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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Jul 15. 2023

할머니의 보따리

 

글을 쓰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그럴수록 갇혀 있는 의미들, 감정의 여운들이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다. 어야  다. 뭉치고, 얽히고설킨  정리되간결해져 언가를 알 수 있다면 갈피를 못 잡던 생각과 마음이 안정돼 잠시라도 평정을 찾을 수  것이었다.


함축됐거나 모호한 상징들이 의미의 혼란을 부추기는 일들이 수없이 많다. 그것은 문학적 장치 밖에서 더 큰 힘을 발휘다. 삶을 대변하는 문학이 아닌 삶 자체의 전유물로써 풀어야 하는 의미들이 생겼다. 푼다는 것 매우 중요다. 나름 그것을 규정하거나, 믿음을 갖게 된다면 결과와 상관없이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명분과 위안이 될 수 있다.

 

할머니의 보따리 속이 늘 궁금하던 시절이 있었다. 할머니는 무엇을 꼭꼭 숨겨놓는 습관이 있었다. 숨겨놓는다는 표현이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때 어린아이의 눈에서 볼 때 그런 느낌을 받았다.

당신이 수를 놓은 천보자기의 크기는 꽤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붉은색에 금빛이 나는 새들을 수놓은 것이었다. 보자기 안에는 둥근 바구니도 있었다. 그 속에 무엇을 넣고 보자기를 묶고 서랍장 안에 넣어두었다. 뒤를 돌아 보자기를 묶던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보자기 속에 무엇이 들었을까 궁금했다.


실체를 알 수 없었기에 아이의 궁금증은 호기심을 넘어 온갖 상상과 억측으로 확대됐다. 귀하고 맛있는 과자나 음식을 감춰두었을까, 보석이나 재물이 들어있을까, 아님 할머니 신앙의 표식인 어떤 부적들이 숨겨있을까, 급기야 저런 것들을 누군가가 가져가면 어쩌지, 하는 온갖 쓸데없는 걱정과 두려움 또는 불신 같은 것들이 아이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하지만 할머니가 넣어둔 것들은 일상에 흔히 보는 것들이었다. 언젠가 보따리 속의 물건들을 확인하는 순간 뭔지 모를 안도감에 마음이 축축해짐을 느꼈다. 할머니의 속옷, 바느질도구들, 예쁜 단추나 잡동사니 같은 것들도 있지만 전부 할머니가 소중히 여기는 물건들이었다. 할머니처럼 다정하고 믿음직한 물건을 보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그 후로도 무엇을 확인해야 마음이 편해지곤 했다.

 

얼마 전 친구들과의 모임이 있었다. 그런데 대화를 하던 중 한 친구가 농담으로 한 말이 몹시 거슬렸다. 헤어진 뒤 돌아오면서 그 말의 의미를 곱씹어보았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의 애매모호한 표정과 행동이 말의 의미를 곡해하도록 만들었다. 마치 농담으로 위장한 진담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알 수 없는 것을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리저리 생각해 보다 결국 방어기제가 작동해 자신의 입장에서 상처받지 않는 쪽으로 유리하게 해석해 결론지어 버렸다. 약 그때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그 문제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면, 진심을 알아보다면  할머니 보따리를 확인하는 순간처럼 기쁨을 느끼며  그녀에 대한 깊은 신뢰를 확인할 수 있었을지 모다.


종종 타인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거나, 주변에서 부정한 일들을 목격하면 울분과 같은 부정적 감정들마음 괴롭힌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도 그것이 해소되지 않으면 영락없이 감기나 몸살의 형태로 병이 찾아오곤 했다.

 

깊이 생각하는 게 즐거운 삶에 방해가 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글을 쓰지 않는 날이 많아고, 각도 단순다. 생각하는 것 피곤하고 감정적 소모란 생각마저 들었만 늘 가슴 한편이 답답했다.


그런 상태가 오래가지 않았다. 잠시는 가능했지만 자신을 속일 수는 없었다. 모른 척한다고 자신의 정체를 부인할 수 없는 것처럼, 병들어가는 자신을 그냥 바라보기엔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컸다.


돌이켜보면 어릴 적 할머니 보따리  세상에 대한 앎의 욕망이었고, 정체에 대한 의심과 불신이었다. 하지만 정체는 밝혀고 그것은 너무도 익숙하고 정겨운 세상이었다.  아이는 안정을 되찾았고 세상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 


지금 글을 쓰면서, 글은  보따리를 풀어가는 과정이 생각을 한다. 보따리 속에 갇힌 생각과 감정을 나씩 풀면서 세상과 소통하며 화합해 가는  과정, 그리고 왜곡된 생각과 감정들이 정제되고 진짜 생각과 마음을 찾아가, 진짜 나를 확인하는 정, 묵묵히 걸어가는 인생길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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