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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난 남편 걸레빤 물로 냉수마찰 시켜준 사연

by 아들딸며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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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osNOK_1DKdw

"순희야, 나 정말 갈 데가 없어!"

저는 한숨을 쉬었어요.

"잠깐 기다려."

저는 건물 화장실로 들어가 걸레 빤물이 들어있는 양동이를 들고 나왔어요.

“안 버리길 잘했네” 저는 웃음이 새어나오는 것을 애써 참았지요

남편은 제가 대야를 들고 오는 걸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어요.

"순희야, 그건..."

저는 대답하지 않고 대야의 물을 남편에게 그대로 부어버렸어요.

쏴아악!

더러운 물이 남편의 얼굴과 옷에 쏟아졌어요. 남편은 충격에 얼어붙었어요.

"이게...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이게 바로 네가 나한테 준 모욕의 맛이야.“

도대체 순희씨에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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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올해 예순다섯 살이 된 김순희라고 합니다. 지금부터 제가 들려드릴 이야기는 제 인생에서 가장 밑바닥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일어선 이야기예요. 혹시 여러분 중에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 분이 있다면, 제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위로가 됐으면 좋겠어요.

오늘도 저는 새벽 네 시에 일어났어요. 40년 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지켜온 시간이었죠. 남편 박진수는 중견 건설회사 대표였고, 저는 그저 남편을 뒷바라지하는 아내였어요.

새벽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남편 아침 식사 준비였어요. 남편은 까다로웠거든요. 된장찌개는 3년 묵은 된장으로 끓여야 했고, 계란말이는 김을 넣어 딱 세 번 접어야 했고, 밥은 찰기가 적당해야 했어요.

"여보, 밥 됐어."

제가 부르면 남편은 무뚝뚝하게 식탁에 앉았어요.

"오늘 저녁 늦을 거야."

"응, 알았어. 저녁은 혼자 먹을게."

남편은 신문을 펼쳤어요. 저는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어요. 40년을 함께 살았지만 우리의 대화는 늘 이 정도였어요.

남편이 출근하고 저는 청소를 시작했어요. 40평짜리 아파트는 청소하는 것만 해도 몇 시간이 걸렸어요. 그래도 저는 가사 도우미를 쓰지 않았어요. 남편이 다른 사람이 집에 있는 걸 싫어했거든요.

오전 내내 청소를 하고, 점심은 간단히 라면으로 때웠어요. 남편은 밖에서 먹으니까 저 혼자였거든요. 오후에는 시장에 가서 장을 봤어요. 저녁 식사 준비를 위해서요.

하지만 최근 6개월 동안 남편은 집에서 저녁을 먹는 날이 거의 없었어요.

"오늘도 회식이야."

"오늘은 거래처 미팅."

"오늘은 야근."

매일 핑계가 달랐지만 결론은 같았어요. 남편은 집에 오지 않았어요.

저는 혼자 차려놓은 저녁상을 보며 밥을 먹었어요. 텅 빈 식탁 반대편 남편 자리를 보면서요. 언제부터였을까요. 우리가 이렇게 멀어진 게.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왔어요.

결혼 40주년 기념일이었어요. 저는 특별히 남편이 좋아하는 갈비찜을 준비했어요. 아침부터 갈비를 손질해서 양념에 재워두고, 오후 내내 푹 고았어요. 남편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었거든요.

저녁 여섯 시, 남편이 평소보다 일찍 들어왔어요. 저는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한 음식을 상에 올렸어요.

"여보, 오늘 우리 결혼기념일이야. 특별히 준비했어."

하지만 남편의 표정은 어두웠어요.

"순희야, 우리 얘기 좀 하자."

남편이 거실 소파에 앉으며 말했어요. 제 가슴이 불안하게 뛰기 시작했어요.

"무슨 얘기?"

"우리 그만 이혼하자."

그 한마디에 제 세상이 멈췄어요.

"뭐... 뭐라고?"

"이혼하자고. 우리 더 이상 의미 없잖아."

"의미가 없다고? 우리 오늘이 결혼 40주년인데!"

제 목소리가 떨렸어요.

"그래서 더 이상은 못 하겠어. 40년이면 됐어."

"40년이면 됐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솔직히 말할게. 난 너를 사랑하지 않아. 어쩌면 한 번도 제대로 사랑한 적이 없었을지도 몰라."

남편의 말에 제 심장이 얼어붙었어요.

"그럼 나는? 40년 동안 당신만 보고 살았는데!"

"그게 문제야. 넌 나한테만 매달렸어. 네 인생이 없었어."

"내 인생은 당신과 우리 가정이었어!"

"그래서 난 숨이 막혔어. 미안하지만 이혼 합의서에 사인해 줘."

남편이 서류를 테이블에 던졌어요.

"위자료 5천만 원 줄게. 그리고 한 달 안에 이사 나가줘."

"5천만 원? 40년을 5천만원으로 퉁치자고 말하는거야?"

"집도 차도 다 내 명의야. 네 명의는 아무것도 없어. 5천이면 충분해."

저는 그제야 깨달았어요. 40년 동안 제 명의로 된 게 하나도 없다는 걸요. 통장도, 집도, 차도 전부 남편 이름이었어요.

"당신... 정말 이럴 거야?"

"이미 결정했어. 빨리 사인해 줘."

"당신 다른 여자라도 있어?"

제가 물었을 때 남편은 잠깐 망설였어요.

"...그런 건 아니고."

하지만 그 짧은 망설임에서 저는 느꼈어요. 뭔가 있다고.

"누구야?"

"아무도 없다니까! 그냥 우리가 안 맞는 거야!"

남편이 소리를 질렀어요.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어요.

저는 거실에 주저앉아서 한참을 울었어요. 준비한 갈비찜은 그대로 식어갔어요.

다음날 아침, 남편은 짐을 싸서 나갔어요.

"일주일 안에 사인해. 안 그러면 변호사 통해서 할 거야."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저는 혼자 남겨졌어요.

그 후 일주일 동안 저는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어요. 밤에는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40년이라는 세월이 한순간에 무너진다는 게 믿기지 않았거든요.

변호사 사무시리에도 찾아가 봤지만 별 도움이 안 됐어요.

"김순희 씨, 솔직히 말씀드리면 재산 분할 받기 어렵습니다. 모든 게 남편 분 명의고, 부인께서 직접 벌어들인 수입이 없으시니까요."

"그럼 저는?"

"위자료만 받을 수 있어요. 상대방이 5천만 원 제시했다면 그게 적정선입니다. 소송하시려면 착수금만 최소 천만 원은 드는데, 이길 확률도 높지 않아요."

저는 그 말을 듣고 모든 걸 포기했어요. 천만 원을 들여서 변호사 쓰고 재판하느니, 그냥 5천만 원 받고 빨리 끝내는 게 나았어요. 저는 너무 지쳐 있었거든요.

일주일 후, 저는 이혼 합의서에 사인했어요.

5천만 원이 제 통장으로 들어왔어요. 40년의 값이었어요.

그리고 저는 살았던 집에서 짐을 쌌어요. 40년 동안 모았던 추억들을 상자에 담았어요. 결혼사진, 남편이 준 선물들, 함께 여행 갔을 때 산 기념품들. 하나하나 보면서 눈물이 났어요.

이삿날, 저는 작은 원룸으로 이사했어요. 강남에서 한참 떨어진 외곽 지역이었어요. 전세금으로 3천만 원을 쓰고 남은 돈은 2천만 원뿐이었어요.

40평 아파트에서 살다가 10평 원룸으로 들어오니 눈물이 났어요. 짐도 다 들어가지 않아서 대부분 버려야 했어요.

첫날 밤, 저는 원룸 바닥에 앉아서 창밖을 봤어요. 작은 창문 너머로 보이는 건 다른 건물의 벽뿐이었어요. 아파트에서 보던 탁트인 숲과는 너무 달랐어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지?'

예순다섯 살, 경력도 없고, 기술도 없고, 돈도 별로 없는 여자. 앞으로 제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요?

다음날부터 저는 일자리를 알아보러 다녔어요. 식당, 편의점, 청소 일자리까지 안 가본 데가 없었어요.

하지만 결과는 똑같았어요.

"죄송한데 60세 이하만 받아요."

"경력이 없으시면 어렵습니다."

"다른 데 알아보세요."

일주일을 다녔지만 받아주는 곳이 없었어요. 저는 점점 절망적이 됐어요.

통장 잔고는 계속 줄어들었어요. 월세는 없지만 전기세, 수도세, 관리비, 식비까지 하면 한 달에 백만 원은 나갔어요. 2천만 원이면 1년 반밖에 못 버텨요.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어요. 저는 라면을 끓여 먹으면서 문득 생각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지?'

40년 동안 제가 한 일이 뭐였을까요. 요리. 청소. 빨래. 집안일. 그중에서도 제일 자신 있는 건 요리였어요.

남편 거래처 사람들이 제 음식 먹고 칭찬했던 기억이 났어요. 회사 접대할 때마다 "사모님 손맛이 최고다"라고 했었죠.

'요리로 돈을 벌 수는 없을까?'

다음날 저는 동네를 돌아다니며 반찬 가게들을 살펴봤어요. 어떤 반찬이 잘 팔리는지, 가격은 얼마인지, 장사가 잘되는 시간은 언제인지 꼼꼼히 관찰했어요.

그리고 결심했어요. 남은 돈으로 작은 반찬 가게를 열자고.

3일 동안 부동산을 돌아다녔어요. 그리고 찾았어요. 동네 구석진 골목에 있는 작은 가게. 월세 80만 원에 권리금 없는 곳이었어요.

"아줌마, 여기 장사 안 돼요. 손님이 거의 안 와요."

부동산 사장이 솔직하게 말했어요.

"괜찮아요. 제가 한번 해볼게요."

저는 보증금으로 천만 원을 내고 가게를 얻었어요. 남은 천만 원으로 중고 냉장고와 조리 도구를 샀어요. 간판을 달 때 고민했어요. 뭐라고 적을까?

'순희네 집밥'

제 이름을 걸고 시작하는 첫 번째 일이었어요. 40년 만에 제 이름으로 하는 일이었어요.

개업 준비를 하면서 저는 메뉴를 정했어요. 된장찌개, 김치찌개, 멸치볶음, 계란말이, 각종 나물. 제가 40년 동안 만들어온 음식들이었어요.

개업 전날 밤, 저는 새벽까지 반찬을 만들었어요. 하나하나 정성껏 만들었어요. 된장찌개는 3년 묵은 된장으로, 멸치볶음은 고추장 양념을 살짝만 넣어서, 계란말이는 우유를 조금 넣어 부드럽게.

손이 너무 아팠어요. 40년 동안 쉬지 않고 일한 손은 이제 관절염이 생겨서 움직일 때마다 아팠어요. 하지만 참았어요. 이게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으니까요.

개업 첫날, 저는 떨리는 마음으로 가게 문을 열었어요. 아침 여덟 시였어요.

하지만 손님은 오지 않았어요.

아홉 시, 열 시, 열한 시. 시간만 흘러갔어요. 냉장고에 가득 찬 반찬들을 보면서 저는 불안했어요.

점심시간이 되자 지나가는 사람들이 조금 늘었어요. 한두 명이 가게 앞에 서서 반찬을 구경했지만 들어오지는 않았어요.

"가격이 좀 비싼데요?"

한 아주머니가 가격표를 보고 그냥 가버렸어요.

저녁까지 단 한 명도 안 왔어요. 저는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팔리지 않은 반찬들을 보며 한숨이 나왔어요.

'이대로 정말 망하는 건가?'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였어요. 간혹 한두 명이 들어와서 조금 사가는 정도였어요. 하루 매출이 만 원도 안 됐어요. 월세 80만 원은커녕 수도요금도 못 내는 상황이었어요.

일주일이 지났을 때 저는 거의 포기할 뻔했어요. 냉장고에 있던 반찬들은 대부분 버려야 했어요. 유통기한이 지났거든요.

'어떡하지. 남은 돈도 이제 얼마 없는데.'

그날 저녁, 저는 가게에 혼자 앉아서 울었어요. 65세에 이혼하고, 빈손으로 시작했는데, 그마저도 실패하는 건가요?

그때였어요. 가게 문이 열렸어요.

"안녕하세요."

젊은 남자가 들어왔어요. 30대 후반쯤 되어 보였어요.

"어서 오세요."

저는 눈물을 닦고 일어났어요.

"여기 반찬 다 사장님이 직접 만드세요?"

"네, 전부 제가 만들어요."

"맛 좀 볼 수 있을까요?"

저는 된장찌개를 조금 떠서 드렸어요. 그 남자는 한 숟가락 먹더니 눈이 커졌어요.

"이거... 진짜 맛있는데요? 엄마 손맛이네요."

"감사합니다."

"다른 것도 맛볼 수 있을까요?"

저는 김치찌개, 멸치볶음, 계란말이를 조금씩 덜어서 드렸어요. 그 남자는 하나하나 먹어보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어요.

"사장님, 혹시 TV 나가볼 생각 없으세요?"

"네? TV요?"

"저 KBS 다큐멘터리 PD인데, 지금 '골목의 맛'이라는 프로그램 준비 중이거든요. 사장님 가게가 딱 맞을 것 같은데."

저는 깜짝 놀랐어요. 그런데 그 남자의 얼굴이 묘하게 낯익었어요.

"혹시... 민호야?"

"네? 저를 아세요?"

"너 경희대 다니던 강민호 맞지?"

그 남자가 놀란 표정으로 저를 쳐다봤어요.

"어떻게 저를..."

"너 20년 전에 학교 앞 분식집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애 맞지? 맨날 배고파서 라면만 시켜 먹던."

강민호의 눈이 커졌어요.

"혹시... 순희 이모님?"

"그래, 나야."

강민호는 감격한 표정으로 제 손을 잡았어요.

"이모님! 정말 오랜만이에요!"

20년 전 일이었어요. 저는 남편 회사가 어려울 때 학교 앞 분식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어요. 그때 경희대 학생이던 강민호가 자주 왔었거든요.

그 친구는 항상 배가 고파 보였지만 돈이 없어서 제일 싼 라면만 시켰어요. 저는 그게 안쓰러워서 몰래 밥을 더 주고, 반찬도 듬뿍 얹어줬었죠. 김밥을 만들 때도 속을 두 배로 넣어줬고요.

"이모님 덕분에 제가 대학 다닐 수 있었잖아요. 고향에서 돈 안 보내줘서 굶을 뻔했는데, 이모님이 주신 밥으로 버텼어요."

"그랬구나. 근데 PD가 됐다니 대단하네."

"이모님 덕분이에요. 그때 생각하면서 항상 '나도 성공하면 어려운 사람들 도와야지' 생각했거든요."

강민호는 진심으로 감사해했어요.

"근데 이모님, 여기서 가게하시는 건 어떻게 된 거예요?"

저는 간단하게 제 이야기를 했어요. 이혼한 것, 가게를 시작한 것. 자세한 사정은 말하지 않았지만 강민호는 다 알아듣는 표정이었어요.

"이모님, 제가 도와드릴게요. 이 가게 TV에 내보내 드릴게요."

"정말?"

"네. 20년 전에 이모님이 저 살려주셨잖아요. 이제 제 차례예요."

그날 이후로 강민호는 자주 가게에 들렀어요. 촬영 준비를 하면서 제 이야기를 더 들었죠.

"이모님, 이건 단순한 요리 이야기가 아니에요. 65세에 이혼하고 새로 시작한 여성의 이야기예요. 사람들이 감동할 거예요."

한 달 후, 촬영이 시작됐어요. 카메라 앞에 서는 게 처음이라 떨렸지만 강민호가 편하게 해줬어요.

"이모님, 그냥 평소처럼 요리하시면 돼요."

저는 제가 제일 자신 있는 된장찌개를 끓였어요.

"이 된장은 제가 40년 동안 담가온 거예요. 좋은 된장은 시간이 만드는 거거든요.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세월이 쌓여야 깊은 맛이 나죠."

"40년이요?"

"네. 결혼하고 나서 처음 담근 된장이에요. 남편이 된장찌개를 좋아해서요. 이혼할 때도 이 장독만은 가져왔어요. 이게 제 인생이니까요."

제 말에 강민호가 카메라를 더 가까이 가져왔어요.

"이모님한테 40년이 어떤 의미예요?"

"40년이요? 긴 시간이었죠.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시간 중에 정말 제 것이었던 건 얼마 안 됐어요. 다 남을 위해 산 시간이었거든요. 이제는 남은 인생 저를 위해 살려고요."

촬영이 끝나고 강민호가 말했어요.

"이모님, 이거 반응 좋을 거예요. 제가 장담해요."

방송 날짜가 정해졌어요. 토요일 저녁 8시, KBS '골목의 맛 - 40년 손맛의 재발견'이라는 제목으로요.

방송 당일, 저는 긴장한 마음으로 원룸에서 TV를 켰어요. 프로그램이 시작되고 제 얼굴이 화면에 나왔을 때 심장이 빠르게 뛰었어요.

"서울 외곽의 작은 골목, 여기에 특별한 반찬 가게가 있습니다. 주인공은 65세의 김순희 씨. 그녀는 6개월 전 40년 결혼 생활을 정리하고 이곳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강민호의 내레이션이 흘러나왔어요.

화면에는 제가 새벽에 장을 보러 가는 모습, 가게에서 반찬을 만드는 모습이 나왔어요. 그리고 인터뷰 장면이 나왔어요.

"40년을 남편 뒷바라지만 하면서 살았어요. 그게 당연한 줄 알았죠. 근데 어느 날 갑자기 이혼하자고 하더라고요. 처음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65세에 빈손으로 혼자 남겨졌으니까요."

제 목소리가 떨렸어요. 화면의 저는 눈물을 참고 있었어요.

"근데 알았어요. 포기하면 안 된다는 걸. 제가 40년 동안 해온 게 요리였어요. 그럼 그걸로 살아보자. 그렇게 시작했어요."

화면이 바뀌며 제가 된장찌개를 끓이는 장면이 나왔어요. 정성스럽게 재료를 손질하고, 불을 조절하고, 맛을 보는 모습.

"맛있는 음식은 재료가 아니라 마음으로 만드는 거예요. 40년 동안 남편을 위해 만들었던 그 마음으로, 이제는 손님들을 위해 만들어요. 달라진 건 누구를 위한 거냐는 것뿐이에요."

마지막 장면은 제가 가게 문을 닫고 원룸으로 돌아가는 뒷모습이었어요.

"인생은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65세, 김순희 씨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저는 TV 앞에 앉아서 한참을 울었어요.

그리고 30분도 안 돼서 제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어요.

"혹시 순희네 집밥이에요?"

"TV 봤어요. 내일 반찬 주문하고 싶은데요."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꼭 가보고 싶어요."

전화가 쉴 새 없이 걸려왔어요. 저는 당황해서 전화를 받았다 끊었다 반복했어요.

다음날 아침, 저는 평소보다 일찍 가게에 갔어요. 그런데 가게 앞에 이미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어요.

"사장님! 여기예요!"

"TV 봤어요.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저는 얼떨떨한 마음으로 문을 열었어요.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왔어요.

"된장찌개 두 통이요!"

"김치찌개하고 멸치볶음 주세요!"

"계란말이도요!"

주문이 쏟아졌어요. 저는 바쁘게 반찬을 담았어요. 손이 모자랄 지경이었어요.

"사장님, 저희 어머니도 비슷한 일 겪으셔서 엄청 우셨어요."

"힘내세요. 응원할게요."

손님들은 단순히 반찬을 사러 온 게 아니었어요. 저를 응원하러 온 거였어요.

그날 매출이 150만 원이 넘었어요. 일주일 동안 번 것보다 많았어요. 저는 믿을 수가 없었어요.

다음 주에도 손님들은 계속 왔어요. 방송 효과는 한 달 넘게 이어졌어요.

저는 혼자서 감당할 수가 없어서 직원을 구했어요. 근처에 사는 50대 아주머니였는데, 이분도 이혼하고 혼자 아이를 키우는 분이었어요.

"사장님 방송 보고 용기를 얻었어요. 저도 다시 시작하려고요."

"그래요. 우리 함께 열심히 해요."

두 달이 지나자 가게가 작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손님들이 너무 많아서 밖에서 기다려야 할 때가 많았거든요.

저는 같은 동네에 있는 더 큰 가게로 이사하기로 했어요. 20평짜리 가게였어요. 보증금 3천만 원에 월세 150만 원이었지만 지금 매출이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어요.

새 가게를 열었을 때 강민호가 찾아왔어요.

"이모님, 대박 나셨네요!"

"다 네 덕분이야. 정말 고마워."

"이제 시작이에요. 더 잘될 거예요."

강민호의 말처럼 가게는 날이 갈수록 잘됐어요. 단골손님들이 생겼고, 입소문이 퍼졌어요.

6개월이 지났을 때 저는 직원을 세 명 더 고용했어요. 그리고 배달 서비스도 시작했어요.

어느 날 한 기업에서 연락이 왔어요.

"저희 회사 구내식당 반찬을 공급해 주실 수 있나요?"

"회사 구내식당이요?"

"네. 100명 규모인데, 일주일에 세 번 공급해 주시면 돼요."

저는 고민했어요. 100명 분량이면 지금 제 가게로는 감당이 안 됐거든요.

"한번 해보겠습니다."

고민했지만 저는 결국 수락했어요. 그리고 주방을 확장했어요. 새벽 3시부터 직원들과 함께 반찬을 만들었어요.

힘들었지만 매출은 크게 늘었어요. 한 달에 오백만 원이 넘는 매출이 생겼어요.

1년이 지났을 때 한 프랜차이즈 업체에서 연락이 왔어요.

"순희네 집밥을 프랜차이즈로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프랜차이즈요?"

"네. 사장님 손맛이 정말 특별해요. 이걸 여러 지역으로 확장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저는 고민했어요. 프랜차이즈라는 게 익숙하지 않았거든요.

"일단 제 가게를 하나만 더 내볼게요. 그다음에 생각해 볼게요."

저는 신중하게 결정했어요. 너무 빨리 키우면 품질을 유지할 수 없을 것 같았거든요.

2년이 지났을 때 저는 두 번째 지점을 냈어요. 같은 동네에 또 다른 가게를 연 거예요. 제 직원 중 한 명이 점장이 됐어요.

두 번째 가게도 잘됐어요. 입소문이 나서 손님들이 많이 왔어요.

그렇게 한 지점씩 천천히 늘려갔어요.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3년이 지났을 때 '순희네 집밥'은 서울에 다섯 개 지점을 가진 작은 프랜차이즈가 됐어요. 연 매출은 20억 원 정도였어요.

저는 이제 작은 가게 사장이 아니라 프랜차이즈 대표였어요.

회사가 커지면서 작은 사무실도 얻었어요. 그리고 본격적으로 경영을 시작했어요. 회계사를 고용하고, 마케팅 담당자를 뽑고, 체계를 갖췄어요.

하지만 더 놀라운 일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어느 토요일 오후였어요. 저는 백화점에 장을 보러 갔어요. 요즘은 직원들이 대부분의 일을 하지만, 저는 여전히 재료는 직접 확인하고 싶었거든요.

식품 코너를 돌아보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어요.

"자기야, 이것도 사자."

저는 그 목소리에 온몸이 얼어붙었어요.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어요. 제 전 남편 박진수였어요.

"그래, 사자. 이걸로 저녁에 스파게티 만들어줄게."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그런데 톤이 달랐어요. 제게는 한 번도 들려준 적 없는 다정한 목소리였어요.

저는 몸을 숨기고 조심스럽게 그쪽을 봤어요.

남편이 서 있었어요. 그리고 옆에는 젊은 여자가 있었어요. 남편 팔짱을 끼고 애교를 부리고 있었어요.

그 여자를 보는 순간 제 심장이 멈췄어요.

최유진.

남편이 집에 몇 번 데려왔던 회사 여직원이었어요.

"자기야, 저기 구경하자."

"그래, 우리 유진이 가고 싶은 데 다 가자."

남편이 최유진의 허리를 감싸며 웃었어요.

저는 그 자리에 서서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어요.

최유진. 그 여자가 남편이 집에 데려왔을 때가 떠올랐어요.

"사모님은 평생 집에서 밥만 하셨어요?"

얄밉게 웃으며 저를 비웃던 그 여자.

"요즘 세상에 정말 보기 드문 일이에요. 저는 절대 못 할 것 같은데."

저를 구시대적인 여자로 만들던 그 말투.

그때 이미 그 여자는 제 남편과 바람을 피우고 있었던 거예요. 제 집에서, 제 앞에서, 제가 만든 음식을 먹으면서요.

온몸에 소름이 돋았어요.

"사모님 음식 정말 맛있네요. 잘 먹겠습니다."

공손하게 인사하던 그 모습이 전부 연기였어요.

"사장님이 정말 행복해 보여요. 좋은 부인 만나셔서."

남편을 칭찬하던 그 말이 전부 거짓말이었어요.

그 순간 모든 퍼즐이 맞춰졌어요.

남편이 늦게 들어오던 날들. 주말에도 출근하던 날들. 향수 냄새가 나던 셔츠. 고급 레스토랑 영수증.

전부 최유진과 함께였던 거예요.

"여보, 사랑해.“

제 다리에 힘이 풀렸어요.

남편은 저와 이혼하고 바로 최유진과 결혼했던 거지요.

최유진이 남편 뺨에 뽀뽀를 했어요. 남편은 행복한 표정으로 웃었어요.

40년 동안 제게는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표정이었어요.

저는 더 이상 볼 수가 없어서 고개를 돌렸어요. 카트를 밀고 반대편으로 걸었어요.

화장실에 들어가서 한참을 서 있었어요.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은 창백했어요.

분노가 치밀었어요.

40년을 함께 살았던 남편이 저를 버리고 서른 살이나 어린 여자와 재혼했어요. 그것도 제 앞에서 얄밉게 굴던 그 여자와요.

그들은 아마 결혼 40주년 기념일에 저를 버리기로 계획했을 거예요. 얼마나 오래 바람을 피웠을까요? 1년? 2년?

어쩌면 그 여자를 처음 집에 데려왔을 때부터였을지도 몰라요.

저는 화장실 거울을 보며 눈물을 흘렸어요.

하지만 이내 눈물을 닦았어요.

'울지 마. 이제 울면 안 돼.'

저는 화장실에서 나와서 백화점을 나왔어요.

차에 앉아서 한참을 생각했어요.

그들에게 다가가서 뺨을 때릴까? 소리를 지를까? 모든 걸 폭로할까?

하지만 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제 인생에서 사라진 사람들이었으니까요.

대신 저는 결심했어요.

'더 성공하자. 그들이 후회할 만큼.'

저는 그날부터 더 열심히 일했어요.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마케팅을 강화하고, 지점을 빠르게 늘렸어요.

강민호가 걱정하며 물었어요.

"이모님,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니에요?"

"괜찮아. 지금이 제일 중요한 시기야."

저는 멈출 수가 없었어요. 백화점에서 본 그 광경이 계속 떠올랐거든요.

1년 후에는 지점이 여덟 개가 됐어요. 2년 후에는 열 개를 넘었어요.

3년이 더 지났어요. 저는 이제 68세가 됐지만 예전보다 더 젊어 보였어요. 매일 바쁘게 움직이고, 목표를 위해 달리니까 활력이 넘쳤어요.

'순희네 집밥'은 이제 수도권에 열 개 지점을 가진 프랜차이즈가 됐어요. 연 매출 50억 원 정도의 회사였어요.

저는 강남에 있는 작은 사무실에서 일했어요. 크지는 않지만 제 회사였어요. 제 이름으로 된 첫 회사였어요.

어느 날 지역 신문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어요.

"김순희 대표님, '지역을 빛낸 여성 사업가'로 선정되셨습니다. 인터뷰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하겠습니다."

인터뷰 날, 기자가 물었어요.

"65세에 창업하셔서 6년 만에 연 매출 50억 기업을 만드셨는데, 성공 비결이 뭔가요?"

"포기하지 않는 거예요. 그리고 정직하게 일하는 거요."

제 인터뷰는 지역 신문에 크게 실렸어요. 사진과 함께요.

그 기사가 나간 후 일주일쯤 지났을 때였어요. 제 사무실에 낯선 전화가 걸려왔어요.

"순희네 집밥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목소리에 제 심장이 쿵 내려 앉았습니다.

"저는 박진수라고 하는데요. 김순희 대표님과 통화 가능할까요?"

제 전 남편이었어요. 저는 당황하여 전화를 끊어버렸어요.

하지만 그 후로도 남편은 계속 전화를 걸었어요. 하루에 대여섯 번씩요.

저는 비서에게 말했어요.

"박진수라는 사람 전화 오면 다 거절해 줘."

"알겠습니다, 대표님."

2주 후, 회사 로비에 남편이 직접 찾아왔어요.

"김순희씨를 만나러 왔습니다."

"약속하셨나요?"

"아닙니다. 하지만 꼭 만나야 합니다."

비서가 저한테 전화했어요.

"대표님, 박진수 씨라는 분이 로비에 와 계신데요."

"보내지 마."

"알겠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로비에서 세 시간을 기다렸어요. 결국 제가 퇴근할 때 마주쳤어요.

"순희야."

남편이 저를 불렀어요. 3년 만에 제대로 마주한 순간이었어요.

남편의 모습은 많이 변해 있었어요. 예전보다 훨씬 초라해 보였어요. 정장은 낡았고, 얼굴은 수척했어요.

"무슨 일이야?"

저는 최대한 냉정하게 물었어요.

"신문에서 봤어. 네가 사업하는 거."

"그래서?"

"순희야, 우리 얘기 좀 하자."

"할 말 없어. 가줘."

저는 그냥 지나쳐서 주차장으로 갔어요. 남편이 뒤를 따라왔어요.

"순희야, 제발 좀. 나 지금 정말 힘들어."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나... 회사가 망했어."

저는 걸음을 멈췄어요. 그리고 돌아봤어요.

"회사가 망했다고?"

"응... 그 여자한테 다 당했어."

"그 여자? 누구?"

"최유진... 내가 재혼한 여자."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제 안의 분노가 다시 치밀었어요.

"아, 최유진 씨. 당신이 결혼한 그 회사 여직원?"

남편이 놀란 표정으로 저를 봤어요.

"알고 있었어?"

"응. 알고있었지. 최유진 씨가 당신 외도 상대였다는 걸. 우리 집에 데려왔을 때부터 이미 바람피우고 있었지?"

남편은 고개를 떨구었어요.

"미안해... 정말 미안해..."

"미안하다고 다야? 40년을 함께 산 부인한테 그렇게 했으면서?"

"순희야, 나도 당했어. 그 여자가 처음부터 내 돈이 목적이었어."

"그래서?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최근에 회사 지분을 자기 이름으로 옮겨달라고 했어. 나는 사랑한다고 믿고 다 해줬지. 그런데..."

남편의 목소리가 떨렸어요.

"지분 옮기고 6개월 만에 이혼 통보하더라. 그리고 회사를 팔아버렸어. 수십억을 챙겨서 외국으로 도망갔어."

저는 웃음이 나왔어요. 어이가 없어서요.

"잘됐네. 당신이 나한테 했던 것처럼 당했구나."

"순희야, 제발 좀 도와줘."

"도와달라고? 왜 내가?"

"우리 40년을 함께 살았잖아..."

"40년? 그 40년을 누가 먼저 버렸는데?"

제 목소리가 차가웠어요.

"당신은 기억 안 나? 결혼 40주년 기념일에 나한테 이혼 통보했잖아. 내가 준비한 갈비찜은 쳐다보지도 않고."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리고 최유진 씨를 우리 집에 데려왔잖아. 내가 정성껏 만든 음식을 먹이면서 내 앞에서 바람을 피웠어. 그게 얼마나 모욕적인지 알아?"

남편은 말문이 막혔어요.

"박진수. 나는 너를 용서할 생각 없어.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65세에 빈손으로 쫓겨나서 원룸에서 울던 밤들. 반찬 가게 차리고 손님이 안 와서 절망하던 날들."

"순희야..."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어. 일어섰어. 그리고 성공했어. 너 없이도."

저는 차 문을 열었어요.

"이제 가줘. 다시는 나한테 연락하지 마."

"순희야, 제발!"

남편이 제 팔을 잡으려고 했어요. 저는 뿌리쳤어요.

"나한테 손대지 마. 이제 우리는 남남이야."

저는 그대로 차에 탔어요. 시동을 걸려는데 남편이 차 앞을 막아섰어요.

"순희야, 나 정말 갈 데가 없어!"

저는 한숨을 쉬었어요. 그리고 차에서 내렸어요.

"잠깐 기다려."

저는 건물 화장실로 들어갔어요. 그리고 청소할 때 쓰는 양동이를 꺼냈어요. 양동이에는 걸레 빤 물이 담겨 있었어요. 오늘 사무실 청소하고 나온 물이었어요.

“안 버리길 잘했네” 저는 웃음이 새어나오는 것을 애써 참았지요

남편은 제가 양동이를 들고 오는 걸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어요.

"순희야, 그건..."

저는 대답하지 않고 대야의 물을 남편에게 그대로 부어버렸어요.

쏴아악!

더러운 물이 남편의 얼굴과 옷에 쏟아졌어요. 남편은 충격에 얼어붙었어요.

"이게...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이게 바로 네가 나한테 준 모욕의 맛이야."

저는 차갑게 말했어요.

"네가 날 버렸을 때 내가 얼마나 더러운 기분이었는지 알아? 40년을 헌신한 사람을 쓰레기처럼 버렸잖아."

남편의 옷에서 더러운 물이 뚝뚝 떨어졌어요.

저는 트렁크에서 수건을 하나 꺼냈어요. 그리고 남편에게 던져줬어요.

"닦고 가. 그리고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

"순희야..."

"내이름 부르지마. 네가 부를 수 있는 이름이 아니야."

저는 차에 탔어요. 시동을 걸고 창문을 내렸어요.

"박진수. 너 인생 잘 살아. 네가 선택한 거니까 책임지고 살아. 나처럼."

저는 그렇게 말하고 차를 출발시켰어요. 백미러로 보니 남편이 그 자리에 서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어요. 앞만 보고 달렸어요.

집에 도착해서 저는 샤워를 했어요. 따뜻한 물이 몸을 감쌌어요.

'이제 정말 끝났구나.'

거울을 봤어요. 68세의 얼굴이었지만 눈빛만큼은 젊었어요.

그날 밤 저는 깊이 잠들었어요. 6년 만에 처음으로 악몽 없이요.

다음날 아침, 저는 평소처럼 출근했어요. 비서가 보고서를 가져왔어요.

"대표님, 이번 달 매출이 목표치를 넘었습니다."

"잘됐네."

"그리고 새로운 지점 후보지 몇 군데 찾았는데, 확인해 주세요."

저는 보고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좋아. 일단 이 두 곳을 먼저 방문해 볼게."

일은 계속됐어요. 저는 더 이상 과거에 매달리지 않았어요.

2주 후, 강민호가 사무실로 찾아왔어요.

"이모님, 좋은 소식 있어요."

"무슨 소식?"

"KBS에서 이모님 후속 다큐 만들고 싶대요. '인생 2막, 김순희의 6년'이라는 제목으로요."

"또? 나 충분히 나온 것 같은데."

"아니에요. 많은 사람들이 이모님 근황 궁금해해요. 특히 이혼하고 새로 시작한 중년 여성들이요."

저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어요.

"알았어. 하자."

촬영은 한 달에 걸쳐 진행됐어요. 제 일상, 회사 운영, 그리고 6년간의 변화를 담았어요.

"이모님, 6년 전과 비교하면 어때요?"

강민호가 인터뷰 중에 물었어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요. 6년 전에는 남편 그림자로 살았는데, 지금은 제 이름으로 살아요. 순희네 집밥이라는 이름으로요."

"후회는 없으세요?"

"후회요? 하나도 없어요. 오히려 감사해요. 남편이 날 버려줘서. 덕분에 진짜 내 인생을 찾았으니까."

제 말에 강민호가 감동한 표정을 지었어요.

다큐멘터리가 방송됐을 때 반응은 뜨거웠어요.

"김순희 대표님 정말 멋있어요!"

"저도 이혼하고 새로 시작할 용기가 났어요!"

"65세에 시작해서 6년 만에 50억 기업이라니, 대단하세요!"

메시지가 쏟아졌어요. 저는 하나하나 읽으면서 뿌듯했어요.

그리고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어요.

방송 후 일주일쯤 지났을 때 회사로 한 통의 편지가 왔어요. 보낸 사람은 최유진의 대학 동기라고 적혀 있었어요.

저는 편지를 열었어요.

"김순희 대표님께. 저는 최유진의 대학 동기입니다. TV에서 대표님을 보고 이 편지를 씁니다. 최유진은 전문 결혼 사기꾼입니다. 그녀는 이미 네 명의 남자와 결혼했다가 재산을 빼앗고 도망갔습니다. 박진수 씨도 그중 한 명입니다. 저는 그녀의 범죄를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어서 경찰에 제보했습니다. 대표님께도 알려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편지를 덮으며 씁쓸하게 웃었어요.

'결국 그렇게 됐구나.'

그날 저녁, 뉴스를 보는데 최유진이 공항에서 체포되는 장면이 나왔어요.

"결혼 사기 혐의로 수배 중이던 최모씨가 오늘 인천공항에서 검거됐습니다. 최씨는 지난 5년간 네 명의 남성과 결혼해 총 80억 원을 가로챈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저는 TV를 끄고 창밖을 봤어요. 서울 야경이 반짝였어요.

'모든 게 끝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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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부: 진짜 승리는 이제부터 (55-70분)

3개월이 지났어요. 최유진의 재판 소식이 간간이 들려왔지만 저는 관심이 없었어요. 그건 이제 제 인생이 아니었으니까요.

대신 저는 제 일에 더 집중했어요. 열한 번째 지점을 준비하고 있었고, 새로운 메뉴도 개발하고 있었어요.

어느 봄날 오후였어요. 저는 회사 근처 공원을 산책하고 있었어요.

벤치에 앉아서 꽃들을 보고 있는데 누군가 조심스럽게 다가왔어요.

"순희야..."

저는 그 목소리를 알아봤어요. 돌아보니 제 전 남편이었어요.

6개월 만에 보는 모습이었어요. 예전보다는 좀 나아 보였어요. 옷도 깨끗했고, 얼굴색도 괜찮았어요.

"왜 또 왔어?"

"미안해. 그냥... 네 모습이 보고 싶어서."

남편이 조심스럽게 말했어요. 저는 한숨을 쉬었어요.

"할 말 있으면 해. 나 곧 가야 해."

"순희야, 나 이제 일자리 찾았어. 작은 회사 경리로 일하고 있어."

"그래? 잘됐네."

"그리고... 상담도 받고 있어. 정신과 상담.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우고 있어."

저는 남편을 봤어요. 진심으로 반성하는 것 같았어요.

"다행이네."

"순희야, 나 정말 미안했어. 너한테 한 짓 평생 후회하면서 살 거야."

"그래."

저는 짧게 대답했어요.

"용서는... 못 하겠지?"

"용서요?"

저는 잠시 생각했어요.

"용서는 할 수 있어. 하지만 잊지는 않을 거야. 그리고 다시 돌아갈 생각도 없고."

"알아. 그냥... 미안하다는 말만 하고 싶었어."

남편이 일어섰어요.

"잘 살아, 순희야. 너 정말 대단해. 진심으로."

남편은 그렇게 말하고 걸어갔어요. 저는 그의 뒷모습을 봤어요.

예전 같았으면 마음이 아팠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어요.

그는 이제 제 인생에서 완전히 사라진 사람이었으니까요.

저는 벤치에서 일어나 산책을 계속했어요. 봄꽃들이 활짝 피어 있었어요.

'참 아름답구나.'

그날 저녁, 강민호와 저녁을 먹었어요.

"이모님, 다음 주에 중소기업협회에서 강연 요청이 들어왔어요."

"강연이요?"

"네. '65세, 새로운 시작'이라는 주제로요. 참석하실래요?"

저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해볼게. 제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기쁘죠."

강연 날, 저는 떨리는 마음으로 무대에 올랐어요. 청중석에는 50명 정도의 중년 여성들이 앉아 있었어요.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김순희입니다."

저는 마이크를 잡고 말했어요.

"여러분도 다 아시겠지만, 저는 65세에 이혼했어요. 40년을 함께 산 남편한테 버림받았죠. 그때는 세상이 끝난 줄 알았어요."

청중들이 공감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어요.

"하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았어요. 2천만 원으로 작은 반찬 가게를 열었어요. 처음엔 손님이 없어서 망할 뻔했죠."

"그런데 운이 좋았어요. 20년 전에 제가 밥을 줬던 청년이 PD가 되어서 저를 도와줬거든요. 그 작은 선행이 20년 후에 큰 행운으로 돌아왔어요."

제 목소리가 따뜻해졌어요.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어요. 인생은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 나이는 숫자일 뿐이에요.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에요."

청중들의 눈에 눈물이 고였어요.

"그리고 한 가지 더. 남한테 잘하세요. 언제 어떻게 돌아올지 몰라요. 저처럼요."

강연이 끝나고 한 여성이 다가왔어요.

"대표님, 저도 대표님처럼 될 수 있을까요? 저는 육십이에요. 너무 늦은 건 아닐까요?"

저는 그 여성의 손을 잡았어요.

"늦은 건 없어요. 제가 시작한 게 65세예요. 당신은 3년이나 빠른 거예요."

여성이 눈물을 흘리며 웃었어요.

"감사합니다. 용기가 나요."

그날 이후로 저는 종종 강연 요청을 받았어요. 그럴 때마다 저는 기꺼이 제 이야기를 나눴어요.

1년이 더 지났어요. 저는 이제 69세가 됐어요.

'순희네 집밥'은 이제 열두 개 지점을 가진 안정적인 프랜차이즈가 됐어요. 연 매출은 60억 원 정도였어요.

저는 이제 일선에서 물러나고 전문 경영인에게 일을 맡기기 시작했어요. 대신 저는 메뉴 개발과 품질 관리에만 집중했어요.

어느 날 회계사가 보고서를 가져왔어요.

"대표님, 지금 회사 가치를 평가하면 약 100억 원 정도 됩니다."

"100억이요?"

"네. 만약 매각하신다면 충분히 받을 수 있는 금액입니다."

저는 잠시 생각했어요. 100억이면 평생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돈이었어요.

하지만 고개를 저었어요.

"아니야. 팔지 않을 거야."

"왜요?"

"이건 내가 처음으로 제대로 가진 거야. 남편 이름도 아니고, 누구 덕도 아니고, 순전히 내 손으로 만든 거야. 이걸 팔면 다시 빈손이 되는 것 같아."

회계사는 제 말을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해 가을이었어요. 강민호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이모님, 결혼식에 꼭 오세요. 주례도 부탁드리고 싶어요."

"주례를요?"

"네. 이모님이 제 인생의 은인이세요. 이모님이 아니었으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거예요."

저는 감동했어요.

"알았어. 기꺼이 할게."

결혼식 날, 저는 주례사를 했어요.

"오늘 이 자리에 선 두 사람을 보면서 저는 행복합니다. 신랑 강민호 군은 제가 20년 전에 밥을 줬던 청년입니다. 배고픈 대학생에게 밥 한 끼 더 준 게 전부였는데, 그 청년이 성공해서 6년 전 어려울 때 저를 도와줬습니다."

제 목소리가 떨렸어요.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선한 일은 반드시 돌아옵니다. 언제,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지 모르지만 반드시 돌아옵니다. 그러니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세요."

청중들이 박수를 쳤어요.

결혼식이 끝나고 강민호가 저를 꼭 안았어요.

"이모님, 정말 감사해요. 평생 잊지 않을게요."

"너도 고마워. 너 덕분에 내가 여기까지 왔어."

"아니에요. 이모님 힘이에요."

저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어요.

그날 밤, 저는 집으로 돌아와서 창밖을 봤어요. 이제 저는 강남의 작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어요. 원룸에서 벗어나 제 집을 마련한 거예요.

40평 정도의 아파트였지만 전부 제 돈으로 산 집이었어요. 제 명의로 된 첫 집이었어요.

'여기까지 왔구나.'

거울을 봤어요. 69세의 얼굴이었지만 당당했어요. 주름이 있었지만 빛나고 있었어요.

"김순희, 잘했어. 정말 잘했어."

저는 거울 속 제게 말했어요.

다음날 아침, 저는 첫 번째 지점으로 출근했어요. 오랜만에 직접 가게를 보려고요.

가게에 들어가니 손님들이 줄을 서 있었어요. 7년 전 처음 문을 열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어요.

"사장님! 오랜만이에요!"

단골 손님 한 분이 반갑게 인사했어요.

"어머, 정말 오랜만이네요.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잘 지내죠. 사장님 반찬 먹으면서요. 여전히 맛있어요."

저는 미소를 지었어요. 이게 제가 원했던 삶이었어요.

오후에는 사무실로 돌아왔어요. 비서가 보고서를 가져왔어요.

"대표님, 이번 분기 실적이 좋습니다. 전년 대비 20% 성장했어요."

"잘됐네."

"그리고 한 가지 더. 구청에서 '지역 모범 기업가상'을 주신대요."

"그래? 감사하네."

저는 보고서를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어요.

그날 저녁, 저는 혼자 조용히 와인 한 잔을 마셨어요. 베란다에 나가서 야경을 보면서요.

7년 전, 원룸 창문으로 건물 벽만 보던 제가 이제는 이렇게 넓은 하늘을 보고 있어요.

"엄마, 하늘에서 보고 계세요? 딸 잘하고 있죠?"

저는 하늘을 보며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렸어요.

어머니는 평생 아버지 뒷바라지만 하다가 돌아가셨어요. 제가 어머니 같은 삶을 살까봐 걱정하셨었죠.

"엄마, 저는 엄마처럼 살지 않았어요. 제 인생을 찾았어요."

바람이 불었어요. 마치 어머니가 대답하는 것 같았어요.

'잘했다, 딸아.'

저는 미소를 지었어요.

그날 밤, 저는 일기를 썼어요.

"오늘로 제 새로운 인생 7년차가 됐습니다. 65세에 시작해서 69세가 된 지금, 저는 행복합니다. 회사가 100억 가치가 됐다고 해서가 아니라, 제가 제 인생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40년 동안 남편의 그림자로 살았던 제가 이제는 제 이름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배신은 고통스러웠지만, 그 고통이 저를 여기까지 이끌었습니다.

만약 그때 남편이 저를 버리지 않았다면, 저는 평생 제 가능성을 모르고 살았을 거예요.

그래서 이제는 말할 수 있어요. 고맙다고. 날 버려줘서 고맙다고.

덕분에 진짜 내 인생을 찾았다고."

저는 일기장을 덮고 침대에 누웠어요.

내일은 또 바쁜 하루가 될 거예요. 가게 방문도 있고, 회의도 있고, 새 메뉴 시식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기대됐어요. 매일매일이 제 인생이니까요.

더 이상 누구의 그림자가 아닌, 제 빛으로 사는 삶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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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필로그: 진짜 행복 (70분)

2년이 더 지났어요. 저는 이제 일흔한 살이 됐어요.

'순희네 집밥'은 열다섯 개 지점으로 늘어났어요. 더 이상 급격하게 늘리지 않고 천천히 안정적으로 키워가고 있어요.

연 매출은 80억 원 정도예요. 큰 기업은 아니지만 탄탄한 회사예요.

저는 이제 대표직에서 물러나고 회장이 됐어요. 실무는 젊은 CEO에게 맡기고, 저는 큰 방향만 잡아주는 역할이에요.

대신 저는 새로운 일을 시작했어요. 작은 재단을 만든 거예요.

"순희 재단"이라는 이름으로요.

"저처럼 이혼하고 힘든 중년 여성들을 돕고 싶어요. 창업 자금도 지원하고, 교육도 시키고요."

재단을 통해 매년 스무 명의 여성들에게 창업 자금과 교육을 지원했어요.

어느 날 재단 사무실에 한 여성이 찾아왔어요.

"회장님, 감사합니다. 회장님 덕분에 제가 작은 카페를 열었어요."

그 여성은 쉰다섯 살에 이혼하고 재단의 도움으로 카페를 연 분이었어요.

"잘됐네요. 장사는 잘되세요?"

"네! 손님들이 많이 와요. 회장님 이야기 들으면서 용기를 얻었어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저는 뿌듯했어요.

어느 가을날 오후였어요. 저는 강민호와 함께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어요.

"이모님, 정말 멋지세요. 재단까지 만드시고."

"나도 도움 받았으니까 남도 도와줘야지."

"이모님이 도와준 사람들이 얼마나 감사해하는지 아세요?"

"알아. 그 감사함이 나를 더 열심히 살게 해."

강민호가 웃으며 말했어요.

"이모님, 제가 새 다큐 기획하고 있어요. 제목이 '작은 기적, 김순희 9년의 기록'이에요."

"또? 이제 그만 나오면 안 돼?"

"안 돼요. 이모님 이야기는 계속 전해져야 해요.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얻으니까요."

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알았어. 네가 하고 싶으면 해."

그날 저녁, 저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예전에 살던 원룸 근처를 지나갔어요.

차를 세우고 그 건물을 바라봤어요. 9년 전 제가 살던 곳이었어요.

'여기서 시작했었지.'

저는 차에서 내려서 그 골목을 걸었어요. 제 첫 가게가 있던 곳도 지나갔어요.

지금은 다른 가게가 들어서 있었어요. 하지만 그 골목은 여전히 똑같았어요.

'여기서 처음 문을 열었을 때가 생각나네.'

저는 그 앞에 서서 한참을 생각에 잠겼어요.

9년 전 그날 밤, 저는 이 골목에 서서 울었었어요. 손님이 한 명도 오지 않아서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어요.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문을 열었어요.

그리고 지금, 저는 열다섯 개 지점을 가진 회사의 회장이 됐어요.

'꿈만 같아.'

저는 골목을 빠져나와 차에 탔어요. 그리고 집으로 향했어요.

집에 도착해서 저는 베란다로 나갔어요. 서울 야경이 아름다웠어요.

9년. 긴 시간이었지만 짧게 느껴졌어요.

65세에 이혼 통보를 받고, 빈손으로 원룸에서 시작했던 제가 지금은 제 집에서 편안하게 차를 마시고 있어요.

'인생은 정말 알 수 없는 거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어요.

다음날 아침, 저는 첫 번째 지점을 방문했어요. 가끔씩 직접 가서 손님들을 만나는 게 좋았거든요.

"사장님! 오셨어요!"

직원들이 반갑게 인사했어요.

"응, 오늘은 내가 직접 반찬 좀 만들어볼까 해서."

"정말요? 와, 오랜만이에요!"

저는 주방에 들어가서 앞치마를 둘렀어요. 그리고 된장찌개를 끓이기 시작했어요.

50년 넘게 해온 일이었어요. 손이 저절로 움직였어요.

된장을 풀고, 멸치 육수를 붓고, 두부와 호박을 썰어 넣었어요.

"역시 회장님 손맛은 다르네요."

직원이 맛을 보고 감탄했어요.

"오랫동안 해서 그래. 너희도 계속하면 이렇게 돼."

저는 웃으며 말했어요.

그날 저녁, 저는 혼자 조용히 저녁을 먹었어요. 제가 만든 된장찌개와 밥으로요.

'맛있네.'

저는 한 숟가락 먹으며 생각했어요.

40년 동안 남편을 위해 만들었던 이 음식을, 이제는 저를 위해 만들고 있어요.

저는 내일 할 일을 생각했어요. 새로운 메뉴 회의, 재단 미팅, 그리고 강민호와의 다큐 촬영.

'내일도 바쁘겠네.'

저는 웃으며 침대에 누웠어요.

그날 밤, 저는 깊이 잠들었어요. 편안한 마음으로요.

여러분, 여기까지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 분이 있다면, 이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인생은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 나이는 숫자일 뿐이고, 진짜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에요.

저는 65세에 시작해서 9년 만에 여기까지 왔어요. 큰 부자는 아니지만, 제 이름으로 당당하게 살고 있어요.

그리고 기억하세요. 당신을 버린 사람에게 복수하는 최고의 방법은 잘 사는 거예요.

당당하게, 행복하게, 당신 이름으로 빛나는 거예요.

저처럼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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