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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Jun 15. 2022

도시인


도시는 우중중한 검은 구름 아래 부스스 깨어났다가 다시 잠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해가 구름 사이로 눈길을 줄 때 도시는 잠시 붉어졌다 다시 우수에 잠겼다. 도시는 불면에 시달리고 있었다. 현란한 빛과 광폭한 굉음뿐 아니라, 어디서 시작됐는지 모르는 거친 풍문이 귀를 두드릴 때마다 잠을 잊었다. 도시는 포옹하고 있는 피조물이 서서히 지치고 병이 들어갈 때 한 번쯤 몸서리친다. 도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온몸에서 분출하는 노폐물을 토해놓거나 열병을 앓는 일일뿐이다.


 오늘도 도시를 걷는다. 도시가 싫어서 시골을 찾아가 볼까 했지만, 오늘도 생각과 마음뿐이다. 무작정 시골이란 곳을 찾기가 어렵다. 아는 사람도 없다. 도시에서만 살아봤기 때문에 시골이 어떤 곳인지 정확히도 모른다. 간혹 도시를 떠나 차창 밖에 몸을 기대어 피상적인 풍경을 바라보며 시골의 모습을 상상한다. 금빛 들판이나, 육중한 산속에 박혀있는 초가집들, 가축들의 한가로운 몸짓을 보며 시골의 낭만과 평화로움에 매료된다. 하지만 스쳐가는 것은 모두 아름답다. 도시의 찬란한 불빛처럼.


 어렴풋이 생각나는 곳이 시골로 인식된 적이 있다. 초등학교 때 가족이 부산 친척집에 며칠 머무른 적이 있었다. 먼 친척 벌이라는데 그 후 만난 적이 없는 걸 보니 한 다리 건너 아는 지인이었을지 모른다. 그들이 사는 곳은 바닷가에서 멀지 않은 민가였는데, 피서객을 위해 민박을 운영하기도 했다. 큰 산이 보듬고 있던 마을은 키 재기하듯 고만고만한 집들이 즐비해 있었다. 바닷가라서 공기는 축축했다. 여름을 피해 온 민박집이 어린아이의 눈엔 시골이었다. 어른 남자 손바닥보다 큰 이파리를 달고 솟구쳐 있던 나무의 끝을 올려다보느라 목이 아팠던, 축축한 공기가 마치 땀인 듯 뒤범벅돼 물가에서 연신 펌프질을 하며 물을 끼얹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골이란 장작 타는 냄새 같다. 훈훈하고 정겹지만 이내 사라져 버리는.


 도시를 벗어날 수 없음을 안다. 여행을 가서 잠시 머무는 곳이 자연으로 뒤덮였다 해도 그곳이 시골일 수 없다. 시골은 아이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추억에 지나지 않는다. 어느 곳이나 삶의 치열한 터전일 뿐이다. 삶이 토해놓은 흔적들로 몸살을 앓고 있는, 안일과 편리를 위해 개발돼 사라지거나 작아지고 황폐화돼 가는 자연, 그곳을 찾아 쉼 없이 헤매는 안쓰러운 도시인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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