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부지런한 백수
새로이 방문한 이 세계에는 아직 나의 내공으로는 정의하기 어려운 강렬한 끌림이 있다.
백수가 되기로 마음을 먹은 지, 근데 그건 또 아니네. 더 정확하게 더듬어보면 10개월 전, 퇴사할 때까지만 해도 스스로를 백수로 정의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스스로를 백수라 정의하고 닉네임을 부지런한 백수로 바꾸었을 때, 나는 누군가에 대한 의존에서 철저히 벗어나야 하는 차가운 온도를 느껴서였다. 내 삶의 무게가 왜소한 나의 두 어깨로 소복이 쌓이는 중력을 느껴서였다.
안정적인 월급도, 경력도, 따뜻한 관계들도 나에겐 매일매일 당연한 것들이었는데 그중에 더 이상 내가 의존할 수 있는 건 남아있지 않았다. 이제 내가 익숙해져야 할 것은 매일 나를 반겨줄 오피스텔 벽. 그건 안 좋은 일이기도, 너무 좋은 일이기도 했다.
안 좋은 이유는 많고도 많다. 기본적인 보장이라고 여겨지는 4대 보험 가입이 중지되었고 언제 월세를 낼 잔고가 없을지 한 치 앞도 모르거니와 언제 건강이 회복되어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유병자라서 표준실비보험 가입도 되지 않는다. 애매하게 멈춰진 경력은 나중에 인정받기 힘들 것 같고 이대로 경력이 단절되어 몇 년이 흐르면 더 이상 메인 스트림으로 돌아가기 힘들 것도 직감했다. 싫증을 잘 내지 않는 성향으로 지난 10년 동안 단 한 분야만 바라보고 왔었고 내가 하는 일을 많이 사랑했다. 하지만 기술사 시험을 볼 생각도 안 해봤거니와, 준비도 전혀 안 되어 있었다. 그저 좋아서 한 것, 한 걸음 걸어가니 사다리 하나가 보였고 한 걸음 올라가니 다음 사다리가, 다음 방향이, 다음 행선지가 보였을 뿐이다. 그렇게 조금씩 내 마음을 따라간 것, 그게 다였다. 원없이 해보고 질렸던 건 또 아니라서 두번 다신 없을거라고 하진 못하겠다. "궁금하다", "하고 싶다" 에서부터 어떻게 하는지 조금은 알게 되기까지 뭐 대충 10년이 지난 것 같다. 두 번째 학부 입학으로부터 퇴사하기까지 6년이란 시간동안 멈추지 않고 경제활동을 하며 살아왔는데 마치 돌려도 돌려도 제자리로 돌아오는 쳇바퀴처럼 잔고는 텅텅 비어있었다. 달력에 유일한 일정은 병원 예약이었고, 뭔가 허약한 심신만 남은 듯한 이 삶이 웃겼고,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나 말고 그 누구도 없었다. 내가 낙동강 오리알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당신이 위에 서술된 상황에 놓여있다면 어떤 생각과 결정들을 했을까?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에겐 어쩌면 비관적인 상황일 수도. 뭐 아닐 수도 있고 나는 잘 모르겠다. 당신의 생각들이, 당신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사실 나는 그저 사실을 나열한 것뿐, 위 상황들이 좋지도 안 좋지도 않았다. 단 하나, 확실하게 안 좋다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결정을 혼자 내려야 하는 이 길이 무지하게 외롭다. 친구도 남자 친구도 가족들도 이 고독을 이해하지 못했다. 수차례 해설을 시도해보면서 문제는 내 표현의 한계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이해받기를 포기했다. 말로만 전해 듣는 간접경험으로 전달되기에 정말 턱없이 부족한 크기의 스릴과 책임감이었으니까. 지구 어딘가에 이 말을 이해할 사람 한 명은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그 한 명을 벗 삼아 고독함을 달랬다.
그리고 좋은 점을 말하자면 나는 자유인이다. 정해진 시간 동안 정해진 공간에 가야 할 의무도 권리도 없다. 예상했음에도 놀라웠던 이 시공간의 자유, 이 자유는 나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이 자유를 더 충분히 느끼기 위해 나는 내가 가진 그 어떤 스킬도, 배경도 나라는 사람을 정의하고 판단할 수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를 백수라고 소개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지난 10개월 간의 백수생활은 단 하루의 허비도 없었다. 자꾸 마음이 가는 것들이 생산되고 소비되고 중첩되고 소실되었다. 항상 하고 싶은 것들이 있었고 나는 그럴 때마다 바로바로 실행에 옮기며 부지런하게 살았다. 그건 내가 자유를 만끽하는 방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