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 아버지가 결혼했다. 김치걸레는 어떡하나.
김치걸레와 걸레김치
-배추김치.
아버지 결혼 전날, 들꽃뫼 고모 딸 윤이 누나는 하얀 탁구공 몇 개를 가져왔다. 탁구장에 취직했다고 했다.
동생과 나는 큰 밥상에 필통을 가운데 네트처럼 놓고, 공책으로 탁구공을 치면서 놀았다.
밥상에 부딪힌 탁구공은 둔한 탁~ 소리를 냈다. 놀다 보니 한 개는 짜부가 되었다. 아버지 사촌들은 좀 더 왔고, 모두 처음 본 사람들이었다. 다들 우리 식구와 같이 하룻밤을 지냈다.
다음날 아침.
밥상이 차려졌다. 탄광촌 근처에 산다는 친척들도 함께 앉았다. 평소와는 달리 무덤처럼 수북한 어른 밥공기가 올라왔다.
한 어린애가 배추김치를 덥석 손으로 집었다. "내가 해줄게" 하며 어떤 아주머니가 배추김치를 뺐었다. 이 번엔 그 아주머니가 손으로 기다란 김치를 반으로 쭈욱 찢었다. 그분은 김치를 돌돌 말아, 아이 밥숟가락에 얹어 주었다.
-걸레 냄새
찢어진 김치 남은 절반은 고개를 약간 뒤로 젖힌 아주머니 입으로 들어갔다. '이럴 수가' 태어난 지 12년째 접어들지만, 그런 광경은 처음이었다. 젓가락을 놔두고, 손으로 반찬을 집어서 입에 넣다니.
손에 묻은 김치 국물과 빨간 양념은 어떻게 처리할지, 나는 인상을 쓰며 쳐다보았다.
밥과 반찬을 씹어대던 나는 그냥 굳어버렸다.
뭐야. 걸레를 가져다 놓았잖아. 군둥내가 퀴퀴한 걸레를... 그 위에 손을 쓰윽쓰윽 닦네!
쾌엑. 뭐 이런 사람들이 다 있어. 아무리 시골사람들이라지만.
찢어진 헝겊으로 만든, 우리 집 걸레에선 자주 역한 냄새가 났다. 마루를 닦을 때면, 온 마루에서 걸레 냄새가 났고, 손에서도 그 냄새가 났는데.
이런 걸레에 손을 닦다니? 아주머니는 걸레 냄새를 묻힌 손으로 김치를 본격적으로 주물렀다. 계속해서 김치 이곳저곳을 오가는 아주머니의 손을 나는 몰래 째려보았다.
그 아이 밥숟가락 위에는 김치를 집은 아주머니의 손이 계속 올랐고, 나는 복장 터지고 있었다.
-손은 김치와 걸레를 왕복했다
아주머니 손은 거침없이 걸레와 김치를 번갈아 오갔다. 걸레엔 김치 냄새가 묻었고, 김치엔 걸레 냄새가 묻었다.
꼬마도 아주머니를 따라 했다. 김치를 손으로 집어 입에 넣고, 갖다 준 걸레에 김치 묻은 뻘건 손을 문질렀다. 그 아이는 노란 생선전도, 걸레에 문지른 그 손으로 집었다.
나는 먹는 시늉만 했다. 자꾸 흘겨지는 내 눈을 들키지 않으려 용썼다.
걱정이 생겼다. 꼬마 애들은 다 저런가 본데. 우리 아버지도 새엄마와 결혼하니 저런 동생이 태어날지도 모르잖아.
새로 태어날 동생이 걸레에 문댄 손으로 김치를 집어 먹으면 어떡해, 제발 우리 집에 아이가 태어나지 말았으면. 아침 밥상은 내게 고민거리를 안긴 채 치워졌다.
-어린애들은 더러울 거야
나는 국민학교 5학년이었고, 아버지 결혼식 장면은 기억에 없다. 나중에 주례 조용기 목사와 함께 찍은 결혼식 사진만 보았다.
아버지 제주도 신혼여행 중엔 이모들이 내게 아버지에 대해 말했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결혼을 해도 애는 낳지 말라고 했다고.
그분들이 어린 우리를 걱정하고 있구나. 그분들은 콩쥐 팥쥐. 신데렐라를 생각했을까.
아버지는 애를 낳지 않겠다고 말했다지만, 막내 동생은 기어이 태어났다. 김치와 걸레 세상을 오갈 골칫덩이가 우리 집에 입성한 것이다.
-아기는 귀여웠다
태어난 아기는 귀여웠다.
나는 가끔 애기 분유도 탔다. 소독한 우유병에 온도 맞춰 제시간에 타 주었다. 분유를 입어 넣었다가 기침을 해대며 물을 찾기도 했다. 분유를 넣고 우유병을 흔들면 가끔 물총을 쏜 것 같았다.
우유를 먹인 후엔 아기를 세워 왼쪽 어깨에서 걸치고 등을 툭 툭 툭 두드렸다. 트림이 거억 나올 때까지. 사용한 젖병은 모아, 솔질한 후 물에 삶아 플라스틱 집게로 건져 내기도 했다.
하얀색 벌크 종이 기저귀를 갈아주기도 했다.
새엄마는 작은 병에 든 거버 유아식을 아기에게 먹이기도 했다.
나는 귀여운 아기에게 자주 뽀뽀도 해 주었다.
목 가누기, 배밀이, 네발기기 등 바닥 관문을 통과한 막내는 마침내 직립보행을 했다.
다행히도 막내는 김치를 손으로 집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