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가는 과정. 우연인가 필연인가?
브런치 작가가 된 것은 우연이었다.
아니, 필연인가? 내가 하는 모든 행동들이, 내가 겪게 되는 모든 것들이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나의 내면 깊숙이 깃든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소망들이 신의 인도나 계획 하에 펼쳐지거나, 우주의 기운이 내게 손을 뻗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말도 안 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는 계속 있었다. 감정 표현이 서툴고 말도 재미없게 하는 나는, 나의 생각이나 느낌, 나의 일상이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말로도 잘 풀어내지 못한다. 머릿속에는 여러 잡다한 질문, 생각, 감정 등이 가득하지만 정리가 잘 되지 않아 서로 뒤섞이고 얽혀 머리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나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이해하고, 풀어보고 싶은 마음으로, 심리 서적도 찾아보고, 온라인 심리 세션도 참여하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려 보았지만, 만족스럽지 않게 얕게 짧게 끝나곤 했다.
글로 정리하여 풀어내거나 떨쳐버리고 싶은 마음은 줄곧 있었지만, 부족한 문장력으로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기가 힘겹고 불편해서 그랬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글쓰기의 우연한 기회는 감정의 밑바닥까지 내쳐진 작년 어느 아침에서 비롯되었다.
침대에서 눈을 떴는데 가슴이 턱 하고 막히는 것이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가슴을 치며 숨통을 겨우 트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호르몬의 농간인가? 감정이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치던 여러 나날들 중, 제일 밑바닥으로 치달었던 아침이었다. 우울, 슬픔, 불안, 도무지 어떤 감정인지 형용할 수조차 없다.
‘뇌는 현실과 상상을 구별하지 못하는 바보다. 뇌는 착각 덩어리다.’
나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때마다 흔히 그랬듯이, 머리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며 ‘나는 괜찮다, 평온하다’ 온갖 상상으로 떨쳐 버리려고 했다.
그러나, 안 먹혔다. 상상이 먹히지 않을 때가 점점 많아지는 나날들이다. 안 그래도 약한 나의 의지력을 호르몬이, 감정이 자꾸 압도해 버린다.
이렇게 집에 있다가는 큰일 날 것 같았다. 재택을 계획했지만, 바로 회사로 출근하기로 했다.
경부 고속도로를 한참 동안 달리자, 감정이 어느 정도 삭혔다. 나에게 운전은 마음이 복잡할 때 걷는 것과 같은 유사한 효과가 있다.
여러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것은 중년의 위기인가, 갱년기인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극복할까? 그 어두운 터널을 나오는 것은 결국 혼자만의 몫인가?
갱년기를 한자로 풀면 更年期. 새로운 인생을 사는 시기, 인생이 바뀌는 시기라고들 한다. 또한, 중년의 위기는 의미 있는 삶으로 가는 여정의 시작이라고도 한다.
그래 알겠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중년 여성들이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다고 생각되는 시점이 왔을 때, 이러한 막막하고 불안하고 고독한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내면의 힘을 길러주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이러한 중년의 위기를 겪는 여성들을 가이드해 주는 프로그램들이 없다.
내가 직접 만들어 볼까 얼핏 생각이 스쳤다.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진 4050 여성들과 다양한 영역에서 교류하고 인생 후반전을 꿈꿀 수 있도록 해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나도 참여하며 같이 극복해 가면 어떠할까?
그리 공상만 하다 몇 날 며칠이 흘렀다 (공상만으로 힐링이 되는 순간도 있었다). 그러다 여전히 일을 하고 있는 4050으로 구성된 대학원 동기들과의 모임에서 어쩌다 얘기가 나왔고, 어쩌다 격하게 공감한 동기 몇 명이서 인생 후반전을 준비하는 4050 여성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보자고 했다. 주변에서 이러한 고민을 하는 중년 커리어 여성들이 의외로 많다고 했다.
각자 밥벌이 본업도 있고 그 무엇인가가 무엇이 될지는 아직 명확하지는 않지만, 일단 브런치 작가로 등단하여, 커리어 여성으로서 지금까지 일, 사회생활, 가족, 일상생활 등 경험하고 느끼는 바들을 글로 써내려 가보기로 했다.
글을 잘 쓸 수 있을지, 꾸준하게 쓸 수 있을지 두려움이 있지만, 일단 도전해 보기로 했다.
이때 함께 아니면 언제 해볼 수 있겠나 싶어 용기를 내기로 했다. 50대 인생의 전환기에서, 나의 지난 과거를 되돌아보고 현재를 들여다보며 나를 토닥거리고, 미래의 새로운 나를 반겨보기로 했다.
처음 세 글은 나도 놀라울 정도로 술술 잘 써내려 갔다. 오랫동안 머릿속에 맴돌았던 이야기여서 그런가?
작성된 세 글을 다듬어서 브런치에 신청하였고, 드디어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내 글이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리 형편없지는 않구나 조금 안도가 되었다. 누군가로부터 내 글을 인정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기쁜 마음에 오두방정 떠는 나에게, 남편은 필력보다는 진솔하게 표현하여 좋게 봐준 것 같다고 ‘굳이’ 말해주었다. 뭐, 그러면 어때?
브런치 작가가 된 후에 걱정이 더 많아졌다.
이야기 소재에 대한 고민이 매 순간 이어진다. 글을 읽다 어느 단어에 꽂히면, 또는 운전하거나 차를 타고 가다 갑자기 어떤 생각이 불현듯 나면, 메모장이나 카톡 ‘나와의 채팅’에 급히 적거나 음성문자로 남겼다. 당시에는 뭔가 근사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았지만, 막상 쓰려다 보면 어떻게 시작하고 흐름을 이어갈지 막막했다 (아직도 쉽지 않은 과정이다). 그나마, 첫 문장이 그럴싸하게 나오면 풀어나가기가 조금은 수월했다.
매주 글을 쓸 수 있을지도 걱정된다. 그 주에 조금이나마 생각이 정리되어 잘 써질 것 같은 글을 먼저 쓰다 보니, 글 발행 순서도 시간의 흐름에 맞지 않게 뒤죽박죽이 되어 간다.
무엇보다 어느 선까지 나의 내면을, 나의 인생을 드러내야 할지 걱정이 앞선다. 퍼스널 바운더리를 중요하게 여기던 내가 나에 대한 글을 발행한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철저한 익명 작가로 참여하고자 했지만, 세 명의 동기들이 매거진 형식으로 같이 쓰다 보니, 모두가 나와 같은 생각이 아닌 듯하고 동기들과 네트워크도 겹치며 (약한 네트워크에 나를 드러내는 것은 더욱 불편하다), 나 또한 어쩌다 직장동료에게 브런치 작가 활동을 알리게 되면서, 점차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생각에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가 점점 불편해져 간다.
나는 밝은 미래를 위해 글을 쓰기로 했지만, 나의 후회스럽거나 아쉬웠던 과거도 불가피하게 다루어진다 (나의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도 미안해진다). 이는, 나의 과거를 잘 정리, 마무리하여, 현재를 보다 잘 이해하고 미래를 보다 발전적으로 준비할 수 있게 하는 과정이다. 가끔은 그 당시의 부정적인 감정이 떠올려지면서 힘들어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연으로 시작했지만 필연으로 만들기 위한 나만의 글 쓰기 도전과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나를 찾아가는 하나의 과정이므로!
사진: Haynes King '편지 쓰는 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