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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Mar 26. 2018

고골의 (뻬쩨르부르그 이야기)

  

샹뜨 뻬쩨르부르그는 러시아 문학에 자주 등장하는 중요한 도시이다. 표트르 대제가 서구의 근대화를 지향하여 유럽식으로 만든 인공도시이다. 하지만 문학작품 속에는 겉은 화려하지만 실상은 허위로 가득 찬 환영의 도시로 묘사된다.


니콜라이 고골은 우크라이나 태생이다. 관리의 꿈을 안고 러시아로 왔지만 인맥이 없었던 그는 관리가 될 수 없었다. 그의 작품 대부분 중심 인물이 러시아 관리이며, 그들을 통해 관료사회를 비판한 것을 보면 이 시기의 경험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좌절을 경험한 다음 그는 배우를 지망했지만 또 실패하고 마지막으로 시인이 되려고 했다.


시작은 순탄치 않았지만 그는 뛰어난 이야기꾼이었다. 고향의 전례 동화나 민담, 전설 등 풍부한 이야기를 듣고 자란 그의 상상력과 뛰어난 재능이 결국  그를 유명한 작가로 만들었다.


「뻬쩨르부르그 이야기」는 다섯 편의 짧은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뻬쩨르부르그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다섯 편의 이야기는 환상과 현실이 뒤섞여 유머러스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의 단편 중 하나인 ‘코’는  황당무계한 이야기로 전개된다. 이발사 이반이 빵을 먹다 그 속에서 코를 발견한다. 그는 자신이 면도해 준 8등 관을 어렴풋이 떠올리며 아마 그의 것이 아닌가 짐작하지만 분명하지 않다. 이발사가 술에 취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은밀한 과오를 은폐하기 위해 여러 차례 코를 싼 종이를 버리려고 시도한다. 이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통해 인간 사회에서 발생하는  비상식적이고 부조리한 일들이 우회적으로 풍자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이발사가 코를 다리 밑에 버리려던 찰나 경찰한테 들키고 이야기는 잠시 끊긴다.


한편 8등관리 꼬발로프는 뒤숭숭한 꿈에서 깨어보니 자신의 코가 없어진 사실을 알고 경악한다. 그는 끝까지 이성을 잃지 않고 어떻게 수습할지 고민한다. 경찰서에 가서 코가 실종됐다고  말할지, 아님 코를 찾는다는 광고를 낼지, 이런 심각한 상황이 희극이 돼 버리는  아이러니 또한 우리 삶의 모습이다.


코가 8등 관리의 얼굴에서 떨어져 5등 관리 행세를 하며 돌아다닌다. 코는 주인공의 일부이다. 그런데 그것이 독립적으로 행동하고 게다가 자신보다 더 높은 관리가 돼 있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서 인물의  갈등과 고뇌는 깊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는 그런 상황을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코로 인해 자신의 위신과 품위가 훼손될까 전전긍긍한다. 작가는 우스꽝스러운  인물의 모습에서 실상이야 어떻든 겉치레만 중시 여기는 러시아 관료의 속물주의적 태도를 꼬집는다.


어느 날 꼬발로프는  어떤 집 대문 앞에서 코를 발견한다.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코를 미행하여 마침 성당에서 코를 만난다. 용기를 내어 코에게 돌아오라 한다. 하지만 코는 모른 척 외면한다. 애원과 회유,협박에도 꿈쩍하지 않는 코, 자신의 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비주체적 존재를 보며 인간 소외의 단면을 느끼게 된다. 이처럼 초현실적이고 비논리적인 세상에 빗대어 인간 사회의 모습을 정확히 그려내는 작가의 통찰이 놀랍다.

 

작품 속 인물의 야망은 크다. 그가 빼쩨르부르그에 온 이유도 더 높은 관료가 되기 위해서인데  코 없이 사교생활을 한다는 것은 그에게  상상할 수도 없다. 여기서 꿈과 코는 등가의 의미를 준다. 꿈과 현실의 괴리가 클수록 꿈을 이룰 수 없다는 절망은 커지고 결국 잠재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환영을 만들어 자신의 야망을 달성케 하는데 그것이 코로 발현됐다고 해석해 본다.


코가 마침내 돌아왔다. 사라진 공백 속 이야기는 예측했던 대로이다.  이반이 다리 밑으로 무언가를 버리려 할 때 이를 수상히 여긴 경찰이 그를 잡아 추궁하고 그의 자백을 통해  사건이 밝혀지면서 코도 무사히 건질 수 있었다.


그런데 코가 돌아와서 하는 행태가  너무 우습다. 아무리 달래고 타일러도 코는 자꾸 떨어진다. 포기하고 싶지 않은 잠재된 욕망은 코의 이탈을 부추긴다. 이처럼 희화화된 형상은 웃음을 유발하지만 이면에 허탈한 비애를 담고 있어 마음이 씁쓸했다.

 


당시 러시아 문단에서 전통적인 서사 방법과 다른 이 작품의 독특한 서술 방식에 매료돼 작품은 큰 각광을 받았다. 환상성은 어찌 보면 유치하고 비상식적인 얘기로 치부해 버리기 쉽지만 이런 명작의 가치는 그런 한계를 극복하는데 있을 것이다. 현실과 상상의 조우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며, 그 속에서 삶의 진실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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