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의 연인과 사라진 '이슬커피'
이번 '출장 커피'의 고객님 역시
음악과 커피를 매우, 매우 좋아하는 분이다.
‘핸드드립 수호자 연맹’의 '출장 커피'를
직접 전화로 주문했다는 건,
이미 커피 애호가라는 뜻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왈풍류의 시그니처 메뉴
‘이 한 잔의 커피’를 경험해본 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좋았기 때문에 또 부른다.’
이보다 더 직관적인 이유가 있을까?
이번 고객님은 빵을 만드는 분.
그래서 준비한 것도 남달랐다.
커렌베리, 참깨, 꿀을 넣어 구운 깜빠뉴,
스페인에서 직접 공수한 올리브오일,
묵직한 향의 발사믹 식초.
음악도 완벽했다.
신세대 바로크 바이올린 연주자
테오팀 랑글로와 드 스와르테,
그리고 류트 연주자 토마스 던포드의 듀오 음반,
《광기의 연인 – 바이올린과 류트로 연주하는 17세기 작품》.
모든 준비는 이미 끝나 있었다.
그저 나의 '이슬커피'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나 역시 고민 끝에 두 가지 원두를 준비했다.
봄 햇살처럼 밝고 생기 있는 Spring 블렌드,
그리고 그와 상반되는
헤이즐넛, 메이플시럽, 묵직한 바디감의
인도네시아 강가기리.
왠지,
커피와 빵, 음악과 계절.
모든 것이 절묘하게 딱 들어맞을 것 같은 예감.
고객님은 갓 구운 깜빠뉴를 조심스레 자르고 있었고,
나는 옆 테이블 위에 드립 가방을 펼치고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다,
아뿔싸.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핸드밀을… 챙기지 않았다.
온도계나 저울쯤은 감으로도 대신할 수 있다.
하지만 그라인더 없이는,
커피를 시작조차 할 수 없다.
그날 준비된 모든 것은
완벽 그 이상,
‘메타 완벽’이라 부를 만했다.
이슬 커피를 중심으로
모든 것이 정교하게 맞춰진 구조물처럼.
그러나,
핸드밀 하나의 부재는
그 구조를 무너뜨렸다.
우리는 다시
일반적인 완벽으로 내려앉았다.
그럼에도 내가 ‘완벽’이라 말할 수 있는 건,
다행히 고객님 댁에
전자동 커피머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전자동 머신이
쌉싸름한 커피 한 잔을 내려주었고,
이날의 만남은
메타는 아니지만, 꽤 괜찮은 완벽으로
기억될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되짚는다.
갓 구운 깜빠뉴,
발사믹 식초와 올리브오일,
바로크 연주곡,
쌉싸름한 커피.
완벽하지 않은가?
“나는 고객님께 약속했다.
같은 실수는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고.
그리고 다음번엔,
핸드드립 수호자 연맹의 ‘메타 완벽’으로
반드시 다시 찾아뵙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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