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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Jun 28. 2022

6월


6월이 끝나간다. 꼭 꺼내보고 싶은 낡은 수첩이 있다. 담담한 마음으로 보고 싶다. 처음은 미미하지만 그것이 진행될수록 더 확대되고 깊어짐을 알기에, 본능은 자꾸 덮어두라 한다. 매년 이만 때만 되면 도지는 병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것이 계절의 특권인가 보다. 기억하지 않으려 해도 그들만의 무기로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지배한다. 6월의 장마와 습한 바람도 그렇다. 그것은 우울의 메타포가 돼 빈 마음을 노린다. 자신들이 점령했던 그 시간들을 토해내라 아우성친다.


 낡은 수첩엔 숫자들이 빼곡하다. 그것을 보면 느낄 수 있다. 험난한 세상에서 그녀가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았는지, 다정하고 친근한 이름들 옆에 새겨진 숫자들, 그녀가 줄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인지 고민한 흔적이, 방백처럼 자신의 마음을 오롯이 표현한 문구들 속에 그녀의 외로움, 삶의 무게가 얼마나 컸는지를.


삶은 크고 작은 상처의 기억들로 이뤄졌다. 그것은 시간의 덧칠 속에 희미해지거나 아물기도 하지만, 어떤 날은 상처가 도져 가렵기도 아프기도 하다. 참지 못해 피가 나도록 긁기도 한다. 피를 보며 생각한다. 온전히 아무는 상처가 있을까? 그래서는 안 된다. 어떤 상처는 결코 온전히 아물어선 안 된다. 꾸둑꾸둑 말라 아무런 아픔을 느끼지 못하면, 아 그것이 더 두렵다.


상처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할 수 있다면 고통은 오히려 아름답다. 지금은 없다는 것, 만질 수도 대화할 수도 없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이 고통이라면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수첩 속에 낯익은 그녀의 필체를 보고, 그녀의 생각을 읽고, 그녀가 만졌던 종이의 체취를 느끼는 동안 그녀는 나와 함께 있는 것이기에, 슬프지 않다. 충만함과 결핍을 동시에 느낀다. 상반되고 모순된 감정들이 실은 다르지 않다.


6월의 끝자락을 붙잡고 싶다. 6월에 태어나 그런 건 아니다. 낡은 수첩 속 6월 어느 날은 매우 특별했다. 그녀의 무한한 사랑만큼 크고 진하게 표시된 숫자를 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6월은 그 자체로도 슬프고 아픈 달이다.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씻을 수 없는 전쟁의 상흔이 우리 DNA 속에 흐르고 있어서일까. 상처는 온전히 아물지 않는다. 아니 아물면 안 된다. 상처는 살아갈 힘을 준다. 더 성숙한 7월이 되기 위해 6월을 놓아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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