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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Apr 14. 2018

습관은 무서워!

'몸에 밴 습관을 고치기 위해 끊임없이 질타하고 각성하는 것이 정말 중요해.’ 주인 여자는 설거지를 하면서 중얼거렸다. 아마도 스스로에게 결연한 의지를 다짐하고 있는 듯했다. 여자는 얼마 전부터 타성에 밴 생활 습관이 자신이 하는 일에 방해가 된다며 생활태도를 바꿔보려 노력하고 있었다. 가령 밤 늦게 와서 식사하는 습관이나,  늦게 자서 새벽 운동을 거르거나, 제때 하지 못해 쌓인 집안일을 한꺼번에 하고 힘들어하는 일 등 생활 속 악습 끊기를 새로운 목표로 삼은 듯했다.

  

그럼에도 늦게 귀가한 주인여자는 못 참겠다는 양 허기진 배를 감싸며 냉장고를 열어 여기저기 살펴보더니 상추와 쌈장을 꺼내 밥을 먹는다. 그리고 바로 자신을 자책하면서 중얼중얼 후회의 말을 하는 것이다. 그녀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발 매트에 웅크리고 앉아 그녀의 발을 보면서 습관이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좋은 습관은 보약이 되겠지만 말이다.

  

사실 나도 안 좋은 습관이 있다.  싱크대 발판 매트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데, 그건 나쁜 습관이라 할 수 없지만 문제는 매트를 발톱으로 자꾸 긁어 흠집을  점이다. 뿐만 아니라 소파나 주인남자가 아끼는 오디오 스피카를 보면 발톱으로 득득 긁어 나란 존재를 알리고 싶어지는 묘한 심리가 발동한다.  유혹을 참지 못하고 매번 몰래 저질렀던 것이 이젠 습관이 돼 나도 모르게 그 행동을 하고 있다. 어쩌다 주인여자에게 들키는 날이면 날벼락이 떨어졌다.

“아니 긁으라고 사준 발톱긁개 판은 왜 안 긁고 아휴! 속상해, 소파나 매트는 그렇다 치고 저 스피커 스크래치는 어쩔 거야! 엉망이 됐잖아!”


나도 잘 못 한 것은 안다. 주인여자처럼 곧바로 후회도 한다. 하지만 습관이란 게 워낙 고약해, 의지 강한 주인여자도 못 고치는 습관을 난들 어쩌나!

  

또 나는 사람의 다리에 몸을 부비는 행동을 유난히 좋아하는데 그것이 나의 천성인지 습관인지 알 수 없다. 주인집 아들이 엄마 품속에서 눈도 떼지 못한 나를 이곳으로 데려 왔기 때문에 엄마로부터 배운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도 어떤 행동들, 즉 내가 변을 보고 화장실 안에서 모래를 덮거나 화장실 플라스틱 벽면을 박박 긁어대는 것이나 털을 고르고 혀로 열심히 몸을 닦고 높은 데 올라가기 좋아하는 것 등은 자연스레 몸에 배인 행동이다. 누구한테 배운 것이 아닌 점을 보아 그건 아마 천성일 것이다.


애완고양이사람들과 같이 살면서 야생성을 잃고 수동적으로 변했다. 사냥을 하거나 짝을 찾기 위한 능동적 삶의 형태는 도태되었지만 고양이 특유의 야행성만은 남아있다. 주로 밤에 집 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벌레도 잡고 어둠 속에서 고독을 즐기기도 한다. 때론 몸이 근질근질하고 운동이 필요할 때는, 야생의 민첩성과 날카로운 기지가 유전적으로 약간은 남아있는지, 한 바탕 움직여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서 내가 거실마루 끝에서 부엌 끝까지 와다다닥 뛰거나,   집에서 가장 높은 곳을 재빠르게 오르락내리락 하기 시작하면 주인여자는

“나리야, 그만해! 밤에 아래층에서 뭐라 할까 겁난다.” 안절부절 하며 나를 다그친다.

  

습관은 처음엔 아주 사소한 행동에서 시작되지만, 반복이 되면 그 행동이 몸속에 각인이 돼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움직인다. 마치 또 다른 자아가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밤에 작업을 하는 주인집 딸은 밤에는 말똥말똥 깨어 있다가 아침이 되면 잠이 든다. 문제는 오전에 중요한 일이 생겼을 때 잠을 자지 못한 채 볼일을 봐야하고 그럴 때면 부스스한 얼굴과 가물가물 몽롱한 정신으로 사람을 만나고 일을 처리해야 하는데, 결국 수면 부족으로 판단력이 흐려지고 집중력 저하로 실수를 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것을 알면서도 습관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아 모녀는 늘 티격태격 실랑이를 벌인다.

“낼 중요한 미팅이 있으니 그만 좀 자라.”

“저도 자고 싶은데 잠이 와야죠.”

  

생각을 하면서 단순해 보이던 것들이 복잡해졌다.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고 배설하고 싶으면 하던 본능적 삶이 습관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생각을 하면서 본능적으로 사는 것은 정말 나태하고 발전이 없을 거란 자각이 들었다.


주인여자가 아이들에게 늘 말하던 비판적 사고가 생각났다. 사물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눈, 그것이 고양이의 눈이라 생각했다. 언젠가 주인여자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란 책에 대해 딸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일본의 나쓰메 소세키란 작가가 쓴 소설인데, 나처럼 생각하고 말하는 고양이가 뛰어난 통찰력으로 인간과 사회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어떤 동질감을 느껴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는데, 그 고양이는 사람들의 관심을 등에 업고 자신이 인간인 양 너무 오만불손하게 굴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고양이는 어디까지나 고양이다. 마치 「동물농장」에 나오는 돼지들처럼 인간을 닮아가려 한다면 그들을 비판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잠깐 삼천포로 빠졌는데, 내가 오늘 말하고 싶은 것은 '습관은 과연 고칠 수 있을까?' 이다.정말 나도 궁금하다. 당장 내 체취가 가득한 매트에서 자지 못하게 된다면 너무 불안하고 허무할 것이다.


요즘 여자가 열심히 보는 책에서는 겉으로 드러난 성향과 습관에 의해 가려진 제2의 천성이 있는데, 그것을 발견해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향으로 발전시키면 나쁜 습관을 고칠 수 있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쁜 습관의 충동적 부분은 무엇이고, 자신을 타성에 빠뜨리는 부분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게 되면 무엇을 어떻게 고쳐야하는지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 생각엔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천이 더 중요할 것 같다. 그래도 자신의 단점을 깨닫는 것이 먼저 선행돼야 할 테지.

  

주인 여자가 아내, 엄마, 며느리, 교사일 때 행동과 말투와 사고방식이 다른 걸 보면 사람들은 다중의 인격을 갖고 있는 듯하다. 여러 개의 자아가 한 몸 안에 있다는 게 신다. 그러고 보면 성향이라는 것이 어떤 것이라고 일정하게 말하기 힘들 것 같다. 자신이 좋아하는 성향을 찾고 발전시키면 그것이 제2의 천성이 되지 않을까?  습관도 간절함이 있다면 고칠 수 있을 것이다. 그걸 증명하기 위 나는 매트가 아닌 내 취침용 깔개 방석에서 자고, 긁개도 주인여자가 사준 것을 이용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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