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눈물이 다 말랐다고 했다. 니네 아빠, 니네 오빠, 니네 삼촌 때문에 밤새 울고 울고 또 울다 지쳐 잠드는 날이 많았다고. 그다음부터는 눈물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니네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에도. 정말 그랬다. 엄마는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도 화장터에서도 울지 않았다. 다만, 우는 소리만 조금 새어 나왔을 뿐.
우리 할머니는 광화문 대궐 같은 집에서 살았다. 엄마 손을 잡고 지하철을 타고 광화문에서 내려 사거리를 지나 단독주택들이 즐비한 골목을 걸어가면, 검은색의 높은 철제 문이 탄탄하게 지키고 있는 할머니의 집이 나왔다. 엄마는 항상 벨을 누르지 않고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가 엄마 나왔어~ 하면 탈칵, 하고 문이 열렸다. 철제 문이 뻐거덕 열리면 높은 계단이 주룩 이어졌고, 엄마는 나를 조용히 시키며 계단을 올랐다. 그 계단을 오르면 우측에는 작은 정원에 큰 개가 있었고, 돌판으로 정갈히 다듬어진 길을 따라 걸으면 비로소 현관에서 할머니가 뒷짐을 지며 어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할머니를 따라 곧장 부엌으로 가면 된장찌개, 생선 같은 것들을 주룩 상에 올려주셨다. 엄마는 할머니의 밥을 허겁지겁 맛있게 먹었다. 대부분 엄마와 할머니는 웃다가 언성을 높이다가 다시 웃다가를 반복했다. 엄마와 할머니가 수다를 떨고 있으면 나는 할머니의 작은 방에 기웃거리다가 거실에 이상한 장식품을 구경하다가 구석에 방치되어 있는 피아노를 괜히 건드려보기도 했다. 할머니 몰래 이층에 올라가 보기도 했지만, 거실 끝에 있는 큰 방의 문은 감히 가까이 가지 못했다.
할머니는 식모였다. 명절마다 우리 집이나 큰 삼촌네, 이모네에서 고작 하루를 보내시는 일도 할머니는 불안해 발을 동동 구르셨다. 자기를 빨리 그 집으로 보내달라고. 오자마자 가려고 채비를 하셨다. 낙타 같다고 생각했다. 밧줄에 묶여 사막의 밤을 보낸 낙타가 낮에는 밧줄을 풀어줘도 도망가지 않는, 그렇게 길들여진 낙타 같다고. 아무도 길들여진 할머니를 어쩌지 못했을 것이다. 할머니는 자식들에게 신세를 지고 싶지 않고 단돈 몇 십만 원이라도 줄 수 있는 그 상태가 흡족하셨을 테다.
그래서 엄마는 밤이고 낮이고 미싱을 돌리면서 할머니만 생각하면 그렇게 힘이 났다고 한다. 그런데 돌아가시고 나서 할머니를 생각하자니 엄마가 딱 그런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아이고. 고아가 되어버렸네-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도 화장터에서도 생각보다 슬퍼 보이지 않았던 엄마가 한참 동안 풀이 죽어 보였던 것은 아마 그 때문이었을 테지.
그 마음을 이제야 더 헤아릴 수 있을 것만 같다. 아빠가 살아계신대도, 남편과 자식이 있어도, 형제가 있어도 엄마가 없는 세상은 고아가 되는 마음이라고. 그래서 말인데, 엄마. 최소한 20년은 더 살아야 할 것 같아 아니지, 30년 더 해서 백세 채우자. 아무래도 이번 설날 선물은 공진단을 사드려야겠다. 어디 공진단이 좋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