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1월 24-27일
출발 전날 제주공항의 모든 비행기가 결항됐다. 폭설과 강풍 때문이었다. 결항은 의외로 드물다. 제주에서 프로젝트하던 11개월 동안 적어도 70번은 김포-제주를 오갔을텐데, 결항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이유는 대개 강풍과 태풍. 어지간한 눈비가 비행기를 막는 일은 없다. 다행히 결항은 면했다. 1시간 출발 지연 정도는 예상했던 바. 그날 제주 지역뉴스는 하룻동안 임시편을 포함 400편 넘는 항공기가 제주에 뜨고 내렸다고 전했다. 안전과 별개로 착륙은 손에 꼽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바람의 저항이 작은 기체를 통해 분명히 전해지는 길고 긴 과정이었다.
1시 반쯤 리무진에 오른 승객이 생각보다 많아 놀랐다. 수요일 오전을 갓 넘긴 시간에 서귀포로 갈 사람이 얼마나 될까 했는데 의외로 상당하다. 복도 건너 자리에는 할머니와 손자가 앉았다. 다섯살이나 여섯살 쯤 될 꼬마 신사였다. 금방 도착할지, 엄마는 어디있는지를 공손한 존댓말로 할머니에게 끈질기게 질문했다 노형동을 한참 지나도록. 요즘 어린 친구들은 말을 참 잘한다. 나는 그만 조카님 생각이 나서 카톡을 보냈다. 그의 답변은 손수 칼림바로 연주한 아무 노래 녹음. 모든 음이 가볍다. 피콜로를 떠오르게 하는 사람이다. 그의 몸짓과 행동은 관악기 중 가장 높은 음역을 담당하는 이 악기 소리처럼 가볍고 경쾌하다. 그래도 전보다(그러니까 다섯살이나 여섯살, 일곱살 때보다는) 달콤한 말이 줄었다. 츤데레가 되려나.
9시 반에 서울집을 떠나 호텔에 도착하니 3시 반. 제주야 눈이 질퍽하거나 말거나 서귀포는 초봄 날씨다. 객실에 들어서 베란다창을 열고 밖을 내다보는 의식은 거를 수 없는 행사. 하루에 여러차례 반복될 의식이다. 여기서 바라보는 바다와 하늘의 색이 같은 날은 지금껏 한번도 없었다. 늘 다른 방식으로 매번 훌륭하다.
이번 3박을 위한 짐에는 뜨개친구가 없다. 담배 없이 여행해야 하는 흡연가처럼 조바심이 났다. 뜨개는 일종의 익스트림 스포츠다. 위험하고 도전적이다. 손에 쥐면 끝날 때까지 놓기 어려워 몸을 혹사시키는 니터가 나 하나만은 아닐 것이다. 하나가 끝나면? 다음 캐스트온이 기다린다. 작업 결과물이 300-500 그람의 무게를 가진 물리적 실체라는 데서 오는 확실한 성취감이 도파민 중독자를 양산하는 것 같다. 그러나 지금 뜨고 있는 스웨터의 실은 아직 덴마크에서 한국으로 오는 중. 하긴 뜨개를 여기 데려왔다가는 3박이 3시간처럼 지나갈테니 두고 오는 편이 이번 여행의 취지에 맞는다.
급속 충전. 이 여행의 오롯한 목적은 이것 뿐이다. 새해 첫날이 프로젝트 오픈이었기 때문에 12월부터 무리해왔다. 주말근무가 많고 근무시간이 길어서만은 아니다. 내가 경험한 가장 안정적인 오픈이었지만 긴장감은 한달 넘게 지속됐다. 특히 오픈 후 안정화 기간에 들어서면서 나는 하루에도 여러번 동료들 듣는 데서 날카로운 소리를 하고 있었다. 자각하지만 통제하기에는 좀 지쳐있는 듯 했다. 물론 프로젝트를 학업과 병행한 탓이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프로젝트 후반부였던 2학기 중에는 아홉 개 레포트와 세 편의 시를 썼다. 프로젝트가 끝나는 1월 말에 일주일은 쉴거라 기대했는데 내 투쟁의 결과는 3일의 휴가다. 다음 프로젝트 전에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싶다. 가능한한 깨끗하게.
뜨개 대신 책을 챙겼다. 네 권이나. 티비를 켜서 도라에몽이든 짱구든 소리가 흘러나오도록 두고는 욕조에 물을 받는다. 욕조에서 책을 읽는 사치는 이 공간에서만 가능하다. 이동진 아저씨만큼 오랫동안은 못 읽지만. 장정일 작가는 욕조에 들어갈 때마다 시집을 한권씩 수장시킨다던데. 그럴 자신은 없는 나는 조심히 자리를 잡는다. 배경음악은 모차르트 피아노소나타 11번. 오랜만이다. 1악장 변주곡을 열심히 연습했었다. 열심히 연습한 곡은 그만큼 속속들이 기억나서 정겹다. 좋아하는 부분들은 따라부르며 혼자 좋아한다. 나의 천국은 단순하다.
다음날은 근처 카페까지 나갔다. 올레길의 일부로 호텔과 이어진 이곳은 해안을 따라 10분 거리에 있다. 이전에 호텔로 운영했을 법한 부지의 일부로 지금은 카페만 운영하고 있다. 여름 습했던 때는 길이 질고 미끄러워 겁이 나곤 했는데 겨울인 지금이 걷기에 훨씬 쾌적하고 안전하다. 여름에는 발만 디디면 게들이 모습을 감추는 소리에 놀라기 바빴던 곳이기도 하다. 카페를 지나 올레길을 따라 가면 소정방폭포다. 카페는 당연히 실외 경치가 빼어난데 정방폭포 쪽으로는 주상절리 절벽이 아름답다.
이번 나흘 동안 그간 쓰던 원고를 묶으려고 했다. 지난 학기 에세이 수업 과제로 제출한 출간기획서와 샘플원고에 대해 꼭 출판사에 투고해보라는 피드백을 실행에 옮기는 중이다. 언젠가 감자가 말했듯이 내가 셀럽이 되기 전에는 출간되지 못할 기획이지만 나는 모범생답게(혹은 모범생을 가장한 마음으로 기대 없이 다만 착실하게) 원고를 투고하고 있다. 다만 글이 아직 낱개로 있기 때문에 배치를 고민하고 있다. 수업과 몇몇 출판사 원고투고를 통해 받은 느낌은 이런 출판의 경우 출판사는 완결된 기획을 원한다는 것이었다. 편집자와 글의 방향을 논할 수 있는 기회가 이 원고에는 없으리라. 내가 원한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므로 문장력이 뛰어난 것만으로는 무명의 비전공자 클래식 감상기 따위가 출판 될 일이란 없으리라. 그래도 시도하려면 완결된 한권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배치를 조정하는 한편 개별 글에서는 사실관계 확인을 포함한 내용적인 퇴고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 계획은 실행에 옮겨지지 못했다. 그러기에는 휴식이 갈급했나보다.
제주는 회색빛일 때 장엄하다. 현무암 회색 토양이 이런 날씨와 잘 어울리는 것도 같다. 이렇게 장엄한 제주를 어쩌면 화창한 날보다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제주의 자연이 육지 도시에서와 달리 두려울 정도로 압도적으로 느껴지는 게 좋다. 그런 날로는 역시 친절하고 살가운 날씨보다는 흐린 날이다. 폭풍우일 필요는 없다(물론 그것도 장관이다. 그리고 정말 무섭다). 인상 쓴 표정 같은 흐린 날이면 충분하다.
셋째 날 아침은 흐렸지만 오후가 되면서 해가 밝게 빛났다. 걷기 좋은 날씨였다. 날씨를 따라 소정방 폭포까지 산책했다. 날씨와 내 컨디션이 허락한 운좋은 날이다.
서귀포에서 혼자 지내는 동안 지난 상담에서 받은 질문 하나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분노. 특히 회사에서 만나는 고객을 향한 분노는 지난 몇년 동안 내게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주제였다. 마침 몇 주 전 고객에게 화낸 일이 있었기 때문에 회사 상담시간에 그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화를 낸 후 나는 닷새 가까이 아팠다.
“왜 화가 났을까요?”
“저와 제 업계의 동료들을 오해하고 그 오해에 기반해서 부당하게 대하거든요. 우리는 대개 그들 생각처럼 일을 덜 하려는 의도가 없어요. 다만 시스템적인 측면에서의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의견을 주죠. 그게 마음에 안들면 개발하기 싫어서 그런다고 오해하는데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전제하고 우리를 대하는 게 저는 정말 싫어요. 우리는 그렇게 일하지 않거든요.“
“화를 냄으로써 하고 싶은 게 뭐예요? 틀렸다는 걸 지적하고 싶으세요?”
“지적이요? 아뇨, 나를 그런 방식으로 대하지 말아줘, 그걸 하고 싶은 것 같아요. 그렇네요, 나하고는 그렇게 일하지 말아줬으면 해. 그거예요.“
“좋아요. 그걸 전하기 위해 화를 내실 필요는 없을 거예요.”
“맞아요. 심지어 화를 내면 목적을 달성하기 더 어려워지기도 하고요. 제가 원하는 게 그거라면 더 이상 화낼 필요 없을 것 같아요.”
아름다운 상담이었다. 나는 원하는 걸 알아냈고 남은 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적 실험들이다.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대단한 진일보다.화를 내서 나와 타인을 괴롭게 할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이 아름다운 상담 중에는 한 가지 은밀한 얼룩이 있었다. 나는 정말 지적할 생각이 전혀 없는 걸까? 그렇다면 나는 왜 나를 새치기 하는 다른 버스 승객에, 길거리 흡연자에 그 정도로 분노하는 걸까? 그러니까, 나는 모든 위반에 반응한다. 왜일까? 위반 그 자체에 대한 경멸. 달리 설명할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위반은 나쁜 것이지 않은가? 위반을 받아들이면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행위를 인정하는 거 아닐까? 그건 곧 인간다움을 포기하는 것 아닐까? 이 또한 괴로운 문제였다. 극장판 짱구 아뵤 쿵후보이즈 라면 대란에서 란 누나처럼 모든 사소한 위반을 처단하는 게 그렇다고 해서 옳은 것일까? 그러면 정의가 구현되는 걸까? 물론 짱구는 처단이 아닌 말랑말랑이 답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김포공항에 착륙할 즈음, 나는 사소한 위반에는 관대해지기로 했다. 버스 줄을 새치기 하는 사람들 정도는 세계에 대단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급한 일이 있거나 몸이 안 좋을지도 모르지. 사람이 어떤 날은 그럴 수도 있지. 그런 문제 말이다.
그날 저녁 이 선언을 들은 엄마는 이 문제를 정확히 이해했다. 그래, 그럼 너도 더 자유로워질거야. 맞다. 나는 여기에 낭비하던 에너지를 주변에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데 쓰도록 전환할 것이다. 모든 위반에 신경쓰던 에너지를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되는 데 쓸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6시간의 여정을 마다않는 이유, 아니, 굳이 기꺼이 반복하는 이유다. 멀리 갔을 때 나는 더 쉽고 자연스럽게 자기객관화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