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한보라 Oct 27. 2024

사랑은 자주 내 약점이 된다

대도시의 사랑법을 보고 왔다

화제의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을 보고 왔다. 어여쁜 배우 김고은(구재희 역)님과 지나치게 잘생긴 노상현(장흥수 역)님의 잔잔한 이 사랑 얘기를 보면서 나의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재희와 흥수는 서로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하는 친구로서 사랑하고 있었으니깐, 다양한 사랑의 형태에 대해서 다룬 이 영화가 당연히 마음이 갈 수밖에 없다. 꼭 모든 사랑이 에로스로 귀결될 필요는 없으니깐, 몸도 주지 않는데 오래 이어지는 이 사랑이 어떻게 보면 더욱 완벽한 형태의 사랑이 아니냐며 :D


처음에 아이돌 덕질을 시작할 때 엄청난 흥분과 아드레날린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신을 못 차리며 나의 마음을 정의하기 어려웠었다. 이것이 사랑인지, 이상행동인지, 집착인지, 동경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는 뜻이다. 나는 남자를 사랑하고 있는가, 아티스트를 동경하고 있는 것일까, 아님 진짜 친구와 같은 사람과 친해지고 싶은 것인가? 셋 다 뾰족하게 맞지도 않았지만 단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나는 내 최애를 이성으로 하고, 가수로 응원하고, 친구로 함께하고 싶었다.


뾰족하게 정리는 못해도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사랑이라고 정의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존재조차 모르는 최애의 행복을, 안녕과 성공을 매일매일 진심으로 빌고 있었다. 그리고 화면 너머 최애의 모습은 나에게 즉각적인 행복을 주는데, 이 것을 사랑이라고 설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애에게 던지는 허공 속의 말, 혼자 하는 생각이라도 늘 조심하려고 노력했다. 나의 사랑이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될 수도 있으니깐, 내가 생각한 그의 모습이 틀이 되어 그에게는 족쇄가 될 수도 있으니깐, 그렇게 조심스럽게 하려고 하는 모습조차 사랑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네가 너인 게 어떻게 네 약점이 될 수 있어
(대도시의 사랑법)


그러나 실제로 나의 약점은 사실 나이기 때문에 생겨나지 않는가. 나는 누군가를 열렬히, 속절없이 사랑해 버리고 깊이 빠져버리는 것이 나의 최대 약점이라고 자주 생각한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을이 되어버리는 모습에, 그 사람 앞에서는 한 마디도 하지 못하는 바보 같은 모습 때문에, 내가 더욱더 나의 모습으로 살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되어버리는 것 때문에 사랑에 빠진 내 모습을 좋아하기 어렵다.


나이 서른이 넘고 아이돌이나 좋아하는 모습이라니, 웬만하면 들키고 싶지 않은 모습들과 내 욕심의 깊은 곳까지 보게 되었다. 이왕이면 실제 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가상의 인물에 가까운 연예인을 좋아해서 자주 보지도, 대화를 나누지도 못하고, 그저 주면 주는 대로 감사하면서 사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게 나인 걸 어떻게 해. 나는 당당해지기까지는 못하더라도, 인정 해주려고 했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중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질척하고 끈질기게 카라멜처럼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게 그 앞과 뒤 위와 아래 모두를 알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 성격 그대로, 그게 나의 장점은 아니고 약점이더라도 그냥 내 모습이라고 말이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모습을 받아들여줄 수밖에 없었다.


집착이 사랑이 아니라면 난 한 번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
(대도시의 사랑법)


그래서 나는 저 문장이 나왔을 때 무엇인가를 들킨 것처럼 뜨끔했다. 나에게 "집착"은 절대로 들키고 싶지 않은, 사랑할 때 나만의 작은 비밀이다. 나는 집착의 추악한 모습을 아주 잘 안다. 실제 연인에게도 넌 집착이 너무 심하다고 듣기도 했었다. 집착은 두려움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면모를 알아야만 나의 미래를 대비할 수 있으니깐, 그가 나에게 어떠한 형식으로 상처를 줄지 알아야지만 내가 대처할 수 있으니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에서 생겨나는 집착이지 않을까?


집착을 좋게 포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집착은 지나치면 사랑하는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이다. 쉽게 사람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형태의 집착이라면 사람을 질리게도 하고 지쳐 나가떨어지게 하는 행동이라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문장이 나의 마음에 깊이 들어온 이유는, 나의 모든 사랑에 집착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들키지 않고 싶지만 늘 머리를 쳐드는 집착 때문에 미리 양해를 구하는 문장처럼 '사실 내 사랑은 집착도 포함되어 있어'하고 안내서처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만든 문장이었다.  


'사랑법'이라는 것이 어디겠는가, 그런 거 몰라도 인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각가지의 형태로 사랑을 행한다. 좋은 사랑인지, 건강한 사랑인지, 불안정한 사랑인지, 나쁜 사랑인지는 그 이후의 문제니, 내가 느끼는 사랑을 정확하게 건강하게 그리고 뒤끝 없이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서 나는 매일 고민하고 또 좀 상처받기도 하고, 또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나기도 한다.


때론 내가 쓰는 이 모든 글들이, 하는 모든 말들이 자주 '사랑한다'는 말을 풀어내서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결국에는 닿지 않을 말들을 수 천 개의 단어와 문장으로 아주 소극적인 형태의 표현으로 너에게 닿을 수 있을 때까지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도, 오늘도 대도시의 사랑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대도시의 사랑... 중 :D ing.

매거진의 이전글 짝사랑도 사랑이라고 해주신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