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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정 Jan 08. 2023

영화 노바디, 허치 멘셀의 해방일지

의미를 잃은 인간은 사회에 위협이 된다.

영화 노바디의 허치 멘셀은 평범한 가장의 삶을 그런대로 잘 견디고 있지만 그건 ‘견디는 삶’이다. 스스로 고백하듯 가면이다. 가면을 썼다고 완전히 불행한 것도 아니다. 그런대로 행복하다. 이게 문제를 어렵게 만든다. 그런대로… 살 만 하다.


영화는 허치 멘셀의 매우 개인적인 해방일지다. 본격적으로 일이 벌어지는 버스 신은 선의와는 무관하다. 전혀 관계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터지기 일보직전의 허치 앞에 나타난 불한당을 향해 허치는 말한다. Please, God, open that door. 이후 벌어진 사태가 순전히 홧김이었음을 영화는 숨기지 않는다. 상대가 ‘나쁜 놈’이라는 사실은 이유와 핑계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위치한다.그는 세상을 구하려는 슈퍼 히어로가 아니라 “사건을 미결로 남기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는 식의 인간이다. 그 일을 잘 하고 그 과정에서 희열을 느끼는. 국가기관을 위해 일했기에 망정이지 범죄조직을 위해 같은 일을 했다면? 그래선가. 율리안과 허치는 밤과 낮 같아 보인다.


극단적인 현장에서 치고 받고 몸으로 일하면서 아드레날린으로 살아가는 데 흥미와 재능이 있는 인간을 9 투 6의 직장인으로 사무실에 집어넣는다고 하자. 그때부터 적립이 시작되는 것이다. 무슨 적립? 자기를 숨기는 댓가의 적립. 혹은 숨겨진 자신의 폭발력 적립.


비밀이 많은 인간은 많은 비용을 치른다. 허치가 영화에서 벌인 소동은 20년 간 자신을 숨기면서 억눌렀던 것의 귀환이며 반작용이다. 허치의 자기 고백 장면은 억눌린 자아의 복귀를 코믹하면서도 서늘하게 보여준다. 공장을 비싼 돈에 사서 “소유”하고는 파괴에 쓰는 자아 말이다.


툭 털면 먼지가 일 것처럼 퍽퍽하고 건조한 대사와 연출이 무척 스타일리시하다. 조용히 매복하고 있는 절제된 웃음 코드도 매우 맘에 든다. 선악을 넘어선 새로운 캐릭터 영화의 탄생을 축하해도 될 것 같다.


허치 멘셀로부터 버나뎃 폭스와 로레인을 떠올린다.영화 어디갔어 버나뎃의 주인공 버나뎃 폭스는 “창조하지 않으면 사회의 적”이 되는 종류의 희귀종이다. 인간이 자기 자리가 아닌 ‘잘못된 자리‘에 있을 때 벌어지는 일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허치 멘셀의 쌍둥이 남매 같다. 영화 아토믹 블론드는 주인공이 맞는 액션이 인상깊어 생각이 난다. 맞고 찔리는, 수고 많은 주인공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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