손주는 다행히 밝게 자라고 있는 듯 보였지요.

"할머니, 안녕! 나 오늘 학교에서 칭찬받았어!"

손주는 내 옆에 앉아 학교 이야기를 합니다. 친구들의 이야기, 선생님의 이야기, 새로운 것을 배우는 기쁨.

그 말을 들으면서 저는 웃음이 새어나왔습니다..

38년간 교단에 서면서 만난 수백명의 아이들. 그들 중 많은 아이들이 지금 제 손주처럼 누군가에게 희망과 미래를 주고 있을 겁니다.

저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사연을 댓글로 남겨주세요. 오디오북으로 정성스레 만들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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