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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표심 Mar 14. 2023

'미류나무'가 표준어가 아니라고요?

미류나무 꼭대기에 걸린 조각구름

1. 동요 흰구름


  "혹시 어려서 불렀던 흰구름이란 노래 기억나세요?"

  "교회에서 불렀어요. 이렇게 시작하잖아요."

  "해 보세요."

  "흰구름 뭉게뭉게 피는 하늘에

  아침해 명랑하게 솟아오른다♬"


  "하하하 그 건 교회 여름성경학교 교가였어요."

  "에헤?"

  "제가 흰구름 앞을 불러 볼 테니까, 이어서 해 보세요."

  "네"


1976년 국민학교 3학년 음악책 / '흰구름' / https://youtu.be/-_eGZh7XuCs


  내가 먼저 불렀다.

  "미류나무 꼭대기에 조각구름 걸려있네. 솔바람이 몰고 와서♬"

  "걸쳐 놓고 도망갔어요♬" 그가 이어 불렀고, 나는 또 물었다.

  "요즘 가사가 변한 것 아세요?"


  '흰구름'은 70년대 국민학교 3학년 음악교과서에 실린  박목월 작사 외국곡이다. 과거 음악교과서 자료를 찾다가 이 노래 가사가 변한 것을 발견했다. 미류나무가 도망갔다.

<과거> 미류나무 꼭대기에 조각구름 걸려있네. 솔바람이 몰고 와서 걸쳐 놓고 도망갔어요♬
<현재> 미루나무 꼭대기에 조각구름 걸려있네. 솔바람이 몰고 와서 살짝 걸쳐 놓고 갔어요♬


  1978년 3월에 돌아가신 박목월 시인이 가사를 스스로 바꿨을 리가 없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



2. 혼용되었지만 원조는 미류나무


  동요 '흰구름'에서 미류나무가 사라진 것은 정확히 언제인지 아직 알 수가 없다. 국립국어원 온라인 소식지 <쉼표, 마침표>에서는 미국에서 들어온 버드나무(柳)라는 뜻에서 미류(美柳)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밝힌다. 원조는 미류나무였다. 그런데, 왜 미류나무는 사라지고, 미루나무로 대체 되었을까?

■ 국립국어원 온라인 소식지 <쉼표, 마침표> [1]
"미국(美國)에서 들어온 버드나무(柳)라는 뜻으로 ‘미류(美柳)’라는 이름이 붙었다.
하지만
① 현실에서는 ‘미류나무’와 ‘미루나무’가 혼용되다가 ‘미루나무’가 정착하게 되었다.
② ‘미류’의 이중모음 ‘ㅠ’의 발음이 어려워 상대적으로 발음하기 편한 단모음 ‘ㅜ’로 바꿔 부르게 된 것이다.
③ 이에 1988년 표준어 개정에서는 ‘미루나무’를 표준어로 삼게 되었다.
표준어 지역에서도 이중 모음의 단순화 과정으로 애초의 형태를 들어 보기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위 국립국어원의 말을 요악하면 다음과 같다.


  미류나무와 미루나무가 혼용되었다. -> ( 발음이 편한 미루나무가 우세해졌고, ) -> 표준어를 쓰는 서울에서도 미류나무라는 말을 들을 수 없어서 -> '미루나무'를 1988년에 표준어로 삼았다.


  이 말은 맞는 맞을까?


  두 말이 혼용되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1920년대 조선일보 기사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러, 표준어 지역에서도 '미류(美柳)나무'란 말을 듣기 어렵다는 말은 사실일까? 아닌 것 같다. 1988년 표준어규정 이후 1990년대 신문기사에서도 여전히 '미류(美柳)나무'는 건재했다. 계속 보고 들을 수 있었다.



3. 미류나무와 미루나무의 혼용


  아래 조선일보 기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이렇게 오래된 기사를 읽어 본 적이 있는가? 암호를 해독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쉽게 알아낼 수 있다. 한국말이니까.


  말은 살아서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있는데, 왜 나는  변화를 강요받는 느낌이 드는 걸까.


< 일제강점기 1920년대 미류나무 / 미루나무 혼용 >

■ 일제강점기, 미류나무 / 미루나무 혼용

◎ 미루나무 [2]
-조선일보 1927.10.28 석간 5면 기사 (사회)
<나무에 눌려 자동차파양(自働車破壤) 승객은 무사>
차삼봉(車三鳳)이가 길가에서 한아름이나 되는 미루나무를 찍다가 자동차가 소리치고 오는 줄도 몰으고 찍어 넘어트리어 마참내 그와 가티 자동차를 눌은 것이라는 바 자동차는 즉석에서 파상되고 승객 중에는 약간 무상은 내엿스나 다행히 중상자는 업섯다더라(백천)

◎ 미류나무 [3]
-조선일보 1929.11.06 석간 5면 기사 (문화)
< 동화(童話) 아버지를 차저서- 칠七 >
일남이는 녑헤 섯는 미류나무에 뭇는 듯이 이럿케 중얼거렷습니다. 아니 일남이에게는 그 미류나무가 알고 잇스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잇는 것 가티 생각되엇습니다


  정부에서는 1988년 문교부고시 '표준어 규정'을 공표해 미루나무를 표준어로 만들었다. [4] 미류나무는 그래서 바로 멸종되었을까. 미류나무는 표준어가 아니라는 누명을 썼지만, 계속 사용되고 있었다.


< 1990년대에도 미류나무가 사용됨 >

■ 1990년대에도 미류나무는 여전히 사용됨

조선일보 1992.05.01, 조간 27면, 기사(문화) [5]
박선이 기자
"▲한탄강 국민관광지=경기도 연천군 전곡면 전곡6리.
강 위쪽에는 고석정순담계곡 등유적과 자연경관 여러 가지 볼 것이 있고, 아래쪽으로 위락시설이 있다. 강변 모래사장과 미류나무, 소나무 숲에서 배구도 할 수 있고 보트도 빌려 탈 수 있다"


조선일보 1996.12.03 조간 35면 기사(사회) [6]
< 독자의 의견 - 가로수가 벼 일조(日照) 방해 가지치기 불가피하다 >
"이 논리는 가로수변의 농토에 미치는 악영향을 조금도 고려치 않은 채 경관만을 중요시한 생각이다. 일제 식민치하에서도 미류나무 가로수가 대종을 이루었으나 2m 높이에서 일정하게 잘라,주변 농작물에 그늘피해를 최소화하는데 노력하였다."



4. 교과서에 실린 미류나무


  왜 표준어 지역에서 듣지 못하게 되었다던, '미류(美柳)나무'가 90년대에도 살아 숨 쉬고 있었을까? 그건 죽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강제로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억울해서 죽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표준어를 규정한 문교부'에서 만든 교과서에 미류나무는 당당히 살아있었다. 학생들은 그 음악교과서를 펼치고 '흰구름'을 불렀다. 아니 책이 없이도 흥얼거렸다. '미류나무 꼭대기에 조각구름 걸려있네'하고 풍금에 맞춰 노래를 했다. 교과서에 잘 못이 있었던 것일까.


  국가기록원 <의무교육>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959년 ‘의무교육완성 6개년 계획’이 끝날 무렵 취학률 96.4%로 완전취학 수준에 도달했다. [7] 70-80년대 초등학교를 다니며 흰구름 노래를 불렀던 사람들은, 누구나 '미류나무'라고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표준어를 미루나무로 바꾸었을까?


■ 국립국어원 - 상담사례 모음 [8]
등록일 2020. 1. 16. 조회수 630
[질문] '미루나무'와 '미류나무' 중 어느 것이 표준어인가요?
[답변] '미루나무'가 표준어입니다. 표준어규정 제10항에 따르면, 일부 단어는 모음이 단순화한 형태를 표준어로 삼는데, '미루나무'는 '미류나무(美柳--)'의 모음이 단순화되어 더 널리 쓰이게 됨으로써 표준어가 되었습니다.


  미루나무가 오히려 생소한 나같은 사람들은 오늘도 국립국어원에 묻는다. 뭐가 표준어인가? 왜 표준어인가? 그리고 한 가지 더. 누가 표준어를 정하는가?



5. 미루나무, 미류나무 모두 표준어가 될 수 없을까


  우리가 사용하는 말을 누가 규정해 주는 것이 맞는가? 강요를 당하는 느낌이 든다.


  잠시 생각해 본다. 규정을 안 해주면, 언어에 혼란이 올까. 발음이 어려우니, 쉽게 하라고 이중모음을 없애 주는가. 이중모음 'ㅠ'의 발음이 그렇게도 어려운 것일까? 2음절의 '류' 발음이 정말 어려운가. '류' 발음이 어려워 '루'로 발음하는 서울시민이 있으면, 그들을 위해 친절하게 글자를 '루'로 바꿔야 할까?


  미류나무처럼 2음절에 이중모음 '류'가 들어간 단어를 떠올려 본다. 아래 괄호( ) 안에 들어간 말들처럼 모두 단모음 '루'로 바꿔 쉽게 불러 볼까.

기류(기루) / 난류(난루) / 서류(서루) / 아류(아루) / 일류(일루) / 오류(오루) / 조류(조루) / 구류(구루) / 하류(하루)  


  이럴리가 없겠지만, 괄호( ) 안의 편한 글자로 변한 세상을 상상하고, 아래 글을 한 번 읽어 본다. 이런 미래가 올 수도 있으니 대비해야지.


  "어떤 군인이 한강 하류(하루)에서, 조류(조루)를 거슬러 배를 타고 와 오류동(오루동) 한 오피스텔에 도착했다. 미류나무(미루나무) 액자가 걸린 방에 침입해, 극비 서류(서루)를 훔쳐 뛰쳐나왔다. 그는 그곳에 수류탄(수루탄)을 까 넣고 방을 폭파시켜 증거를 인멸했다."


  혹시 '미류나무'를 살려내 표준어로 부활시킬 방법은 없을까.

  헛된 꿈을 꿔 본다.


ps

  '걸쳐 놓고 도망갔어요'

  이랬던 가사가

  '살짝 걸쳐 놓고 갔어요' 라니

  이 건 또 왜 이래?

  아! 테스형.


  다음에 '미류나무가 도망간' 얘기를 한 번 더 해야 할 것 같다.


< 흰 구름♬ (박목월 작사 / 외국곡) >

흰 구름♬ (박목월 작사 / 외국곡)[누가 누가 잘하나] | KBS 20210701 방송                       

< 흰구름 뭉게뭉게 피는 하늘에 >


여름성경학교 교가 | 흰구름 뭉게뭉게 피는 하늘에 | 예찬 어린이합창단


흰구름 뭉게뭉게 피는 하늘에

아침해 명랑하게 솟아오른다

손에 손을 마주 잡은 우리 어린이

발걸음 가벼웁게 찾아가는 길


<후렴>

즐거운 여름학교 하나님의 집

아- 진리의 성경말씀 배우러 가자


< 참고자료 >

[1] 국립국어원 온라인 소식지 <쉼표, 마침표>

[2] 나무에 눌려 자동차파양(自働車破壤) 승객은 무사, 조선일보, 1927.10.28 석간5면 기사

[3] 동화(童話) 아버지를 차저서- 칠七, 조선일보, 1929.11.06 석간5면 기사 (문화)

[4] 표준어규정과 한글 맞춤법 제정 1988, 국가기록원

[5] 가족나들이 자동차로 1시간 거리 적당, 조선일보, 1992.05.01, 조간27면, 기사(문화)

[6] 가로수가 벼 일조(日照) 방해 가지치기 불가피하다, 조선일보, 1996.12.03 조간 35면 기사(사회)

[7] 교육은 공공의 책임 -의무교육, 국가기록원

[8] 국립국어원 - 상담사례 모음( 미류나무, 미루나무 )

[9] 궁금한 우리말- “발음이 어려워!” 표준어에서 탈락한 단어들, 조선일보, 2019.02.17


표지 이미지 : KBS누가누가 잘하나 유튜브 화면 2021.07.01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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