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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Aug 15. 2022

철문 너머


기다랗게 이어진 울타리 작은 철문 너머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이쪽과 저쪽의 공기는 확실히 달랐다. 작은 철문은 익숙한 세계에서 낯선 세계로 넘어가는 경계선인 양 설렘과 두려움을 동시에 품고 있었다. 작은 철문의 손잡이를 조심스럽게 당겼다. 잠깐 작은 쇳소리가 고요 속에 기척을 내다 이내 파묻혔다.


더위를 피해 산으로 가자던 목적은 사라졌다. 더위는 어느 곳에나 포진해 있었다. 하지만 철문은 이미 들어가는 자에게 최면을 걸어놓았다. 발을 들여놓는 순간 바람은 달라지고,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싱그럽고 눈부셨다. 쏟아지는 햇볕 속으로 들어갈수록, 격렬히 움직일수록, 배출되는 땀의 양이 많아질수록 몸은 점점 가벼워지고 한기마저 느꼈다.


산이 품은 여러 개의 숲 중 가보지 않던 숲 속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은 곳 같았다. 무엇에 홀린 것처럼 꽤 깊이 들어갔다. 다니던 길을 벗어난 숲 속은 익숙한 세계에서 이탈된 기이하면서도 환상적인 형상으로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주변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숲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신비했다. 큰 나무와 바위는 언제나 제자리였던 것처럼 견고하고 완벽하게 자리 잡고 있었고, 작은 나무들은 제멋대로 뒤엉켜 있는 듯했지만,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었다. 작은 바위들은 흐르는 샘물에 길을 내어주고, 나뭇잎과 이름 모를 풀들은 납작하게 엎드려 바람이 지날 때마다 바스락 소리를 내고 있었다. 산새의 울음소리는 가벼우면서도 깊었다. 죽은 나무에서 생명을 틔우는 버섯들의 다양한 모양과 색상은 그림 같았다.


넋이 나간 듯, 한참을 숲 속 바위에 앉아 있었다. 이처럼 아름다운 모습의 밑바닥에는 비인간적인, 인간이 근접할 수 없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차갑고 정제된 그 무엇이 있는 듯했다. 동시에 그것은 정겹던 자연을 순식간에 낯섦과 생경함으로 바꿔놓았다.  


그동안 자연에 부여했던 수많은 의미들이, 인간적인 것으로 환원시켜 미리 덧씌워진 형상과 윤곽만으로 세상을 이해했다는 사실이 무척 곤혹스럽고 허망하게 느껴졌다. 고독이 밀려왔다. 하지만 결코 외롭지 않았다. 다름이 이처럼 편하고 자유로운 것은 무엇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숲 속에선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하늘을 보았다. 황망히 떠나는 구름과 뒤쫓아 오는 구름, 비가 한 두 방울 얼굴에 떨어졌다.  아쉬운 마음을 여기 남겨두고 산을 내려왔다.


그 후로도 철문은 삶의 고통을 치유하는 통로가 되었다. 저쪽과 이쪽을 가르는 즐거운 삶의 유희가 되었다. 마음은 육체를 다스리고, 정신은 무한히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곳, 무력함과 권태가 고개를 들 때마다 찾아갈 수 있는 곳, 오롯이 자연과 조우할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철문을 여는 순간 이미 마음과 정신은 숲을 헤매고 있다. 비록 더위에 지쳐가는 나날들이지만 철문 너머생각하며 힘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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