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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Jul 24. 2018

더위 물렀거라!

사람들 말에 의하면 올 여름은 예년보다 장마가 일찍 끝나고 불볕더위도 빨리 찾아왔다고 한다. 더위를 잘 견디는 나로서도 이번 여름은 여간 괴로운 것이 아니다. 뜨거운 공기에 숨이 콱 막히고 맥이 풀려  나도 모르게 자꾸  비실대며 주저앉게 된다. 창문이란 창문은 모두 활짝 열고 ‘바람아 들어와라’ 주문을 외워보지만, 뜨겁게 달궈진 대기는 눈치 없이 더운 바람만 투입한다. 요즘 같은 날에는 안하무인으로 덤벼드는 더위에 맞서기보다 일단 후퇴하고 피하는 게 상책이다.

     

가족들은 내 털만 봐도 덥다고 한다. 사람들은 옷으로 더위나 추위를 조절하지만 나 같은 고양이나  털을 가진 동물들은 년에 두 차례 정도 털갈이를 다. 지금처럼 더울 땐 나도 사람들이 옷을 벗듯 털을 훌훌 벗어버리고 싶은 마음 굴뚝 같지만, 무조건 털이 빠지는 게 아니라서 무더운 여름에 수북한 내 털이 사람들 눈에 답답하고 덥게 느껴질 것이다. 그래서인지 모녀는 내 털을 깎아주면 어떨까 하고 의논하기 시작했다. 나는 바람이 지나가는 통로인 중앙에 위치한  탁자 옆 벽면에 몸을 길게 뻗어 밀착시키고 귀를 쫑긋 세웠다.

 

 “고양이털을 깎아주면 어떨까?”

 “엄마! 고양이는 털이 억세서 마취를 하고 깎아야 한대요.”

 “그럼 개보다 비용이 더 많이 든단 말이지?”

 “그럴 거예요. 미용도구도 더 튼튼한 걸로 해야  돼서.”

 “주변에 털 깎은 개는 많이 봤지만 고양이는 별로 보지 못 했어.

 “그런데 엄마! 미용 목적이 아니라 얘 더울까 봐 그러는 거죠?”

 “그것도 그렇고 털이 많이 날려서 그래.  미용 때문에 동물을 힘들게 하는 건 좀 그렇잖니?”

 “그게 그거죠. 동물 입장에선 다 귀찮고 힘든 일일 거예요.”

     

나의 털 문제로 모녀가 주고받는 말을 들으며 문득 가족이 나의 신체의 일부에 대해 마음대로 처리하는 것이 정당한 일일까 의문이 들었다. 물론 나는 동물이 그들의 언어로 대화 순 없다. 하지만 오랜 시간 함께 지내왔기에 무언의 소통은 가능하다. 먹을 것을 요구하고, 배설물을 치워달라는 기본적인 것 외에 내가 외로워서 쓰다듬어 달라거나, 심심하니 놀아달라거나, 귀찮으니 건들지 말아달라는 감정표현을 소리와 행동으로 전달하면 가족은 대부분 내가 원하는 바를 이해한다.

     

나는 씻는 걸 매우 싫어한다. 목욕은 주인여자와 딸이 주로 시켜주는데, 내가 가만있지 않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어쩔 때는 본의 아니게 발톱으로 누군가를 할퀴고, 비명소리에 또 놀라고 한 바탕 법석을 떨고 나면 모두가 지쳐서 쾌적해야할 목욕이 진창에 빠진 것처럼 불쾌한 일이 돼 버린다. 물론 나도 안다. 내가 아무리 미물의 동물이라 해도 나의 위생과 건강을 위해 애쓰는 가족의 마음을 모르겠는가. 하지만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목욕을 굳이 억지로 시킬 필요가 있을까? 그런 맥락에서 깎기도 마찬가지이다. 털을 깎게 되면 내가 가만있지 않을 거란 사실을 그들도 잘 안다. 그래서 마취니 뭐니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동물도 싫은 것은 거부할 권리쯤은, 자신의 몸을 지킬 권리쯤은 있어야 세상 살 맛이 날 것이다.

     

더운데 우리 힘쓰지 맙시다! 나는 젖은 털을 말려주는 딸에게서 잽싸게 빠져나와 소파 뒤쪽 구석으로 들어갔다. ‘나리야, 이리 와 털을 잘 말려야 한단 말이야.’ 나는 그녀의 소리를 피해 더 깊이 들어갔다. 소파 등받이 부분은 벽에 거의 밀착돼 있고 아래로 갈수록 공간이 넓어져 있었다.

이곳은 가끔 불안할 때, 또는 무언가를 피해 급히 후다닥 들어가기 좋은 곳이다. 소파의 중간쯤 아래에 몸을 웅크리고 있으면 손을 뻗어 잡기엔 거리가 있어 결국 나를 끌어내려면 소파를 앞으로 끌어당겨야 한다. 그런  수고와 번거로움 때문에 나를 그냥 내버려둔다는 사실을 알기에 이곳으로의 도피는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도피는 외롭고 지루한 것이다.  나는 곧 순순히 밖으로 나왔다. 항상 느끼지만 당장은 싫어도, 겪고 나면 그런대로 괜찮다고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목욕도 그 중 하나이다. 목욕 후 좀 지나면 털이 부드럽고 가벼워진 느낌이 든다. 괜한 고집을 부려 가족을 힘들게 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나는 사과의 의미로 딸에게 다가가 그녀의 팔에 몸을 비비며 애교를 떨었다.

     

갑자기 초인종 벨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고 낯익은 음성과 냄새가 다가왔다. 주인여자의 막내 시누이였다. 주말이라 놀러온 것이다. 주인여자는 수박과 체리를 접시에 한가득 담아 식탁위에 놓았다. 시원한 수박의 냉기에 더위가 잠깐 주춤하는 듯했다. 더위에 후줄근하게 찌푸려 있던 주위 풍경이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창문을 닫고 블라인드를 내리고 에어컨을 켰다.

     

“엄마! 고모도 오셨는데 우리 무서운 영화 볼까?”

“영화는 무슨, 그렇잖아도 고모랑 할 말도 많은데.”

“정연아, 고모가 무서운 얘기 해줄까?”

“무서운 영화보다 더 무시무시하면 해 주세요.”

“이건 실화야, 네 아빠도 알고 계신 이야기야.”

“정말요? 그럼 해 주세요. 어쩐지 으스스한데요?”

     

그들의 이야기를  이 글의 화자인 나 고양이가 대신 전해주자면 대강 이렇다. 고모가 어릴 때 실제 겪었던 일이라고 한다. 초등학교도 가기 전이다. 고모의 어머니이자 주인 여자의 시어머님이 볼 일을 보고 오시는 길에 논둑에 버려진 빨간 말을 보고 어린 딸에게 줄 요량으로 주워오셨다. 당시 집안 형편이 어려워 어린 딸에게 장난감 하나 변변히 사줄 형편이 못돼서 ‘옳거니 잘 됐다’ 하셨나 보다.

     

고모가 기억하는 빨간 말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쌍두마차를 끄는 장난감 말 중 하나인데, 마차도 없고 다른 말도 없어서 고모는 엄마에게 ‘왜 이것만 있어?’ 하고 물어보았다고 한다. 어쨌든 고모는 빨간 말을 갖고 놀다 잠이 들었는데, 새벽에 갑자기 고열이 나면서 헛소리를 하고 누구와 말하는 것처럼 종알종알하다 다시 쓰러지고, 다시 벌떡 일어나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고 한다. 놀란 어머니는 날이 새자 고모를 업고 병원에 갔는데 의사도 뚜렷한 병명을 모르겠다며 약만 지어주었다. 그런데 약을 먹어도 고열이 떨어지지 않아 하루 꼬박 사경을 헤맸다고 하는데,  무슨 일인지 나도 슬슬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주인 여자는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인 듯 옆에서 열심히 추임새를 넣고 있었다. 딸은 침을 꼴깍 삼키며 다음 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초월적 존재를 믿기에 무슨 일인가 벌어질 것이란  예감으로 길게 누웠던 몸을 동그랗게 말고 눈을 크게 뜨며 이야기를 기다렸다.

     

“이상하게 생각한 엄마는 오빠를 시켜 빨간 말을 변소에 갖다 버리라고 했어.”

“변소요? 왜 하필 거기죠?”

“예부터 흉물은 변소에 버려야 한다나 봐. 그런데 오빠가 무섭다고 해서 엄마가 변소 뒤에 던져 버렸대 그때 내가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더니 ‘내 빨간 말’ 하더니 기절했대. 그후 희한하게 병이 씻은 듯이 나았어.

“그러니깐 결국 뭐예요?”

“잘 모르겠지만 일종에 저주물  아닐까?'예부터 버려진 물건은  함부로 주워오면 안 된다는 말이 있어.”

 ''숙종 때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저주하는 데 사용했던 짚으로 만든 인형 같은 거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짱뚱이 시리즈'에 나오는 다래끼 퇴치 방법처럼 누군가 자신의 병을 가져가면 낫는 다고 생각하고 물건에 주문을 걸었다던지.''

''엄마 ! 그만해요. 등골이 오싹해져요.''

 ''더운데 잘 됐지 뭐.'' 고모가 웃으며 말했다.

 ''지나고 나니 웃을 수 있지만 당시는 정알 무서웠겠어요. 그러고 보면  세상에는 불가사의한 일들이 많은 것 같아요.''

주인 여자의 말에 순간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물론이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란  말이야.'
나는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창문 쪽으로 슬슬 걸어갔다.  더위와 상관 없이 해가 기우는 모습은 너무 근사했다. 무서운 이야기로  더위를 식힐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비웃듯 작열하던 태양이 휴식을 취하러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진짜 무서운 것은  태양의 분노, 살인 더위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처럼 가족이 모여서  맛있는 것도 먹고, 도란도란 담소도 나누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면 엔돌핀이 분수처럼 솟구쳐 그깟 더위쯤은 물리칠 수 있을 것이. 나는 허공을 향해 근엄하게 소리쳤다.
'더위 너 물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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