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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Dec 11. 2022

되돌아보기


억의 저편에 휘발된 이야기와 풍경들이 ‘그땐 그랬지’ 속에 다시 모인다. 실제일 수도 착각일 수도 상상일 수도 있는 오랜 이야기들이다. 낡고 빛바랜 사진이나, 곰팡이가 설어 부서져버릴 것 같은 누런 종이 위 희미한 글자들, 버려지지 않고 어딘가에 묻혔다 발견된 녹슨 열쇠 같은 것이 가끔 잠든 기억을 깨운다.


그리움에 무언가가 소환될 때 필요한 최소한의 증거가 되곤 하는 오래된 물건이나, 어렴풋한 기억 앞에 느껴지는 애잔한 감정들, 내용은 몰라도 이미지로 각인된 장면들은 빈약한 기억을 재구성하거나 새롭게 창작하는데 나름의 바탕이 된다. 겹치고 맞춰지고, 덧붙여져 급조된 이야기들은 때론 사실여부를 떠나 지치고 각박한 현실의 허기진 마음을 달래주기도 한다.


가난하고 결핍된 시절이었지만 낭만과 풍요가 있었다고 믿는 것은 되돌아보기 때문일까, 지나간 것은 모두 애틋해서일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유난히 퇴근이 늦던 어머니가 걱정돼 버스 정류장으로 마중 갈 때였다. 드문드문 켜진 희미한 가로등에 비친 그림자가 무서워 걸음이 빨라질 무렵, 내 어깨를 잡던 손길에 비명을 질렀다. 비명 소리에 손 주인도 놀라 소리를 질렀다. 그 손 주인이 친구였음을 확인한 순간 얼마나 반갑고 좋았던지 무서움은 사라지고 웃음만이 허공을 가득 메웠던 추억이 마치 영화처럼 되살아나는 듯하다.


그때 하늘을 보았는데, 달이 몹시 밝고 둥글었다. 지척에서 보는 것 같은 강렬함은 마치 태어나 그것을 처음 보는 양 느껴졌다. 어린 마음에 희미한 전등 길을 앞만 보고 걸었을 때 왜 그처럼 밝고 멋진 달을 보지 못했을까, 의문이란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풀리는 법이다. 두렵고 조급한 마음이 주변을 돌아볼 여유와 시선을 허용하지 않음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가 보다.


크리스마스가 있는 12월이 다가온다. 캐럴송을 듣는다. 학창 시절 때 듣던, 저작권이 없던 시절 거리마다 울려 퍼지던 캐럴송을, 그때 마음이 돼 들어본다. 장면이 떠오른다. 정이 넘치던 거리의 웃음 가득한 소녀들, 장난기 머금은 소년들의 모습, 지나간 흑백 영화처럼 아련한 그리움에 마음이 젖어온다.


돌아보면 힘든 시기도 많았다. 젊은 시절 사랑하는 부모님을 떠나보내고 남겨진 두려움과 외로움, 모든 것들이 나를 버렸다는 배신감과 원망으로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머지않아 삶의 원칙은 끝없이 균형을 맞추려는 것임을 알게 됐다. 새로운 사랑은 찾아오고, 절망에서 피어난 희망은 다시 살아갈 힘을 주었다. 행복과 불행,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떼래야 뗄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었다.


행복이든 불행이든 지나간 것은 모두 의미 있고 가치가 있다는 말은 시간이 주는 교훈인 듯싶다. 돌아보면 행복했던 시절은 아름답고 그리운 추억으로, 불행했던 시절은 인고와 성찰의 시간으로 현재 삶의 자양분이 됐다.


과거를 돌아보며, 삶을 반추하는 것은 큰 축복이다. 그것이 과거에 대한 집착이나, 현실도피가 아닌, 삶의 성찰과 따뜻한 위안이 되었을 때, 그것은 충분히 미래를 살아갈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나는 여전히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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