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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Mar 27. 2018

고미숙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이 책은 옆에 두고 자주 읽는 책 중 하나인데 연암 박지원의 삶과 문학에 대해 자세히 서술돼 있다. 연암의 변화무쌍한 행적과 삶의 궤적은 풍자와 패러독스로 가득차고 다채로우며, 재치와 유머가 넘쳐 진부하지 않다.


그는 확실히 천재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남다르고 이면을 파고드는 통찰력과 대상에 대한 표현력이 뛰어나다. 그의 아들이 묘사한 그의 모습은 거대한 몸집과 매의 눈초리를 하고 있어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그가 만년에 면천군수로 부임했을 때 그곳을 떠돌던 귀신이 그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위엄 있는 모습에 질려서 달아났다는 일화가 전해질 만큼 그가 발산하는 에너지는 다.

그의 가문은 영조 때 명문가였고 연암에게 깊은 영향을 준 할아버지는 조선후기 핵심권력의 일원이었다. 그의 처가집도 명망이 높았다. 당시 주류이며 재능이 남 달랐던 그가 뜻밖에 우울증을 앓았다는 사실이 매우 놀랍다.


연암은 엘리트 코스를 밟는 과정에서 제도의 불합리와 경쟁의 논리 속에서 삶의 염증을 느낀 듯하다. 그의 자유분방한 천성은 당시 획일적이고 천편일률적 학문과 맞지 않았고, 부패하고 타락한 정치는 그를 주류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의 우울증은 불면증에 거식증까지 동반한 중증이었다. 그의 자유로운 선천적 기질은 자신을 억압하는 제도와 격한 마찰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저잣거리를 떠도는 이야기를 채집해서 글로 옮기곤 했다. 이야기의 소재는 주로 익살스럽고 우스꽝스러운 야담들이다. 이야기를 창작하면서 그는 삶의 활력을 찾고 우울증도 치유하게 된다.


‘열하일기’는 청나라 열하로 떠나는 사절단에 합류한 박지원의 연행록이다. 이 책의 저자는 연암의 여행 목적은 관광이 아니라 끝없는 잠행이라고 말한다. 그는 사절단의 비공식 수행원이다. 그래서 자유롭다. 이질적인 것들과 접속하려는 그의 욕망은 한계가 없다. 이국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야음을 틈타 일행으로부터 일탈하여 쉴 새 없이 보고 듣고 기록하는 그 에너지는 폭발할 정도이다.


그의 문체 또한 연암체라 분류될 정도로 획기적이고 독보적이다. 정조가 문체반정을 요구한 것도 당연한 결과이다. 많은 지식인들이 그의 글을 비판하면서도 몰래 읽었다는 사실이 그의 작품의 가치를 말해주고 있다. 연암은 한 마디로 지배적 코드를 거부한 유쾌한 아웃사이더이다. 현실에 굴복하거나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그의 모습은 항상 나를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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