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치김치찌개를 끓이려고 했다. 아이와 함께 먹는 밥상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반찬 한 가지쯤은 필요하니까 아이의 기호를 물어봤더니 오늘은 미역국을 먹겠단다. 그래서 아이가 먹을 국은 냉장고에 있는 소고기미역국을 팔팔 데우고, 내가 먹을 김치국은 참치를 빼고 끓이기 시작했다. 냄비에 물을 받고 다시마 몇 장을 넣어 끓였다. 김치도 한 대접 가득 넣고(삼삼한 김장김치라 씻지 않고 양껏 넣어도 김치국이 짜지 않다), 국물을 내려고 국물멸치도 한 줌 넉넉히 넣었다. 아이도 같이 먹으려면 참치통조림이라도 넣는 게 좋지만, 혼자 먹을 국에는 굳이 참치나 돼지고기가 필요 없고 국물 맛을 위해서 멸치만 넣고 깔끔하게 끓였다. 국이 뽀글뽀글 끓어 오를 때, 찌개용 두부 한 모를 잘라 넣고 간을 보았더니 삼삼해서, 멸치액젓 한 작은술로 간을 하고, 설탕 한 작은술로 감칠맛을 더했다. 다시 한번 포르르 끓어오르면 멸치육수로 끓인(멸치육수를 미리 내지 못해서 멸치를 같이 넣어 끓인) 두부김치국 완성이다. 내 식성대로 끓이니 입에 딱 맞는 김치국이 되었다. 내일은 아이가 김치국을 먹는다고 하면, 참치 한 캔을 위에 올려서 한소끔 다시 끓여, 참치김치찌개로 변신시켜 주면 된다.
아이반찬으로 명란달걀부침을 했다. 얼마전에 만들어둔 명란젓무침이 냉장고에 애매하게 남아있어서, 명란젓무침에 대파를 송송 썰어 넣고 달걀 세 개를 풀어서 프라이팬에 부쳤다. 명란젓 자체에 간이 되어 있으니 추가 간을 할 필요가 없다. 앞뒤로 노릇노릇하게 부치면 별미다. 여기에 돌나물샐러드를 준비했다. 돌나물을 잔뜩 사다가 씻어서 냉장고에 넣어두니 아무때나 꺼내어 먹을 수 있어서 편하다. 돌나물 위에 간장소스(우동간장과 매실청, 식초를 2:1:1의 비율로 섞고 참깨를 넣었다)와 생들기름만 뿌리면 돌나물샐러드 완성이다. 며칠 전에 만들어 둔 배추겉절이까지 꺼내니 한끼 반찬으로 구색이 맞았다.
사실 며칠전에 김치냉장고가 고장이 났었다. 얼마전부터 김치냉장고가 요란스럽게 윙윙거린다 싶더니, 어느샌가 소음이 잠잠해져서 신경을 안 쓰고 있었는데, 세상에, 김치냉장고가 완전히 멈춰버렸던 거다. 어제 김치 한 포기를 꺼내어 자르려고 김치냉장고를 열어보니 김치 삭는 냄새와 함께 냉장고 속이 훈훈했다. 급히 A/S를 신청해서 메인보드를 갈고 김치냉장고를 고치기는 했지만, 맛있는 김장김치가 완전히 발효가 되어 신김치가 되었다. 시실, 김치냉장고 속의 김장김치는 해갈이를 해도 그다지 신맛이 강하지 않은데, 며칠 사이에 김치 맛이 확 변해버렸다. 더 쉬기 전에 김치를 팍팍 소비할 작정이다. 김치부침개며 김치국이며 김치무침이며 이것저것 만들어 보아야겠다. 참, 세상 일이 마음 같지 않을 때가 있다. 어느 날 김치냉장고 소음이 멈춰서 좋아했더니, 김치냉장고가 주무셨던 거고, 그 속의 김치는 다 쉬어 버렸다. 이를 돌려 생각하니, 신김치가 되어 유산균은 더욱 많아졌을 테고, 일부러라도 김치 소비를 빨리하려고 푹푹 먹을 테니, 몸에 좋은 십자화과 채소를 더 많이 먹을 수 있어, 좋은 일이기도 할 테다. 나쁜 일이 좋기도 하고, 좋은 일이 나쁜 일이기도 하니, 현상만 놓고 괴로움에 사무칠 필요도, 기쁨에 들뜰 필요도 크게 없는 것 같다는 요런저런 생각까지 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