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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Mar 25. 2018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

어린 시절 ‘걸리버 여행기’를 동화로 읽으면서 환상과 신비로 가득 찬 세상이 정말 있을까 무척 궁금했다. 걸리버가 가는 곳마다 일어나는 흥미진진한 일들에 빠져 시간가는 줄 모르고 열중해서 읽었다. 특히 내용보다 그림이 더 인상적이고 흥미로웠다.


소인국에서 거인이 된 걸리버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밧줄에 묶였던 장면이나, 거인여자 아이가 걸리버를 손안에 넣고 바라보던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그 후 어른이 돼서 책을 읽게 되었을 때, 인간본성에 대한 통찰과 당시 영국 사회를 풍자하고 비판하는 내용이 황당한 소재 속에 이처럼 풍부하게 함축돼 있는지 새삼 알게 되었고, 작가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과 집필 의도를 통해 작품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책 서문에 「걸리버 여행기」의 저자는 ‘레뮤얼 걸리버’ 이며, 걸리버의 사촌인 심프슨이 작가의 부탁을 받고 대신 책을 출판한다고 적혀있다. 그러면 왜 실제 작가인 스위프트는 가공의 인물을 내세워 책을 출판하려 한 것일까? 가명으로 작성된 원고와 출판 시 요구사항이 적힌 쪽지를 출판업자 집에 놓고 갔다는 일화를 보면 책 내용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조너선 스위프트가 살았던 18세기 영국은 보수인 토리당과 진보인 휘그당이 정권을 다투던 시기였다. 영국 국교인 성공회가 있음에도  두 정당은 내심 구교와 신교를 지지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성공회 신부였던 스위프트는 어떤 식으로든 정치적 연관을 피할 수 없었다.


작가는 정치인과 사회에 대한  풍자와 비판의 수단으로 책을 선택했고, 기행문으로 포장했다 해도 그 내용은  정치적 색채가 강했기 때문에 자신을 밝힐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당시 영국은 많은 나라와 교역을 하면서 여러 나라의 풍물과 관습, 다양한 문화를 기행문 형식으로 소개하는 글이 유행했는데, 작가 또한 당대의 대표적 문인들과 함께 ‘스크리블러스’클럽을 형성해 당대 학문의 허위성과 지식인의 부도덕함, 과학의 남용 등을  기행문에 빗대어 풍자하였다.


기행문 형식을 고수하고 있는 ‘걸리버 여행기’는 상징과 비유, 풍자와 조소, 등 다양하고 풍부한 문학적 표현으로 인간의 부도덕한 내면을 예리하게 파헤친다. 그리고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의미들을 기괴한 생물과 사물로 탈바꿈시켜 상상과 재미를 줌으로써 전하려는 메시지가  고루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해 준다.

  

한 선박의 외과 의사인 레뮤얼 걸리버가 원래 예정된 도착지로 가는 도중 풍랑을 만나고 조난을 당하면서 미지의 섬들을 방문한다. 그곳은 인간보다 아주 작거나 무척 큰 비정상적인 크기의 존재들이 살고, 비상식적인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 기괴한 동물들이 살고 있다. 걸리버는 매번 이상한 일을 겪고 나서 다시 영국으로 돌아온 후 심신이 회복되면 또 다시 여행을 떠나는 일을 반복한다.


이 책은 4부로 돼 있는데 작가의 의도가 엿보인다. 네 방향의 관점에서 인간을 바라보고, 그에 따라 풍자하거나 비판하기 위한 문학적 장치를 마련했다.

 

1부 첫머리에는 걸리버에 대한 정보가 나온다. 그는 노팅엄셔 지방의 작은 소유지를 지닌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보통 수준의 대학을 나왔다. 성실히 일하고 공부해서 작은 꿈을 이루려는 그는 영국 사회의 평범한 중산층의 전형이다. 그는 ‘잘 속는(gullible)’이란 이름처럼 순진하지만 상상력이 부족하다. 그의 진지한 생각과 행동은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듯 보이지만 왠지 그의 믿음과 어긋나는 결과를 가져온다. 걸리버는 작가의 생각을 대변하는  인물이면서 동시에 작가가 풍자하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작가는 걸리버를 비일관성 존재로 만든다. 냉철함과 어리석음의 양면성을 보여줌으로써 작가가 의도한 풍자의 효과를 더 높여준다.


작가는 재미로 가장한 이야기 이면에 인간본성의 나약함과 치졸함을 풍자하고 있다. 릴리프트 소인들의 키가 15센티미터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강조해서 좁게는 당시의 정치가들을 넓게는 인간 전체를 축소하여 풍자하고 있다. 위에서 내려 보면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인 소인은 자신들의 모습은 깨닫지 못하고 마치 우주의 중심인 양 생각하고 행동한다. 릴리프트의 왕이 다른 소인보다 크다고 경외와 두려움의 대상이 됐지만 그래봤자 걸리버 엄지손가락만큼의 차이밖에 안 된다는 표현 속에서 왕의 위엄이 얼마나 하찮고 보잘 것 없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그곳의 사람들은 악행을 일삼고, 권력에 아첨하며 출세하기 위해 왕 앞에서 줄타기를 한다. 이런 묘사는 시대를 초월해 벌어지는 현상을 정확히 그려냈다는 점에서 탁월한 비유라 생각된다.


2부는 거인이 등장하고 걸리버는 소인이 된다. 작가는 브롭딩낵의 우화를 통해 걸리버의 도덕관념을 비판한다. 걸리버는 거인국의 왕과 영국 사회와 관습에 대해 토론하는 장면에서 유럽정치인들과 정당들, 유럽사회가 보여주는 광기와 비인간적인 모습을 당연시 한다. 게다가 왕이 비판하는 것에 대해 영국을 옹호하고 거짓말로 변명을 한다.이처럼 영국인의 평범함 속에 감춰진 도덕적 결함을 비판하고 있다.


거인들은 소인과 달리 인간의 세밀한 부분, 추함을 여지없이 드러내는데, 거인들의 외모는 마치 인간의 모습을 확대경을 통해 드려다 보는 역할을 한다. 거인국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여인의 모습에서 걸리버는 죽은 깨와 지저분한 구멍들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나는 역겨운 냄새와 무엇보다 거대한 식사량은 걸리버에게 혐오감을 일으킨다. 인간에게 감춰진 결점들을 우화를 통해 전하는 부분들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렵다.


3,4부는 인간의 과학만능주의,이성과 합리성에 대한 문제제기와 풍자, 비판이 이어진다. 작가는 인간의 과학만능주의에 대한 자만심이 얼마나 모순되고 위험한지 3부의 나는 섬 라퓨타의 사람들의 시각을 통해 보여준다. 라퓨타의 사람들은 눈이 한 쪽은 아래로 다른 쪽은 위로 되어 있어 주변은 보지 못 한다. 따라서 생각도 편향되고 비상식적일 수밖에 없다. 이곳 사람들은 추상적이고 내면적인 생각에 몰두한 나머지 주변과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한다. 과학 실험이라고 하는 것도 전혀 실현성 없고 어처구니 없는 실험이다. 배설물을 다시 음식으로 만든다든지, 어린 양의 몸에 고무와 광물 등을 넣어 털이 자라지 않게 만드는 등 사람들에게 전혀 유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허황되고 추상적인 실험들로 시간을 허비한다. 이렇듯 발상부터가 잘못된 이곳의 황당한 실험을 통해 작가는 과학의 남용은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고 결국 인간에게 재앙을 안겨줄 것이라는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듯하였다.


4부는 작가의 생각이 가장 핵심적으로 드러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성의 관점에서 볼 때의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그토록 이성적이라고 자부하는 인간이 과연 이성적일까? 라는 물음과 함께 이야기의 의미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결과를 보여준다. 오히려 인간의 본성은 비이성적이며 동물적이다.


걸리버는 휴이넘이라는 말이 지배하는 나라를 가게 된다. 걸리버가 만난 휴이넘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다. 이들의 말은 분명하고 행동은 공정하며 법체계는 간단하다. 그들은 참되고 옳은 것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싸우거나 논쟁하지 않는다. 하지만 너무 이성적인 그들에겐 감정이 없다. 그곳에는 야후라는 존재가 함께 사는데 그들은 휴이넘과 정반대의 인격을 갖고 있다. 천성적으로 악한 이들은 야만적이고 탐욕에 찌든 타락한 동물로 묘사된다. 이성이라곤 없는 감각에 지배되는 원초적 존재이다. 작가가 설정한 야후라는 존재는 타락한 인류의 모습을 상징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걸리버는 야후의 모습에서 인간을 발견하고 경멸과 혐오를 넘어 두려움과 공포마저 느낀다. 그럴수록 걸리버는 휴이넘의 행동과 말을 따라하고 그들과 함께 살고자 한다. 하지만 걸리버 또한 옷을 입은 야후에 지나지 않는다고 판단한 휴이넘들은 그를 추방한다. 걸리버는 충격을 받고 영국에 돌아가지 않고 무인도에서 살려고 했지만  결국 영국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영국에서 그는 가족도 멀리한 채 말과 함께 지낸다.

 

 인간의 탐욕과 이기적인 본성은 분명 존재하고, 그것을 이성이 적절하게 통제하지 않는다면 야후와 같은 모습으로 살 것이다. 그러나 이성만능주의도 경계해야 한다. 인류가 이성과 합리라는 미명 아래  범했던 숱한 과오가 있기 때문이다.

  

책을 덮으니, 긴 여행에서 돌아온 느낌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환상의 세계를 맛본 짜릿함과 그 세계에 감춰진 비밀을 알고 난 후의 무서움이 뒤섞인 야릇한 그 무엇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걸리버 여행은  삶의 여정에서 인간이  무엇을 경계하고 극복해야 하는지 성찰하게 한다.  또한

인간의 치명적 결함을 무조건  경멸하고 배척하기보다는 그 모습을 인정하고, 이성과 적절한 조화를 통해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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