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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정 Oct 13. 2024

윤홍천 슈베르트 후기 소나타

통영국제음악당, 10월 12-13일

윤홍천 피아니스트 슈베르트 후기 소나타 연주회에 다녀오는 길이다. 16번부터 21번까지 여섯 곡을 하루 두 곡씩 3일 동안 연주하는 프로그램으로, 나는 둘째, 셋째 날 공연을 봤다.

올해 가장 집중적으로 들은 음반이 윤홍천의 불랑제, 포레, 레이날도 한이었다. 듣던 대로 오케스트라와 합이 무척 훌륭했다. 이 방면에서 내가 최고로 치는 첼리스트 장 기엔 케라스에 비견할 정도의 훌륭함이었다. 그렇지만 나로 하여금 끝없이 재생 버튼을 누르게 만든 건 무엇보다 첫 트랙이었다. 듣기 쉬운 음악이 잘 연주되어서 일단 재생하면 마지막 트랙까지 듣게 됐다. 그러다 9월이 되었고 미친 더위는 계속 됐지만 계절의 변화를 감각한 몸은 5번 트랙 레이날도 한의 ‘클로리스에게‘를 끝없이 요구했다. 2주일 동안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모든 시간에 이 곡만 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런 윤홍천이 슈베르트를 연주한다, 게다가 통영국제음악당에서. 고민은 짧게 했다. 세 시간 반 기차여행에 택시와 시외버스, 다시 시내버스를 갈아타며 8시간 만에 내 자리에 착석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아니지만 현타가 오긴 했다. 통영에 KTX 연결하는 사업이 추진될 필요가 있다. 정점식 씨는 4선인가 5선 의원이라던데 지역 발전을 위해 한번 추진하실 의향이 없는 걸까.

중요한 건 모든 곡 모든 악장의 첫 음을 들으면 제대로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해석은 거의 다 옳았고 톤은 전반적으로 안정적이었다. 해석이 얼마나 설득력 있었냐 하면 슈베르트가 이렇게 분절적이었던가를 나는 새롭게 환기했다. 또 이번 연주회에서 18번과 20번을 새롭게 발견했다. 특히 20번 4악장 론도를 한동안 듣게 될 예정이다.

가장 기대한 건 21번 1악장이었다. 파울 바두라 스코다의 악기별 연주, 그러니까 콘라드 그라프와 뵈젠도르퍼 버전으로 자주 들었다. 이번 연주회에서는 전반적으로 저음이 풍부하고 멋지게 들린 반면 고음은 음량이 상대적으로 약하거나 너무 딱딱하게 들렸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오른손 아티큘레이션이 자주 뭉개져 들려 아쉬웠다. 슈베르트는 가벼운 꾸밈음이 많고 특징적이라 더욱. 그렇지만 음향에 관한 한 내 좌석 위치, 조율, 연주자 컨디션이나 연주 특성, 하물며 내 물리적 컨디션 등 원인이 될 만한 요소는 너무 많고 정확한 원인은 밝혀낼 재간이 내게는 없으므로 감각적인 기억으로서만 말하기로 한다. 반대로 왼손 오른손을 교차해가며 고음으로 길게 이어지는 부분은 전부 매끄럽고 아름다웠다. 모든 저음부 피아노와 피아니시모가 그랬듯이.

21번 1악장과 4악장에서 미스 터치가 적지 않았는데 아쉽기보다는 안타까웠다. 이게 이 연주자의 특장점일지도 모른다. 꽤 사랑스러운, 응원하게 되는 매력이 있다. 틀릴 이유는 너무 많고 사랑스럽기는 어려운 일이니까.

마지막 앵콜곡을 연주하기 전, 연주자도 힘들지만 듣는 사람도 힘들었을 거라며 자신에게 의미 있는 연주회였다고 피아니스트는 절제된 소회를 밝혔다. 꼭 연주처럼 곱고 참한 목소리였다. 그의 말이 사실인 것이, 슈베르트 소나타를 듣는 것이 적어도 내게 아주 손쉬운 일은 아니다.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그러나 헤드폰으로 듣는 안전한 연주와는 달리 가까이에서 온 피부로 파동을 느끼는 슈베르트는 말할 것 없이 친밀하고 내밀했다. 작은 연주장에서 슈베르트를 더 자주 듣고 싶어졌다. 그리고 윤홍천이 몇 해에 한 번씩 슈베르트 소나타 사이클을 해주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그의 슈베르트는 더 좋아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후기 뿐 아니라 전곡 사이클을 하는 상상도 한다. 나 말고 몇 명이나 더 바랄지 알 수 없어(없지 않다, 적을 게 분명하다 그래서) 슬퍼지지만. 토요일 앵콜곡으로 짐작컨대 언젠가 바흐 파르티타도 들을 날이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물론 불랑제와 레이날도 한 프로그램을 국내에서 들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통영은 너무 멀지만 서울의 다른 공연장은 어쩐지 원치 않는다. 특히 예술의 전당 음향은 너무 고역이므로.

듣는 사람이 고생이라고는 해도 역시 연주자가 고생이다. 그 노고가 느껴져서 앵콜을 요청하는 박수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도 두 곡이나 더 연주해준 게 특별히 고맙다. 마지막 곡은 레이날도 한의 L'heure Exquise 이었다. 절묘한 시간이라고 번역되려나. 앨범에서 듣던 익숙한 곡을 현장에서 듣자 너무나 반가웠다.


다시 집까지 7시간. 슈베르트를 들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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