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태어나고 남편과 나는 각자의 할 일이 자연스럽게 분담되었다. 남편은 최소한 7시간은 자야 생활이 가능한데, 낮잠으로 충전하면 밤잠이 오지 않는 이상한 잠의 규칙이 있다. 나는 그야말로 잠만보. 언제 자더라도 양만 많으면 되는 스타일이라, 아기의 밤을 책임졌다. 대신 주말 아침에 남편이 좀 더 아기를 보거나 나에게 낮잠 시간을 주는 식으로 서로의 잠을 배려했다. 주방 일은 거의 내 몫인데, 평일에는 남편이 설거지를 하거나 내가 설거지를 하면 남편이 아기를 보거나, 서로가 서로의 서포트를 해주었다.
또 (깍쟁이 같은) 우리 남편은 비위가 참 약하다. 그래서 아기가 태어나기 전까지 음식물쓰레기는 내가 자처해서 내다 버렸다. (아마 남편은 잘 모를 것이다.) 나는 남편보다 비위가 좀 세니까, 그냥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고작 음식물쓰레기 버리는 것에 비위가 약하다며 엄살을 부리는 게 좀 귀엽기도.. 으흠. 아무튼 그런데 아기가 태어나니 내가 집 밖을 나갈 일이 많지도 않고, 나가더라도 유모차를 끌고 한 손에 음식물쓰레기를 들 수가 없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음식물쓰레기는 남편의 몫이 되었고, 지금은 남편이 어딜 나갈 때마다 한 손에 음식물쓰레기를 아주 잘 챙겨주고 있다. 남편은 미간과 코를 찌푸리지만, 아주 잘한다. (잘해야지 뭐!) 얼마 전 돌잔치도 있고, 남편이 밀린 연가를 쓰게 되면서 거의 열흘을 세 식구가 같이 하루 종일 붙어있었다. 우리는 꽤 잘 맞는 육아동지였다. 내가 설거지할게. 오빠가 아기랑 놀아. 나 낮잠 좀 잘게 오빠가 아기랑 좀 놀아줘!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기 마련. 나도 남편에게 켜켜이(?) 게임시간을 선사했다. 서로의 쉬는 법을 잘 아는 우리는 각자가 원하는 휴식을 하게 해 주었다.
물론, 남편이 집안일을 할 때 100% 맘에 드는 아내는 없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예를 들어 설거지를 시작할 때 양념 묻은 그릇끼리 포개 놔 그릇 엉덩이까지 양념을 묻힌다거나 설거지를 마치고 물기 젖은 수세미를 싱크대 옆에 그대로 두는 것들이다. 그런 게 정말 맘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한 번도 그것에 대해 말한 적이 없다. (아 한 번은 했던 것 같다.) 매번 볼 때마다 신경이 쓰이지만 말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은 그 사람의 '습관'이라는 건데 그건 웬만하면 바뀌지 않는다. 더 핵심은 '나만' 불편하단 것이다. 애초에 내 맘에 들지 않은 것은 내 맘에 들 게 내가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뭐 그릇의 엉덩이까지 양념이 묻으면 어떠랴. 이 기회에 그릇 엉덩이까지 박박 닦으면 되고 물기 젖은 수세미가 보이면 그냥 한번 꽉 짜서 걸어두면 그뿐이지 않은가!
더치페이가 쿨하고 편하다 하더니 이제 생활에도 더치페이가 접목되는 것 같다. 요즘에는 뭐가 됐든 내가 좀 더 하면 손해 보는 일이 되고, 미련한 사람이 된다. 집안에서뿐만 아니라 집 밖에서까지도. (집 밖에서 그런 마인드라 집안까지 그런 마인드가 전염되는 걸까?) 아무튼 어디서든 내가 더 하겠다는 마음을 갖는 게 어렵다면, 서로 '보완'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나는 이런 부분이 너보다 나으니까, 이건 내가 할게. 이 부분은 네가 더 나으니까 네가 하고. 이렇게?
자, 이제 복직하면 나도 출근을 해야 하니까, 슬슬 아기 밤잠 담당을 보완할 필요가 있을 것 같네? 으흠. 남편과 심도 깊은 협상이 필요하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