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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테 Aug 24. 2024

러니언 캐년

[2] 비행기가 지나간 길

새벽 여섯 시 반. 나랑이 알뜰하게 차문을 밀어 닫았다. 마리아나는 새벽 수유로 아침에 일어나지 못했다고 했다. 나연은 마리아나의 불참이 조금 아쉬웠다. 나연은 라틴계열 친구를 많이 만나보지 못했을뿐더러 마리아나 개인에 대한 호기심이 컸다. 한국인 남자와 결혼했기 때문이라지만 한국인이 운영하는 조리원에 그것도 뉴멕시코에서 LA까지 찾아온 경위가 궁금했다. 어느 도시에서 사는지, 어디서 어떻게 남편을 만났는지, 부모님 반응은 어땠는지, 한국으로 여행 갈 생각은 있는지도 궁금하던 나연은 문득 자신이 무례한 아줌마 같은 질문을 한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뒀다. 


목적지는 러니언 캐년의 산책로였다. 캐년으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는 잠은 잘 났냐는 둥 커피가 당긴다는 둥 어색하고도 예의 바른, 초면에 나눌법한 이야기들이 가벼운 웃음들과 함께 오갔다. 나연은 대화를 피해 시선을 자신의 발로 옮겼다. 맘카페에서 공부한 대로 미국으로 오기 새로 산 아식스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임산부는 붓기가 더 심해진다고 해 평소 신는 사이즈보다 반사이즈를 크게 선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화는 요즘 들어 더 조이기 시작했다. 나연은 조리원에 돌아가면 신발끈을 더 풀어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깨끗한 신이 주는 상쾌함에 나연은 기분 좋게 요리조리 신발을 구경하다 다른 산모들의 신발도 훑어보기 시작했다. 나연의 옆자리에 앉아있던 미주는 맨발에 검은색 쪼리를 신고 있었다. 나연처럼 발이 부어 보이지 않았다. 완만한 산책로지만 쪼리를 선택한 미주의 선택이 용감하고 건강해 보였다. 아마 사람들이 차에서 내리면 미주의 맨발을 보고 젊은 게 좋다는 식의 말을 할 것 같았다. 미주는 나연보다 여섯 살이 어렸다. 본인도 6년 전에는 오늘 같이 쌀쌀한 아침에 쪼리를 신을 수 있었을까 생각했다. 나연은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앞에는 혜원이 앉아 있었다. 혜원은 단정한 반묶음에 앞머리가 눈썹까지 내려와 있었다. 나연이 뒤에서 비스듬히 본 그녀의 신발은 딥블루 색이었다. 패브릭 재질에 디올 로고 패턴이 새겨져 있었다. 벨크로로 여닫는 운동화였다. 디올 스니커즈를 본 나연의 머릿속에는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어째서 자신은 점진적으로 붓는 산모의 발에 벨크로 운동화가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은 왜 못했을까 와, 혜원은 '디올'에서 평소 신지 않는 사이즈의 신발을 샀을까 정도였다. 신발을 보고 나니 혜원이 입은 카디건이 눈에 들어왔다. 에크루 컬러에 가볍고도 따듯해 보이는 텍스쳐였다. 금색 단추에 새겨진 'Christian Dior'의 양각 프린트가 어렴풋이 보였다. 소담한 체격의 혜원이 입고 있는 민무늬 원피스도 짜임새 있는 직조감이 은은하게 존재감을 드러내 나연은 아마 그녀의 카디건과 같은 브랜드가 아닐까 추측했다.

 

산책로 입구에는 금방 도착해 하나 둘 산모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캐년은 사전적 의미로 협곡이라고 하지만 이들이 도착한 곳은 한국의 나지막한 뒷동산 같은 지형이었다. 나무가 울창하진 않아도 상록수와 야자수, 키 작은 선인장이 보기 좋게 섞여있었다. 미주가 기지개를 켜며 몇 발자국 움직이자 대여섯 살 차이 나는 산모들 사이에서 젊은 게 좋다느니 하는 대화가 오갔다. 나연은 지난주에 미국에 입국해서 산모들과 함께 몇 번 외출했는데 얼굴이 뽀얗고 통통하게 살이 오른 아시안 임산부들이 옹기종기 몰려있는 모습이 진귀한 풍경으로 비쳤다. 나연을 제외한 세 명은 각각 37, 38, 39주의 만삭 임산부였다. 모두 다음 주쯤에는 아이를 낳는 일정으로 사실 지금 아이가 나와도 이상할 상황은 아니었다. 유일한 산후 산모인 지혜는 2주 전 출산해 배가 많이 들어간 편이었지만 여전히 5개월 임산부처럼 보였다. 


한 사장은 캐년 산책로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겠다며 간단한 산책코스를 알려주고 어디론가 전화를 하며 사라졌다. 산모들은 천천히 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불도그, 레트리버, 테리어 등 각양각색의 개가 주인과 함께 천천히 걸어가는 산모들을 지나쳐 뛰어 올라가거나 빠르게 걸어 내려갔다. 산모들은 웃통을 벗고 산을 달려 올라가는 러너들을 흘끔흘끔 바라보며 아침 식사 메뉴에 대한 이야기, 육아 용품에 대한 이야기 따위의 말을 이어갔다. 숨이 차면 입을 닫았다를 반복하면서 천천히 걸어갔다. 나연은 퉁퉁 부은 발로 땅을 사박사박 밟아 잘 다져진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는 행위가 즐거웠다. 4월 LA의 아침 공기는 차고 건조하고 상쾌했다. 한국의 늦가을, 혹은 초겨울과 같은 공기였다. 산책로 주변으로는 거대한 주택들이 듬성듬성 보였다. 넓은 풀장과 멀리서 봐도 끝내주는 포이어, 하얗고 매끈한 고급 주택이 캐년의 전경을 장식하고 있었다. 일출이 시작돼 산등성이에 있는 거대한 지붕들이 황금색으로 빛났다. 나연은 제 남은 인생에 수백만 달러를 벌 수도 없고 수백만 달러를 집을 구입하는 데 쓸 가능성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하늘을 날지 못한다고 불행하지 않은 것처럼 닫힌 가능성 하나가 나연에게 불행을 안겨주진 않았다.


"좋은 집들이네..." 나연이 말했다.

"이런 거 보는 맛으로 여기 산책하죠 언니." 하염없이 집을 바라보던 나연의 혼잣말에 미주가 맞장구쳤다.


미주는 나연보다 2주 더 일찍 LA에 온 덕에 혜원이나 나랑과 마찬가지로 이 산책로는 세 번 와봤다고 했다. 나연이 조리원에 도착했을 때 나랑의 주도로 피할 수 없는 자기소개의 시간을 가졌다. 나연은 자신을 서른일곱 홍보녀라고 소개했다. 미국으로 원정 출산을 하러 오는 여느 산모와 마찬가지로 35주 차에 미국에 입국한지라 그녀의 주수는 흥미로운 정보는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본인과 지혜가 서른일곱으로 한국인 산모들 중에서는 가장 나이가 많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 나연과 함께 걷고 있는 미주는 의사였다. 외과 전공의 과정을 작년에 마치고 출산 준비를 위해 일을 쉬고 있었다. 나연은 미주의 남편도 의사인데, 나연의 동생과 같은 흉부외과 전공의라고 말한 부분을 나연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동생을 통해 본 레지던트 생활은 무척이나 끔찍하고 전문의가 된 후에도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나연은 미주와 그녀의 남편이 짠하게 느껴졌다. 물론 나연은 그게 주제넘은 감정이란 건 알고 있었다. 


"그, 미주님 USMLE? 그런 거 보면 미국에서도 의사로 일할 수 있지 않아요?" 나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 언니 안 그래도 제 주변에 그 시험 공부하는 친구들 좀 있어요." 미주가 답했다.

"남편님도 흉부외과고 그러면 미국에서 서젼 할 수 있을텐데." 나연이 말했다.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 심장 수술의사로 일한다면 나연이 방금 닳도록 바라보던 대저택에서 호사스럽게 살 수도 있던 터였다. 나연은 괜한 관심을 보인다는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얼른 본인의 동생이 같은 과 전공의이고 그녀의 동생과도 이런 문제에 대해서 종종 이야기한다고 덧붙였다. 

"맞아요.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전 안 할 거예요. 흐흐" 미주가 답했다. 

"왜용?" 나연이 되물었다.

"저 공부 더는 못하겠어요" 미주가 머쓱하게 웃었다.


맞지. 나연은 바로 수긍했다. 의학공부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그녀도 공부는 너무 힘들었다. 나연은 조금은 복잡한 집안의 사정에 따라 미국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내고 초등학교 때 한국으로 들어갔다. 그러다 중학교 2학년이 막 되었을 때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말 그대로 혼란의 10대를 보냈다. 머리가 다 큰 열네 살에 미국으로 이주해 온 것은 문자 그대로 그녀의 세상이 뒤집어지는 경험이었다. 종종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할 때 나연은 '뒤집어지는'이라는 단어를 쓰며 양손으로 꼭 따옴표를 만들어야만 했다. 나연은 그녀가 대외적으로는 10대 때 유학을 했다고 설명하지만 도무지 '유학'이라고는 부르기 어려웠다. 물론 어린 자신의 모습은 애틋하고 그리웠지만, 그 시절 죽도록 열심히 방황하고 은둔하면서 만들었던 흑역사들이 아직도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결국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의 대학으로 진학한 지난한 고생길이 도미노처럼 떠올랐다. 입시라는 건 트라우마에 가까운 사건이었다. 나연은 아직도 불안한 날이면 시험을 보는 꿈을 꿨다. 공부를 하지 않았는데 시험을 보는 꿈, 처음 보는 과목을 시험으로 치러야 했던 꿈... 어째서 그렇게 공포스러운 순간이 아이를 가진 지금까지도 악몽으로 떠오르는지 알 수 없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미주였지만 그녀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물며 대학에 들어가서 10년을 넘게 공부하고 수련했는데 또 서너 해를 투자해 공부하는 것은 가혹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나연의 국적은 비록 미국인이지만, 역시 코리안이었다. 미국에서 한국인으로 산다는 게 그렇게 녹록한 일이었던가. 서젼이라고 해도 그저 아시안 서젼일 테니 말이다. 공부를 더 하기 싫다는 미주의 말에 더 이상 나연은 대꾸하지 않았고 미주도 더 말을 하지 않았다.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나연은 어깨를 으쓱하며 몰려오는 해묵은 생각들을 떨쳐내려고 했다. 다시 바스락바스락 걷는 자신의 발소리에 집중했다. 


나연에게는 공부보다 일을 하는 게 훨씬 행복한 선택지였다. 일은 공부처럼 외롭지 않았고 즉각적으로 눈에 보이는 변화를 만들어냈다. 머릿속 블랙홀에 활자를 꾸역꾸역 집어넣는 공부에 비한다면 일은 자신이 참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기분이 들게 해 주었고 또 그만큼 자신을 마음껏 소비하는 느낌을 주었다. 책임감에서 비롯된 애티튜드일 수도 있지만 나연은 일 하는 행위 자체를 좋아했다. 그녀에게 일이란 목표한 바를 시간 내에 완성시키는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프로젝트 베이스로 돌아가는 PR대행사는 그녀의 성정에 딱 맞았다. 기획부터 실행까지 크고 작은 종류의 프로젝트를 모두 담당할 수 있었기에 일의 자유도가 높고 늘 하는 일의 종류가 달라진 다는 점도 나연의 마음에 들었다. 클라이언트가 있었기에 프로젝트는 측정가능한 수치가 성과로 나와야 했고 그렇기 결과물은 더욱 선명하게 비교할 수 있었다. 각각의 프로젝트마다 말랑하고 딱딱하고, 또는 웅장하고 다른 맛이 있어 늘 새로운 재미가 있었다. 두 번의 이직을 거쳐 10년이 넘게 홍보업계에서 일을 한 나연은 확실히 이 일을 좋아했고 좋아한 만큼 결과 또한 우수했다. 지금 바라보는 집을 살 수 있을 만큼 돈을 벌 수는 있는 직업은 절대 아니었지만 이런 성과에 대한 만족감은 그녀가 팀장이 된 지금도 뉴비즈 준비를 위해 다섯 시 반에도 벌떡 일어나 출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됐다. 출산휴가를 쓴 지 한 달이 됐지만 나연은 여전히 일에 대한 감각이 생생했다. 회사 동료들은 나연에게 휴가 중에 일할 생각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대신, 자신이 가진 아이에 대해 조금은 뜻뜨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던 나연에게 '아기는 정말 예쁘다'는 판에 박힌 감상과 먹지 말아야 할 약이나 속옷은 꼭 흰색으로 입으라는 등의 조언을 넘치게 부어줬다. 좋은 사람들과 일을 하고 있었다.


산모들이 산책로 중턱까지 도착하자 해가 다운타운 쪽에서 뜨기 시작했다. 다운타운의 높은 빌딩이 사막 속 신기루처럼 뿌옇게 배경에 들어왔다. LA의 지형은 평평해 그리 높지 않은 이 동산에서도 도시의 전경을 모두 감상할 수 있었다. 길마다 박음질되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야자수들, 길가에 낮게 깔려있는 어스름한 스모그, LA 특유의 기후가 주는 상쾌하고, 따듯하고도 따끔한 햇살. 나연은 몸 안 어딘가에서 행복감이 피어나는 것을 느꼈다. 친절하고 따듯한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밴 이 상황이 문득 믿기지 않았다. 한국을 떠나온 지 1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나연은 그저 남편이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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