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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Gray Apr 13. 2020

71. 저 다리 건너에도 이웃이 살고 있다

(Week 42) EVERYTHING WILL BE OK


하늘이 공평하다는 말은 때로는 잔인하다는 말로 들리기도 하는데 지금 살고 있는 애틀랜타의 4월 하늘을 보면 그런 마음이 든다. 이곳에선 문자 그대로 눈이 부시게 청명한 하늘이 며칠씩 이어지는 일이 흔해, 황사와 미세먼지에 고통받던 4월의 서울 하늘을 생각하면 단지 하늘의 빛깔 만으로도 여긴 사람 살만한 곳이구나, 천국이 멀리 있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곤 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것을 감상하며 집 주위를 마음껏 산책해본 기억이 없다. 산책은커녕 채 1km도 떨어지지 않은 마트도 걸어 다니지 않는데 그 이유는 첫째는 잊을만하면 들려오는 총기 사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고, 둘째는 4월이면 애틀랜타 전역을 뒤덮어 버리는 꽃가루 때문이다. 특히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꽃가루는 공기 중을 떠다니다 사람 몸에 들어와 알레르기를 일으키기도 하고, 주차해 놓은 차량 위에 내려앉아 마치 레모나를 쏟아부은 듯 노랗게 덮어버리기도 한다. 신께서 이 땅에 그토록 푸르른 하늘을 주셨건만 하필이면 그것을 가장 만끽할 수 있을 계절에 노오란 꽃가루까지 함께 주셨으니 공평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잔인하기도 하다.


올해 4월 역시 건조한 날씨 속에 꽃가루가 기승을 부리고 있어 동네 산책길이 조용해야 정상일 텐데, 어째 예년과는 상황이 달라 보인다. 발코니에 서서 내다보면 아침저녁으로 가족과 함께 혹은 반려 동물을 데리고 동네를 거니는 사람들이 제법 눈에 띄는 것이다. 더욱이 지금은 COVID-19의 확산을 억제하고자 3월 중순을 기점으로 3주 이상 자택 대비령(Shelter-in-place order)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 아닌가. 그럼에도 동네를 거니는 사람이 줄어들기는커녕 평소보다 몇 배는 더 많아 보이는 것은 아마도 집에 있으라는 명령에 지친 사람들이 답답한 마음에 꽃가루를 뚫고, 바이러스 전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산책을 나온 모양이다. 애틀랜타 역시 COVID-19 확진자 수가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긴 하나, 6피트의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를 준수한다는 전제 하에 가벼운 산책은 허용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유지한 채 걸으며 잠시 숨을 고르는 중인 것 같다. 몇 주 째 집에만 있기 답답하던 나 역시 처음으로 그 행렬에 동참해 보았다.




막상 나와 보니 젠장, 너무 좋다. 이 좋은 걸 왜 누리지 않고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창 밖으로 보던 것보다 몇 배는 더 좋다. 꽃가루를 잠시 잊어두니 화창한 봄날 아래 만개한 벚꽃과 철쭉도, 그 옆에서 지저귀는 새소리도 좋다.


조금 더 걸어가 보니 처음 보는 다리가 하나 등장하였다. 본 적 없는 다리였으니 그 건너편 동네 역시 가본 적 없는 곳이었다. 기왕 나왔으니 한 바퀴 크게 돌아볼 작정으로 다리를 건너려는 데 반대편에서 한 사람이 걸어온다. 한 걸음 두 걸음, 조금씩 가까워질수록 좁은 다리 위로 아주 근접해 걸어야만 하는 상황이 상상되기 시작하였다. 왠지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그분도 그런 경계감을 가진 것만 같다. 마침내 서로를 지나쳐야 하는 지근거리가 되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우리는 자석의 N극과 S극이 서로를 밀어내듯 자신에게 가까운 쪽 난간으로 달라붙어 걷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고, 그분 역시 멋쩍은 웃음으로 화답해 주었다. 눈이 마주친 우리는 다시 한번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How are you?"를 중얼거리고는, 늘 그렇듯 대답은 듣지 않은 채 발걸음을 이어갔다("Fine, thank you. And you?"는 교과서 속에서나 존재하였다).


몇몇 고층 호텔과 저층 아파트가 밀집한 우리 동네와는 달리 다리 건너엔 전형적인 미국의 마을이 자리하고 있었다. 좁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띄엄띄엄 위치한 단독 주택과 잘 정돈된 마당이 있었고, 그곳엔 낮 시간이었음에도 자택 대피령의 영향인지 대부분의 주민들이 집에 있는 것으로 보였다. 마당을 뛰노느라 여념이 없는 아이들과 정원을 정비하느라 바쁜 한낮을 보내는 어른들이 눈에 띄어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면 대부분 밝은 인사로 화답해 주었다. 채 몇 백 미터도 떨어지지 않았지만 한 번도 건너지 못했던 그곳에도 나의 이웃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새로 만난 그 이웃들은 하나같이 집 앞마당에 이런 글귀가 적힌 푯말을 꽂아 놓고 있었다.


EVERYTHING WILL BE OK



최초 애틀랜타 소재의 한 갤러리에서 디자인한 문구로, COVID-19으로 생계가 어려워진 저소득 예술가들을 돕기 위한 기부 캠페인의 일환으로 해당 푯말을 제작하여 팔기 시작했는데 이 짧지만 강렬한 글귀는 SNS를 타고 점차 확산되어 지금은 팬데믹을 이겨내기 위한 슬로건으로 즐겨 사용된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었다. 기부 행사나 봉사 현장에서 자주 보이던 문구였다. 실제로 나와보니 상당히 많은 분들께서 캠페인에 동참해 이웃을 돕는 동시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일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총이, 꽃가루가, 혹은 바이러스가 무섭다며 누군가 집에만 처박혀 있던 그 시간에 다른 누군가는 기부를 통해, 혹은 봉사활동에 나서 지역사회를 위해 땀을 흘리고 있었다. 6피트라는 서로 간의 약속을 존중하되 그러한 제약 속에서도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묵묵히 해나가는 이웃들이 다리 건너 살고 있었다.






6피트.

그것은 얼마만큼의 거리일까.

그만큼을 떨어지기 위해 노력해야 할 정도로 나의 이웃을 가까이서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고개를 들어 바라본 하늘에는 코로나 블루를 잠시나마 잊게 해 줄 푸르름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감싸주고 있다. 당장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언젠가는 실제 그럴지는 몰라도, 최소한 지금은 아닌 것 같다.


그런 마음에 며칠 전 확진 판정을 받고 자가격리 중인 친구 Y에게 메일을 보냈다. 베네수엘라 출신의 Y는 몇 달째 함께 영어공부를 해오던 내 또래의 친구다.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가장 최근 수업이 있던 날을 손으로 헤아릴 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답을 하지 못했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니 두려워하고 있을 친구를 위해 소식을 들은 즉시 무슨 말이라도 채워 보내야 했던, 뒤늦은 답장이다.


Dear Y

I can't believe you're suffering from the novel coronavirus. I know, and you know you are strong. Be stronger and please get better soon. And let me know anything I can do for you.

EVERYTHING WILL BE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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