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못 잤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려 잠을 설친 까닭도 있지만, 며칠 째 계속되는 두통 때문이기도 했다. 얼마 전 이사 온 임대아파트 뒤로 작으나마 산이라고 불렸을 곳은 거의 허물어져 여기저기 흙무덤을 이루고 있었다. 아직 진행 중인 아파트 공사가 무슨 이유인지 중단되어 포클레인과 공사장비가 방치되어 뒹굴고 있었다. 황폐하고 을씨년스러운 공사장 풍경너머 미처 뽑히지 않은 몇 그루의 나무가 마치 보란 듯이 딱 버티고 서있었다.
작은 동네에 내과 병원이 생겼을 때 사람들은 여의사를 두고 쑥덕쑥덕 말이 많았다. 젊고 예쁜 그녀가 외진 마을에 들어온 것은 필시 무슨 사연이 있을 거라며 가십거리에 열을 올리곤 했다. 하지만 여의사는 보기보다 강한 듯했다. 사람들의 근거 없는 소문에 마음이 상했을 텐데도 떠나지 않고 오랫동안 병원을 운영하자, 사람들의 관심도 시들해졌다. 나는 그녀를 대할 때마다 다른 사람의 병을 치료해주는 그녀가 정작 자신의 아픔은 방치하고 있지나 않은지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안색을 살피는 부질없는 짓을 하곤 했다. 왠지 모르게 그녀의 아픔이 전해지는 듯했다.
내가 두통이 심하고 자다가 자주 가위에 눌린다는 증세를 호소하자, 그녀는 걱정이 있거나 불안하면 그럴 수 있다며 약을 처방해 주었다. 허브차를 마시면 수면에 도움이 된다는 친절한 말을 덧붙이며.
며칠 전 대학교 후배를 만났다. 그녀는 모 신문사 편집장으로 있다가 돌연 사직하고 글을 쓴다며 사라졌다가 최근 연락을 해 왔다. 그녀는 작은 얼굴에 비해 눈이 유난히 컸다. 예전엔 그녀의 눈이 맑은 호수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녀의 큰 눈은 그 언저리가 검게 그늘져 마치 판다의 눈 같았다. 문득 과거의 기억이란 현재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글은 잘 써져?”
“갑자기 시간이 많아지니 지나간 시간들이 자꾸 생각나고, 왜 그렇게 후회되는 것이 많은지…”
“기억나는 게 많으면 쓸 거리도 많으니 좋지 뭐.”
“선배! 우리가 창작을 한다며 동아리 만들고, 문학과 삶을 이야기 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시간이 많이 흘렀네요. 그땐 우리 모두 참 순수하고 열정도 가득했는데…”
“그 시간들이 무의미하진 않았을 거야.”
“선배, 언젠가 취중진담으로 자신에 대해 얘기 한 적이 있었죠?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고등학교 출신이고, 보육원에서 자란 것이 부끄럽지 않다고…”
“내가 그런 적이 있던가?”
“그런 선배가 무척 솔직하고 당당해 보였어요.”
“……”
“얼마 전 모 잡지에 실린 선배의 글을 읽었어요. 아마 기억에 관한 담론이었죠? ‘기억은 그럴 듯해 보이는 자기 합리화’라는 구절이 인상적이었어요.”
“그건 사람들은 보통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려는 심리가 있다는 의미였어.”
“그렇죠! 더 미화해서 기억하지 않으면 다행이에요. 전부터 느꼈지만 선배 글은 뭐랄까 삶의 아픔이 느껴져요. 그리고 자신만의 세계가 너무 견고해 범접하기 어려운 뭔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튼 선배의 감성은 독특해서 가끔 부러울 때가 있어요. 그런데 선배! 결정체 자체도 아름답지만 그것이 쓸모 있게 용해될 때 더 가치 있는 무언가로 창조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선배나 나나 무언가를 쓰기 위해선 무엇보다 자신에게 진실해야…”
문창과 후배의 말이 돌멩이가 돼 잔잔한 수면에 파문을 일으키듯 마음을 흔들었다. 결정체, 용해되지 못하고 견고하게 나를 싸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솔직히 풀어내지 못한 과거가 있었나? 기억의 합리화로 숨기려는 것이 무엇인가? 아픈 과거로부터 도망치려는 비굴한 나의 모습을 후배에게 들켜버린 것 같아 부끄러웠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치 동면에서 깨어난 짐승처럼 온 몸과 정신이 무엇을 향해 꿈틀대며 요동치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실타래처럼 엉켜버린 머릿속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열다섯 살 이전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 나는 보육원에 처음 들어갈 때 가져갔던 보따리를 생각했다. 장 깊은 곳에 처박아둔 다시는 보고 싶지 않던 그 옷을 꺼낸다. 언니의 분홍색 원피스, 피투성이가 된 옷을 벗고 초라한 장롱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꺼낸 이 옷을 입고 보육원에 들어갔었다. 기억의 조각들이 다시 맞춰지고 있었다. 어둠의 기억이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빨리 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나는 누구일까? 어디서 왔을까?’ 늘 스스로에게 묻는 말이다. 어릴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말은 작은 아버지로부터 들었다. 잠시 작은 아버지 집에 머무르기 전에는 엄마 쪽 친척 집에서 살았다. 그들이 누구인지 엄마는 어떤 분인지 친절히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단지 나를 바라보던 싸늘하고 그늘진 눈빛만 남아 있을 뿐, 어릴 적 기억은 썩은 사과를 도려낸 자리처럼 텅 비어있다.
오월 하얀 아카시아가 만발한 작은 산을 배경으로 널찍한 황금빛 들판이 펼쳐진 작은 마을, 기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변두리 동네, 파란 대문 집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냄새나는 아이를 거둬 준 것은 과부 아줌마였다. 아줌마는 나를 순둥이라고 불렀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시키는 일만 묵묵히 했으니까.
나는 나이도 정확히 모르는 채 낯선 집에서 몇 년을 살게 되었다. 이 집에는 청각 장애인 할아버지와 그의 딸인 아줌마, 할아버지 아들이 낳은 남매가 있었다. 아들은 재혼해서 미국으로 갔다는 사실을 후에 알게 되었다. 딸은 남편과 사별 후 친정에서 살고 있었다. 나는 진짜 가족도 되지 못한 채 그 집에서 일을 하면서 더부살이를 했다. 할아버지와 고모는 수화로 늘 다투었는데, 아마 남매 때문인 것 같았다. 남매, 그들도 따지고 보면 나처럼 부모에게 버림받은 자식들이다. 남매의 엄마는 아이들이 어릴 때 집을 나가서 행방을 모른다고 했다. 풍문엔 재혼해서 아이를 낳고 산다고도 했다.
이제 꽁꽁 싸놓았던 기억의 보따리를 풀어야 한다. 그 집 식구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어 준 사람들이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지병으로 돌아가시고 아줌마가 집을 나가면서 어른들로 인해 그나마 유지됐던 불안한 울타리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우물처럼 깊은 심연으로 끝없이 추락하던 집을 기억한다. 고통스럽게 일그러지던 언니의 표정, 오빠의 음흉한 낯빛이 되살아났다. 언니가 고등학교를 막 졸업했던 시기, 나와 언니의 나이는 대충 다섯 살 차이가 날 것이라 짐작한다. 아니 실제 그보다 더 차이가 나지 않을 수도 있다. 언니도 나도 달거리를 하고 있었으니까.
그 집으로 돌아간다. 내가 덩그러니 버려졌던 그날처럼 운명은 다시 오월의 그 집으로 나를 내동댕이쳤다. 어둠 속에서도 하얀 이빨을 드러내고 숨 막히게 뿜어대던 아카시아 향기, 어둡고 습한 방 안의 쾌쾌한 땀 냄새에 질식할 것 같았던 그 날 밤, 모든 것이 달라졌다.
언니는 소리를 질렀다.
“난 집을 나갈 거야.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어. 이 집은 희망이 없어. 가족은 나에게 상처만 줬어. 난 이집을 나가서 새로 시작할 거야. 그래 더 이상 미련 같은 건 없어.”
“언니, 제발 그러지마! 난 어떻게 해 더 이상 버림받기 싫어.”
“뭐? 버림받기 싫다고? 하! 너무 우스워 눈물이 날 지경이다. 넌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존재야. 너나 나나…, 버림 따윈 잊어버려, 버림도 사치야. 알겠어? 이 가엾은 것아.”
난생 처음 복받치는 감정이 무엇인지 경험했다. 망치로 가슴을 때리는 아픔을, 뼈를 깎는 처절한 슬픔을 느꼈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온 구멍을 타고 흘렀다. 순간 나는 고통과 알 수 없는 희열을 동시에 느꼈다. 깊은 좌절과 미움, 분노, 애증의 온갖 아픔의 감정은 오히려 카타르시스를 일으키며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을 북돋우고 있었다. 이처럼 풍부하고 모순된 감정이 내 안에 숨쉬고 있었음을. 그리하여 내가 살아있음을 강렬히 느꼈다.
언니는 이런 나의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백치 같이 아무런 감정도 느낌도 표현할 줄 몰랐던 순둥이의 내면에 이처럼 풍부하고 광적인 감정이 내재돼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순둥아! 진정하고 내 말 좀 들어 봐, 난 여기서 살 수 없어.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과 다른 곳으로 가서 살 거야. 생활이 안정되면 널 데리러 올게. 오빠에겐 비밀로 해 줘.”
“언니!”
“그리고, 너도 오빠를 피하는 게 좋을 거야. 왜냐하면, 오빤 너를,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거든.”
이집 손자, 오빠란 사람은 무서운 어른이나 다름없었다. 언제나 그랬다. 학생일 때도 어른이 하는 짓이란 다 하고 다녔다. 할아버지도 고모도 통제할 수 없었다. 폭력을 휘두를 때마다 자신이 부모가 없어서 망나니가 됐다고 말했다.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라고 자신을 경멸했다.
“언니를 따라가고 싶어. 아무도 없는 이집에서 어떻게 살아! 오빠가 무서워. 언니 제발 날 데려가 줘. 무슨 일이라도 할 게. 이제껏 그랬던 것처럼 언니 옷도 빨아주고, 밥도 하고 청소도 할 게 제발 날 버리지만 말아 줘.”
“나도 어쩔 수 없단 말이야. 구차하게 굴지 말고 너도 네 갈 길 알아서 가. 어차피 우린 애초 남이었잖아.”
언니가 떠나려던 날, 밤안개가 자욱했다. 축축한 습기와 때 이른 무더위로 모든 생명이 밑으로 침잠하여 죽음처럼 고요한 적막만이 감돌았다. 버려진 폐허와 다름없이 어두컴컴하고 곰팡내 나는, 사람의 온기가 사라진 집 안에서 운명을 저주하면서 나를 버리고 있었다. 언니가 사라지는 순간 나도 사라지리라. 자기 멸시와 연민이 뒤범벅이 된 채 나는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날카롭고 찬 것이 손목을 스쳤다. 순간 삶이란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것인지, 삶의 비밀을 알 것만 같았다. 갖지 못할수록 세상은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거라고 누군가 속삭이고 있었다.
매혹적인 환상이 온 몸을 짓누르며 손에 힘이 가해지는 순간 인기척이 났다. 거대한 그림자가 나를 덮쳤다. 나는 그 힘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죽음의 그림자가 나의 목을 조르는 순간 격렬한 다툼이 있었고 짧은 비명도 들렸다. 묵직한 것이 가슴을 짓눌렀다. 그것을 떨치려 몸을 뒤척이자 손에 미지근하고 끈적끈적한 액체가 만져졌다. 그것은 비릿한 냄새를 풍기며 내 얼굴을 적셨다. 온 몸에 힘이 빠지며 깊은 땅 속으로 꺼져가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기절을 했던 것 같다. 한 동안 기억상실 증후군에 시달렸다.
이제 머릿속 시커먼 우물 안에 웅크리고 있는 그것을 꺼내야 한다. 틈만 나면 튀어나와 온 머릿속을 휘젓고 다니며 고통을 주는 그것과 마주봐야 한다. 두렵고 냉혹한 진실과 대면하지 않으면 이 고통 속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눈을 떠보니 언니가 내 위에 있었다. 피를 흘리며 꺼져가는 파리한 생명이 나를 보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뇌리에 어떤 생각이 스쳤다. ‘언니가 가지 않았어. 나를 버리지 않았어.’
안개가 걷히고 희미한 달빛이 방안을 어슴푸레 비쳐주고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서슬 퍼런 칼이 번쩍이고 있었다. 나는 죽음과 삶 사이에 가로놓인 깊고 어두운 공허를 보았다. 그것이 무엇이었을까?
언니는 오빠가 나를 덮치는 것을 막아 주고 대신 변을 당했다. 언니는 내가 자신의 모습을 닮아서 그 아픔을 두고 도저히 갈 수 없었나 보다. 그 후 오빠는 자수를 하고 법의 심판을 받았다. 나는 사회단체에서 운영하는 보육시설에 맡겨졌다. 그동안 나는 과거를 잊고 살았다. 아니 의도적으로 기억을 지어왔는지도 모르겠다. 그곳에서 앞만 보고 살았으니 과거는 없는 셈이었다.
나는 주변에서 말하는 책벌레가 되었다. 책이 현실의 도피처가 되었으며, 삶을 지탱하고 이끌어주는 등불이 되었다. 현재를 긍정하게 만들었고, 미래를 꿈꾸게 해주었으며, 삶의 의미를 부여해주었다. 나의 외로움을 채워주었고 사물의 이치를 깨닫게 해 주었으며 생각할 수 있는 힘을 키워주었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그 집에서의 기억을 깊은 우물 속에 빠뜨리고 뚜껑을 닫아 밀봉해 버렸다. 그러나 잊고 싶은 기억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생생해지는 법이다. 그동안 깊고 은밀한 내면은 죄책감과 환멸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결코 잊힌 게 아니었다.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다른 것으로 포장하고, 급기야 완전히 잊고자 했기에, 반발하는 또 하나의 마음이 자꾸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두통으로, 시도 때도 없이 엄습하는 아픔과 슬픔으로.
이제 나 자신을 용서해야겠다. 그것이 언니가 바라는 일이고, 그녀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는 길이라 감히 생각한다. 어둠의 긴 터널을 지나보니 밝음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끼게 된다. 결코 잊어버릴 수 없는 일은 마음 깊이 간직해야 한다. 그것은 되돌릴 수 없는 나의 일부이기에, 비록 처절한 아픔과 슬픔이어도 견뎌야 한다. 견디다보면 고통도 익숙해지리라. 나는 창문을 열었다. 맑고 푸른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고 있으니 뜨거운 것이 올라 와 가슴을 촉촉이 적신다. 그 밤 참으로 오랜만에 푸근한 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