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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Mar 26. 2024

지는 해에게 배운다.


저물며 환한 해를 본다. 떠오르는 해처럼 찬란하고 강렬하지 않아서 좋다. 뒷모습에서 더 많은 표정과 사연을 읽을 수 있는 것처럼 은근하고 편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서 좋다.


차고 넘치는 것보다 조금 모자라는 것이 좋다. 너무 행복한 것보다 조금 불행하고, 너무 기쁜 것보다 조금 슬픈 것이 오히려 좋다. 부족함은 채울 여지가 있어 안도와 기대감을 주지만 완벽함은 언제 없어지거나 뺏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어 마음이 불안하다.


계절이 바뀔 때쯤이면 옷 정리를 한다. 겨울 내내 입었던 옷들을 드라이클리닝을 주거나 빨아서 박스나 옷장 한 편에 정리해 둔다.


어떤 옷은 그것을 입었을 때의 스토리를 떠 올리게 한다. 지금은 입을 수 없을 정도로 작아진 옷을 버리지 못하는 경우도 그렇다. 날씬했던 시절, 즐겨 입었을 뿐 아니라 그 당시 수입으로는 과분하다 싶을 정도로 비싸게 샀던 정장이다.


이번에는 꼭 버려야지 결심했음에도 은근슬쩍 다시 박스에 집어넣는다. 아마도 그런 심리를 짐작해 보건대 옷이 아닌 그 시절의 젊음과 자긍심을 간직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지금은 성년이 돼 이제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아이들이 썼던 물건들도 그렇다. 스케이트라든지 바이올린, 피아노도 여전히 한 장소를 차지하고 있다. 아직 새것처럼 보이는 연필깎이나 별로 닳지 않은 색연필, 깎지 않은 연필 등도 한 곳에 보관하고 있다.


매년 버려야지 하면서도 다음 해까지 가져가는,  되풀이되는 행위 또한 지나간 시간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 때문인지 모르겠다.


언젠가 아이들이 필요 없다고 버린 학용품이나 노트를 보고 다시 주어다 놓은 일이 있었다. 필통이나 지우개도 아직 쓸 만한 것이었고, 노트는 반 이상이 빈 공간으로 남아 있었다. 버리지 않은 걸 발견한 아이는 ‘이제 필요 없다’ 했고 나는 ‘멀쩡한데 왜? 엄마가 쓸 거야’ 했다.


옛 물건은 마치 요술램프 같다. 그것을 만지고 쓰다듬으면 사소하지만 정겨웠던 그 시간들이 되살아난다. 과하지 않고 소소했던 행복들이 저무는 해처럼 아련하고 진한 여운으로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많이 어설펐던 날들, 실수와 실패, 미성숙으로 가슴 아팠고, 후회했고 때론 절망했던 젊은 날들이 지금 돌이켜보면 진정 행복하고 아름다운 날들이었음을 지는 해를 보며 깨닫는다. 부족함을 채우려 노력했고, 잘 살아보려고 발버둥도 쳤고, 아이들에 대한 기대와 실망으로 괴로워했던 시간이었다.


열정과 격정의 치열했던 삶은 시간이 흐르며 어떤 방식으로든 안정됐고, 아이들도 그들의 삶을 찾아 떠나갔다. 지나간 날들이 꿈처럼 흘러 지금에야 삶을 관망하고 돌아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채움보다 결핍이 마음을 허전하게 만든다.


필요하지 않은 옷과 물건은 정리해서 버려야겠다. 앞으로 사는 것들보다 버리는 것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비우는 연습을 해야겠다.  소중한 추억과 그리움을 물건이 아닌 가슴속에 담는 여유를 지는 해에게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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