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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May 05. 2018

모험의 문턱에서

평소와 다른 바람이 털을 부드럽게 스치고 지나갔다. 갑자기 신선한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몸을 가능한 낮게 구부리고 꼬리는 내린 채 코를 킁킁대며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찾아 슬금슬금 기어갔다. 어쩐 일인지 안 쪽 문은 물론 바깥 쪽 문까지 활짝 열려있었다.

     

고양이는 원래 의심이 많고 경계심에 겁까지 많지만 그에 못않게 호기심도 많다. 호기심이 많다는 것은 알고 싶고 해 보고 싶은 게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싶다’와 ‘하다’는 천지차이다. 이제 ‘싶다’에서 ‘하다’로 결심한 나는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콘크리트 바닥의 차가운 을 느끼며 앞으로 나갔다. 언젠가 동물병원에 갈 때 엘리베이터를 타본 적이 있었다. 그땐 아파서 그곳의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다만 움직이는 작은 집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지금 그것은 차갑고 냉정한 괴물처럼 ‘절대 들어오지 마!’ 하며 내 앞을 딱 버티고 서 있었다. 나는 엘리베이터 맞은 편 계단을 향해 조심 또 조심하며 살살 내려갔다. 조그만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 숨을 곳을 찾는 내 자신이 한심한 생각이 들며 점점 자신감이 없어졌다. ‘그냥 집으로 돌아갈까?’

     

망설임의 발끝이 어느새 마지막 계단으로 향했다. 자동문이 스르르 열리고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 가보는 거야.’ 톰 소여나 허클베리핀 정도는 아니더라도 나도 모험이라는 걸 해 보는 거야.’ 스스로에게 힘을 북돋우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바람이 상큼한 꽃 냄새를 풍기며 몸을 부드럽게 감쌌다. ‘아! 진짜 바람의 맛이 이런 거구나.’ 그런데 갑자기 밝은 로 나오니 눈이 부셨다. 베란다를 통해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과 바깥 볕의 체감 온기는 너무나 달랐다. 순간 나는 당황해 몸을 움츠렸다. 조금 움직였는데 금세 더워지고 갈증이 났다. ‘아! 지금부터 이러면 내 모험은 어떻게 되는 거지?’

나는 용기를 내어 주변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내가 서있는 곳에서 길은 세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왼쪽은 언덕처럼  경사가 높은 길이고, 앞쪽은 평지인데 조금 가다  산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가로 막고 있어 오른쪽 길로 내려가게 돼 있었다. 뒤쪽으론 작은 길이 있는데  들어가면 아파트 뒤쪽 공터가 나온다. 그곳은 흙으로 덮인 작은 공원인데 벤치가 드문드문 놓여 있고, 주변엔 나무와 이름 모를 꽃들, 잡초로 우거져 있었다. 나는 이곳을 선택했다. 우선은 뜨거운 햇빛을 피하기 좋고,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설사 사람이 나타나도 숨을 곳이 비교적 많아 보였다. 대낮에 길 한 복판을 다니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아래로 내려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을 나오니 가출한 페르시아 고양이가 생각났다. 그 고양이가 대단해보인 적도 있었고, 또 무모하고 어리석게 여겨지기도 했었다. 누구나 자신이 갖지 못한 건 부러워하기도, 샘을 내기도 하는 법이다. 하지만 용감한 점만은 분명하다. 집을 나와 보니 독립적으로 산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 같았다.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려면 강인한 몸과 정신이 필요할 것이다.

「연어」의 우화가 생각났다. 알을 낳기 위해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에게 폭포는 삶의 모험과 같은 것이었다. 모험을 두려워한 대부분의 연어들은 인간이 만들어놓은 쉽고 편한 길로 가길 원했지만, 은빛연어는 폭포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록 모험 저편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라도 튼튼한 알을 낳기 위해, 강인한 정신을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 험난한 길을 택했다. 결국 폭포를 뛰어넘고 건강한 알을 낳았다.

     

생각해보면 삶 자체가 모험의 과정이라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저 다가오는 삶을 아무 의미 없이 무료하게 맞는 것보다 적극적인 모험을 통해 삶을 개척한다면 삶의 가치를 더 높일 수 있지 않을까?

깊은 상념에 잠겨 수풀 속에 웅크리고 있는데 어디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와 닮은 새끼 고양이가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실제 어린 고양이를 보기는 처음이다. 게다가 나와 같은 족속의 어린 동물을 보니 무척 신기했다.

 “어서 이리와.”

 나는 어린 고양이를 잽싸게 감싸 안았다.

가까이서 사내아이들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숨죽이고 지켜보았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이삼학년쯤 돼 보였다. 주인 여자가 독서 수업을 할 때 들락거리던 아이들 또래라 나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작은 새끼 고양이를 쫓아 온 듯했다.

 “어? 어디 갔지?”

 “분명 이리 왔지?”

 “야! 네가 고양이를 잡으려니깐 겁에 질려 달아났잖아.”

 “아냐, 고양이가 배가 고플 것 같아서 사료를 주려고 했는데.”

 작은 아이는 울상이 돼 두리번거렸다.

 나는 수풀 안쪽에 구멍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아기 고양이를 밀어 넣었다.

 “야! 저기 고양이 있다. 근데 큰 고양인데?”

 “에이, 길고양이잖아?”

 한 아이가 무언가를 놓고 나를 보며 손짓했다.

 나는 슬금슬금 뒷걸음치며 재빠르게 다른 쪽 풀숲으로 기어들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나한텐 별로 관심이 없는 듯했다. 가는 막대기로 나무를 몇 번 툭툭 치더니 다른 쪽으로 후다닥 뛰어 가버렸다.

     

아이들이 놓고 간 것은 사료였다. 나도 음식 먹은가 꽤 오래돼 몹시 허기가 졌다. 하지만 꾹 참고 새끼 고양이를 불렀다.

 “아가야, 이제 나와도 돼.”

 “엄마가 보고 싶어.”

 “너희 엄만 어디 있니?”

 “몰라! 먹이를 구하러 나간다고 했는데…, 돌아오지 않아 엄말 찾으러 나왔어.”

 “배고프겠다. 이거 먹어.”

 나는 구겨진 호일 위에 놓인 얼마 되지 않는 사료를 어린 고양이가 먹도록 양보했다.

     

 새끼 고양이는 정신없이 사료를 먹었다. ‘얼마나 굶었으면 저렇게 게걸스레 먹을까.’

나는 군침이 돌았다. 아! 갑자기 집이 그리워졌다. 내 밥통에 담긴 풍족한 사료, 맛있는 간식들이 눈앞에 왔다 갔다 했다. ‘누군가 말했다지,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고…, 단어야 좀 속되게 들리지만 타산지석이라고, 아무리 보잘 것 없는 경험이라도  교훈은 있는 법이다.'

     

“엄마! 냥이 어디 있어요? 보이지 않은지 한 참 됐어요.”

“뜬금없긴. 걔가 어딜 나간다고, 어디 구석에 들어가 있겠지.”

“냥이야~,냥아! 간식 줄게.”

“어? 정말 이상하네. 다른 건 몰라도 간식 준다면 나타나는 녀석인데.”

“엄마, 혹시 바깥문 열어놓은 적 없어요?”

“바깥문? 참! 아까 아침에 잠깐 현관 바닥 닦느라고 열어놨지.”

“그럼 그 때 나간 거 아녜요?”

“고양이 얼마나 겁이 많은데, 전에 봤잖아. 잠깐 데리고 나갔을 때 무서워서 벌벌 떨며 손톱으로 옷을 꽉 잡는 바람에 옷이 엉망 됐잖아.”

“아냐 분명 나갔어요. 내가 찾아볼게요.”

     

이제 해가 기울어간다. 밤이 되려면 좀 더 있어야겠지만, 고양이는 본능대로 사니 감각이 시계나 마찬가지다. 때가 되면 배가 고프고 더위가 지나고 추위가 찾아오면 계절이 바뀜을 알 수 있다. 언젠가 주인 여자가 읊조리던 책의 구절이 생각난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 있었던, 길의 지도를 읽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별빛이 길을 환히 밝혀주던 시대는 모든 것이 새롭고 친숙하며 모험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결국 자신의 소유로 되는 것이다.’ 아마 루카치 ‘소설의 이론’에서 나오는 구절일 것이다. 이 구절이 잊히지  이유는 자연과 하나 됐던 시대의 향수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모험이었던 그 시대는 모두가 뛰어난 직관으로 고난을 잘 헤쳐나갔을 것이다.

     

어린 고양이는 지금 내 곁에 잠들어 있다. 어쩌나! 모험을 하려는 문턱에서 어린 고양이가 발목을 잡는다. 얘를 데리고 다닐 수도 없고, 우선 엄마 고양이를 찾아줘야겠다. 그런데 나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아서 세상은커녕 바로 앞 동네도 모른다. 여기서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하다. 물론 야생마처럼 부딪치며 세상을 알아가는 방법도 있지만 그러기엔 너무 무모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 이미 나는 사람들에게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벌써 가족이 보고 싶고, 정든 내 잠자리와 화장실 그리고 내 체취가 배어 있는 곳곳이 눈에 선다.

     

“아니, 냥이야! 어쩜 얼마나 찾았는데 어떻게 여기에?”

낯익은 음성이지만 순간적으로 너무 놀라 펄쩍 뛰며 무조건 앞으로 내달렸다. 그러나 곧 정신을 차리고 다시 온 쪽을 돌아봤다. 주인 딸이 아기 고양이를 보며 쓰다듬고 있었다.

“새끼 고양이네. 어디서 왔지? 냥이야 이리와 봐. 나야.”

 순간적으로 그녀는 울컥 했는지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는 그녈 보면서 내가 집을 나온 목적이 무엇인지 잊어버렸다. 아마 나도 머빈처럼 객기를 부렸는지 모르겠다. 이리하여 나의 모험은 문턱에서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그러나 의미 있는 하루였다. 가엾은 아기 고양이를 당분간 우리 집에서 키우기로 한 것이다. 물론 나와 누나가 애절한 눈빛과 진정한 마음으로 주인 여자를 설득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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