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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미소리 Jul 20. 2024

가지볶음 보다 아삭이 고추

자연식물식(채소, 과일, 통곡물 위주의 식사를 하는 것) 11일 차다. 자연식물식을 유지하는 열흘 남짓 되는 기간에 많은 일이 일어났다. 눈앞에서 가족들이 삼겹살과 라면을 먹기도 하고 감기에 걸려서 마음이 약해지기도 했다. 이제 아이들 방학이 시작한다. 자연식물식 기간에 아이들 방학이 겹칠 것을 미리 생각하지 못했다. 미리 계산했더라면 자연식물식을 뒤로 미뤘을 거다. 그랬더라면 자연식물식을 영원히 실천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의 자연식물식은 잘한 일이지만, 아이들 방학이 시작되고 게다가 주말이 겹치니, 가족들이 외식을 하고 싶어 한다. 눈앞의 삼겹살이야 안 먹으면 그만이지만, 외식에 참여하지 못하니 가족들에게 미안스러운 마음이 든다. 다행히 아들 둘을 둔 우리 집은 쿨하게 (나를 빼고) 외식을 나가니 그것 또한 다행스럽다. 체질식을 할 때에도 음식을 가렸던지라, 그나마 골라먹을 만한 음식도 있는 곳이 뷔페였고, 그 생각에서인지 남편이 뷔페를 권한다. 하지만 자연식물식은 체질식과는 달리 (금체질 기준으로 좋은 음식이었던) 생선이나 해산물도 건강한 음식으로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뷔페에 가봤자 정말 먹을 음식이라곤 양상추에 오이, 셀러리, 올리브 밖에 없을 것 같다. 감자나 옥수수도 버터나 치즈로 간을 했을 테고, 시판 샐러드드레싱도 안 먹으니, 그저 외식을 하러 나가는 가족에게 과감히 손을 흔들어 주는 수밖에…



아직 감기 기운이 있지만, 어제처럼 뜨거운 국물이 당기지는 않는다. 아침은 평소처럼 과일을 양껏 잘라먹었다. 자연식물식에서는 음식의 종류를 제한하지만 결코 양을 제한하지 않는다. 채소, 과일, 통곡물 종류라면 얼마든지 먹어도 상관없다. 복숭아와 참외를 잘라서 접시에 소복이 담았다. 점심에는 생 채소(상추와 아삭이 고추), 김구이와 된장국으로 식탁을 차렸다. 된장국 육수를 멸치로 냈는데, 육수의 멸치 맛이 거슬렸다. 누군가 멸치를 먹지 말라고 시비를 하는 것도 아닌데, 자연식물식에서 건강한 음식으로 포함되지 않는 멸치의 맛이 불편하니 신기할 따름이다. 저녁은 가지구이 덮밥을 했다. 원래는 가지를 팬에서 굽다가 양념을 해서 밥 위에 가지런히 올려 먹는 음식인데 변형을 가했다. 가지에 양파도 넣고, (며칠째 냉장고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데친 브로콜리까지 넣고 볶다가 된장과 간장, 설탕, 물 조금을 섞어서 양념을 했다. 양념이 스며들도록 볶으면 완성인데 이것저것 넣었더니 가지 덮밥이라기보다는 채소 볶음처럼 되었다. 여러 가지 양념 맛이 부담스럽기만 하니, 가지에 소금만 넣고 볶을 걸 그랬다. 아무런 양념을 하지 않은 아삭이 고추에만 손이 갔다. 볶은 적양배추를 김에 싸서 먹는데 이것도 별로다. 오히려 생양배추를 김에 싸서 간장에 찍어 먹는 게 훨씬 더 맛있게 느껴진다. 자연식물식을 하면서 입맛이 바뀌고 있다. 갖은양념을 넣고 짭조름하게 조미한 음식보다 담백한 음식이 맛있고, 기름에 볶은 양배추보다 생양배추의 아삭거리는 식감이 더 좋다.



자연식물식 11차인 오늘은 무슨 변화가 있었나? 열흘을 넘기니, 자연식물식 30일을 달성할 날이 기다려지면서도 벌써 아쉬운 마음이 든다. 아침 몸무게는 어제(처음 시작한 날의 몸무게로 회귀한 날)보다 1킬로가 줄었다. 감기기운은 여전히 있지만 심해지지 않았고, 귀의 뾰루지도 치유가 되고 있는지 만져도 별로 아프지 않다. 감기기운에 컨디션이 안 좋아져서인지 치통에 두통이 왔다 갔다 한다. 기간을 정하고 한 가지 일을 꾸준히 실행하는 것을 별로 하지 않고 살아왔는데, 해보니 시간이 길어지는 느낌이 든다. 내일은 무슨 일이 있을지 기대가 되고, 정한 기간을 달성했을 때의 느낌은 어떨지 상상하게 된다. 지나간 하루가 더 의미 있게 느껴진다. 자연식물식 30일을 작정하고 시작할 때에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부분인데, 한 가지 목표를 세우고 성취해 나가는 재미를 배우고 있다.


*표지 사진: UnsplashMonika Grabkows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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