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상 쪽 테이블에는 하얀 백합꽃 몇 송이가 꽃병에 꽂혀 있었다. 냄새는 저 뒤에서도 맡을 수 있었다. 지금도 그것은 꽃향기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암술머리는 설탕물이 묻은 것처럼 반질반질했다.
가까이서 냄새를 맡으면, 머리가 아플 정도로 지독했다. 꽃을 빼보면, 아래쪽에선 똥냄새 같은 것이 났다. 고개가 돌아갔다. 지금도 백합꽃엔 가까이 가지 않는다. 그 기도원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마전도사님은 내 머리에도 손을 얹고 방언을 따라 하게 했다. '할렐루야'를 빨리 계속 외치라고 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룰루라라루야~"
이게 소문이 나서, 경미 이모는 내가 어려서부터 성령 충만해서 방언도 했다고 나를 자랑스러워했다. 그럴 때마다 내 기분은 별로였다. 자꾸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대하려 하기 때문이었다.
-당신은 모르실 거야
기도원에 있는 동안 막내 고모부가 고속도로 택시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얘기도 들었다. 택시 앞자리에 탔다가 변을 당했다고 했다. 그래서 어릴 적 나는 승용차 조수석을 꺼려했다.
엄마도 그해 76년 11월에 돌아가셨다. 나는 국민학교 4학년. 돌아가신 후 얼마 있다가 아버지 친구 지프차를 타고 산소를 보러 갔다. 디젤차라서 그런지 타고 있는 내내 내 몸은 차와 함께 덜덜거렸다. 비도 조금 내려서, 와이퍼로 창을 닦았다. 그 차는 군용 지프차처럼 앞 유리창이 수직에 가깝고 와이퍼도 작았다. 차체는 약간 높아 타기 불편했다. 라디오를 틀었는데, 중간에 혜은이 노래가 나왔다.
"당신은 모르실 거야 얼마나 사랑했는지♬"
75년에 길옥윤이 작사 작곡한 혜은이 데뷔곡이었다. 1년이 지나면서, 76년에 인기 폭발한 노래였다.
이 노래가 나오는데, 아버지를 쳐다보지는 않았다. 노랫소리에 아버지도 엄마를 생각하느라 마음 아플 것 같았다. 마치 아버지가 엄마에게 달려가면서, 못다 한 사랑 고백 노래 같았다.
-나는 엄마, 아빠가 되어 노래했다
"두 눈에 넘쳐흐르는 뜨거운 나의 눈물로 / 당신의 아픈 마음을 깨끗이 씻어드릴게♬"
이 부분은 여자 목소리로 들렸다. 엄마가 응답하는 소리였다. 아버지의 찢어지는 가슴을 보면서, 엄마도 눈물을 흘리고 있는 거라 생각했다. 이렇게 아빠와 엄마가 마지막 주고받는 노래로 들렸다.
이 노래는 나도 속으로 따라 부르고 있었다. 아빠와 엄마와 나, 셋이 부르는 노래였다. 내가 남편이 되고, 엄마가 되어 부르는 이상한 노래였다.
"뒤돌아봐 주세요 당신의 사랑은 나요♬"
뒤돌아보면서 후회하는 노래였다. 아빠와 엄마와 나, 셋이 모두 후회하는 노래였다.
금촌 기독교인 공원묘지. 풀보다 흙이 많은 산소를 돌아보고, 내려오면서 검은 비석 등을 알아보았다. 덜덜거리는 차에 다시 올라 집으로 향했다. 라디오에서 또 다른 노래가 나온다. 이런 노래들이 세상을 제패한 76년은 우울증 걸리기 딱 좋은 해였다.
-엄마를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젖은 손이 애처로워 살며시 잡아본 순간 / 거칠어진 손마디가 너무나도 안타까웠소♬"
하수영의 76년도 가수 데뷔 곡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가 라디오에서 나왔다. 가수는 내게 가사를 음미하라는 듯 천천히 불렀다.
이 노래가 집에 가는 시간까지도 나를 엄마에 묶어 놓으려 했다.
너무하네. 나, 산소에 또 갔다 왔어. 이제 그만했으면 해.
엄마를 보냈던 날, 나는 우주가 무너지는 슬픔에 창자가 다 끊어지는 울음을 울었다. 남들이 3년 애도할 눈물과 울음을 모두 쏟아냈다. 내 몸속 액체가 말라 몸은 파리했고, 성대는 갈갈이 찢어졌다. 그리고 이날 한 번 더 엄마와 한 몸이 되어 애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