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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릴 Mar 18. 2018

2. 배우 이혜영

남성 중심 사회 속 배우 이혜영의 말과 생각

 내가 이혜영 배우를 처음 본 건 2017년 연극 메디아에서였다. 그 무대에서, 나는 뒤돌아 서있는 것만으로 압도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이혜영 배우을 보았다. 이혜영 배우님의 모든 말과 움직임은 압도적이었고,  등장한 모든 순간을 지배했다. 극 보는 내내 '온몸을 써서 연기한다는 것이 저런 것이구나, 연기를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정말 존재하는구나' 하며 감탄했다. 

연극 메디아 장면 (출처: 연합뉴스)

 어떤 공연은 원작을 읽어보게 만들고, 어떤 공연은 연출가를 궁금하게 만든다. 연극 메디아는 '이혜영'이라는 배우를 찾아보게 만들었다. 어떻게 저렇게 독보적이고 특별하며 유능한 '여자' 배우가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여자에게 수동적이고 청순한 역할만을 기대하는 한국 사회에서 그녀는 어떤 역할들을 해왔을까. 과연 그녀에게 걸맞은 역할들이 있기는 했을까? 나는 이혜영 배우의 생각과 언어가 궁금해 이혜영 배우의 인터뷰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1.  이혜영 배우의 연기론 


아래는 이혜영에게 연극이란 질문에 대한 답이다. (2017년 인터뷰 출처: http://webzine.e-stc.or.kr/02_interview/actdate_view.asp?SearchKey&SearchValue&rd&flag=READ&Idx=966) 

내 존재, 내가 존재하는 이유. 나는 내가 좋아서 배우를 했고, 뭘 보여주고 싶어서 했잖아. (웃음) 특별히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냥 그 자체라고 생각해요. 연극적이라는 게, 어떤 척을 한다거나 거짓말을 한다거나, 그런 식의 표현으로 많이 쓰이잖아요. “연기하지 마, 거짓말하지 마” 그렇게. 그런 게 아니라 연극이라는 게 극대화된 감정의 표현이잖아요. 그야말로 자기를 표현하는. 그런 게 내 적성에 맞는 것 같아요. 내가 매일 그 안에 들어가 있을 수는 없지만 한 번도 거기서 나를 떨어트려서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이혜영 배우는 극대화된 감정의 표현' '자기를 표현하는 것' 극대화되게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을 표출하는 것이 연기라고 말한다. 연기는 거짓이 아니라 극대화되게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내가 느끼는 감정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한국 사회는 자기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성격을 예민하거나 신경질적이라고 말하곤 한다. 특히 그것이 '여성' 배우였을 때, 연기는 잘할 수 있어도  감정을 드러내는 여배우의 실제 성격은 지나치게 감상적, 이기적, 철이 없을 것이라고 에측하곤 한다. '여배우는 예민하지' '여배우들은 이기적이야' 이혜영 배우를 다룬 뉴스 타이틀을 보면 '예민하고' '섹시하고' '카리스마 있으며' '청담동 사모님 스타일'이라는 수식어를 단다. '센 언니'의 느낌. 다가가기 어렵고,  예민하며 불안한 극단적 성격의 이미지. 


 이혜영 배우는 자신에게 부여된 '카리스마' '예민함' '섹시'와 같은 수식어를 가뿐히 뛰어넘은 채, 좋은 배우는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균형'과 '안정성'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좋은 배우는 남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인간'이어야 함을 강조한다. (출처: 위의 인터뷰와 동일) 


배우라는 게 태생적으로 그런 건지, 사랑을 주기보다는, 받으려고 하잖아요. 받고 있나, 확인하고. 그러다 보면 자기중심적으로 되고, 좁아지게 되고요. 보기도 많이 봐야 되고 남도 배려해야 되고, 사랑하는 마음도 커야 되고,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인간으로서 정말 존경할만하다, 라는 수준이 돼야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인간이 먼저 돼라, 가 정말 맞는 말이야. 인간이 되려면 그런 모든 게 안정적으로, 균형이 맞아야 되는 거죠. 

2. 이혜영 배우의 작품 


▶ 팜므파탈, 카리스마 있는 여성, 센 엄마 - 남성 중심적 사회 속 반복되는 이미지


그녀는  80년대-90년대 각종 연기상을 수상하며 뮤지컬, 연극, 드라마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그리고 결혼과 출산 등의 이유로 활동이 꾸준히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2000년대 몇 개의 영화 및 드라마에 출현한 뒤, 2010년대 연극으로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연극에서만 볼 수 있었던 이혜영 배우는 최근 종영한 2018년 tvn 드라마 '마더'로 7년 만에 드라마에 출연했다. 

 개인적으로 마더가 반가웠던 이유는, 이혜영 배우의 온전한 매력을 드러낼 수 있었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이혜영 배우에게 반하고 그녀의 작품을 찾아보면서 나는 한국 사회에서 그녀가 맡을 수 있는 역할이 매우 한정적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80-90년 대에는 '팜므파탈'느낌의 '섹시한 여성', 2000년대에 들어서는 '카리스마 있는 엄마' '센 어머니'등이 주를 이뤘다. 그리고 그녀가 맡은 캐릭터는 분명한 맥락과 배경이 있기보다는 이혜영 배우의 강렬한 이미지만을 소비하는 경우도 많았다. 도발적인 여자, 악녀, 또는 엄마. 이는 남성들이 그녀에게  기대하는 이미지였다.

영화 여왕벌(1985년) 속 성적으로 개방적인 캐릭터 '여왕벌'역


꽃보다 남자(2009년) 속 독한 구준표 염마 '강희수'

  그녀 또한 들어오는 배역의 한계와 문제점에 대해 인식하고 있음을 인터뷰에서 자주 드러내곤 했다. 예를 들어 한 영화에 출연하면서 시나리오 상으로 존재감과 맥락을 더 부여하겠다고 약속한 남성 감독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채  영화를 완성하자 서운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한 자신이 생각했을 때는 주체적인 선택을 했어야 할 여주인공이 남성 연출가에 의해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자 연출가의 선택에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한물간, 왕년의 스타로 여겨지곤 했다. 남성 배우는 늘 '현재'의 연기를 하며 늙어서도 다양한 연기를 맡을 수 있지만 나이 든 여자 배우는 '과거'의 젊고 이뻤던 시절의 기억만이 강조되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젊은 시절 인기를 누렸던 그녀가 자신의 늙음을 슬프게 바라볼 것이라고 가정하며, 그녀를 '과거'에 둔다. '현재'에 움직이는 배우가 아닌 '과거'에 갇힌 배우. 그녀는 대중의 이런 시선에 일침을 가한다. (아래 인터뷰 출처 :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50060


인터뷰할 때는 다들 “요즘 현장 많이 달라졌죠?” 이러면서 질문하거나 “참 안 늙으셨네요. 한 50 되셨죠?” 이런다. 근데 난 20대 때 이미 40대 역을 맡았거든. 그리고 또, 내가 여태껏 영화만 생각하고 살았냐면 그것도 아니야. 나도 라이프가 있었고 애들도 있어. 내 인생은 그렇게 뒤처져 있지 않다고. 지금도 남들과 같이 가고 있는데, 왜 뭐가 달라졌냐는 질문을 나한테 하냐고. 사실 난 아무런 갭을 못 느끼고.


▶  이혜영 배우에게 바치는 '마더' 


  이혜영 배우는 7년 만의 드라마 복귀를 결심한 이유로 '정서경' 작가에 대한 기대감을 꼽았다. 

(아래 인터뷰 출처: http://news1.kr/articles/?3210660

제목이 '마더'다. 엄마도 어머니도 아닌 '마더'다. '마더 어스, 마더 텅' 이런 말을 듣는다. 대지와 같은 넓은 바다, 엄마와 어머니로서는 마더라는 단어가 주는 스케일이 느껴졌다"며 "역시 정서경이다. 뭔가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들여다봤고 역시 저의 역할이 엄마나 어머니의 사회적 의미가 아닌 훌륭한 마더더라. 그래서 하기로 했다

 자식의 주변 인물로서 다뤄지는 단선적이고 평면적인 엄마가 아닌, '마더'라는 입체적이면서 광활한 인물이기에 선택했다는 이혜영 배우의 말을 읽으며 너무나 반가웠다. 나 또한 큰 기대를 가지고 마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았고, 이혜영 배우가 맡은 '영신'이라는 인물을 매주 볼 수 있어서 기뻤다. '영신'의 삶은 맥락이 있었고, 독립적이었으며, 무엇보다 이혜영 배우에 대한 존중이 담겨있는 인물이었다. 
 
 나는 가끔 영신의 말속에서 이혜영 배우의 삶에 대한 존경이 읽혔다. 그중 가장 좋았던 장면은 아래 영상 1분 8초부터 2분 8초 약 1분간의 대사다. 유명 배우인 영신은 자신의 딸을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또 딸을 놓아주기 위해 자신에게 가장 어려운 선택을 앞둔 영신은 혜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영상: http://tv.naver.com/v/2750716
영신: 나는 살면서 참 많은 역할을 했단다. 젊어서 아무것도 몰랐을 땐 오필리아, 남자한테 배신당해서 미쳐버렸을 땐 메디아, 그런데 오늘 밤엔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역할을 하게 될 것 같아.
혜나: 어떤 역할인데요? 
영신: 데메테르. 너무나 사랑하는 딸을 잃어버리는 여자. 
혜나: 그래서 그 사람은 딸을 못 찾아요? 
영신:  그러게 오늘 밤 나의 데메테르는 딸 페르세포네를 영영 잃어버릴 것 같네.


 대사 사이 호흡과 표정, 말투. 모든 것이 너무나 완벽한 위 장면을 보면서, 나는 영신의 삶과 배우 이혜영의 삶이 겹쳐 보였다. (실제로 이혜영 배우는 메디아 역을 한 경험이 있다)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 위해 연기하는 이혜영 배우와 끊임없이 연기를 하며 삶을 살아가는 영신. 누구보다도 깊게 빛나는 사람들.  

 앞으로도 이혜영 배우의 목소리와 표정, 연기를 자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그녀가 영신과 같이 입체적이고 독립적인 배역을 자주 맡게 되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그녀는 인터뷰에서 맑고 순진한 역할처럼 그녀에게 대중이 부여한 이미지와 상반된 역할 또한 욕심을 낸 적이 있다. 어떤 역할이든 그녀의 방식대로 완벽한 연기를 보일 것이다. 이렇게 빛나는 배우에게 걸맞은 역할들이 많아진다면, 그건 우리가 조금 더 아름답고 다양한 사회에 살고 있다는 징표일 테다. 


(표지 사진 출처: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1559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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