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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 이야기] 걱정 마, 너랑 안 살아

조용히 내려놓는 법을 배운다.

by 코지모

“진심이야?”


“정말 같이 살 거야?”


아들이 기겁하며 계속 물어본다.


아들이 결혼하면 손주 봐주며 같이 살겠다고 남편이 말한 것이 발단이었다. 평상시에 허투루 말하지 않는 아빠가 같이 살겠다고 하니 진짜인가 싶었나 보다. 그것도 ‘곁에서’가 아닌 ‘같이’ 라니?


아니 그래도, 동네 치킨집에서 치맥 하며 이 얘기 저 얘기하는 와중에 흘러가듯 나온 말인데 이리도 기겁할 일인가?


남편은 남모를 미소만 띠고 답을 하지 않았고, 그 행동에 나도 놀라웠다. 흘러가듯 나온 말이 아닌가? 모전자전이 따로 없네. 그리 겪고도. 아님, 나만 겪었던 건가?


“걱정 마, 너랑 안 살 거야. 나도 싫어.”


그리고 물어봤다. “그렇게도 싫었어?”


“응, 중간에서 힘들었어. 숨 막혔어, 어떤 때는.” 아들이 닭다리를 뜯으며 담담하게 말한다.


내게는 담담하게 들리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아들에게 고부 갈등으로 넌 어땠냐고 물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아들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이 든다. 태어난 지 몇 개월을 제외하곤 줄곧 할머니와 함께 살아왔으니, 평생을 고부 갈등 한가운데서 살아온 셈이다.

아직 먼 이야기일 텐데도, 그런 걱정을 미리 꺼내놓는 아들을 보면 마음이 짠하다. 얼마나 많은 장면들을 보고 자랐기에 저럴까 싶어, 이해도 되고 안쓰럽고, 무엇보다 미안하다.


나도 애써 조심하며 살았다고 하지만, 20년 넘는 세월 동안, 24시간을 한 공간에서 부대끼며 살면서, 매 순간 피어오르는 갈등의 표정을 완전히 숨기며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나는 수련자도, 성인도 아닌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이니까.




결혼 후 지금까지, 행복하지 않았던 날들의 근원에는 언제나 시어머니가 있었다. 결혼 초기 몇 해를 제외하곤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살아야 했기에, 갈등에서 터져 나오는 감정의 찌꺼기들을 해소할 나만의 공간도, 방법도 없었다. 나는 그저 그것들을 내 안에 쌓아가기만 했다.


드라마에서 보는 악독한 시어머니는 아니었다. 하지만 강한 자기애와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확신으로, 언제나 자신의 감정, 자신의 상황, 자신의 삶만이 중요했다. 타인을 향한 배려나 존중은 없었다. 결혼 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유형의 인간상이었다. 처음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도 몰라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그대로 상처가 되었다.


결혼 후 첫 10년 동안은 '하나뿐인 아들과 며느리를 위한 어떤 큰 뜻이 있으시겠지' 하는 마음으로, 좋게 받아들이려 애썼다.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그 '큰 뜻'도 존재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고부 갈등의 내막을 잘 아는 지인들은 그것이 ‘지능적인 괴롭힘’이라고 말했다.


결혼 생활을 이어가며 나는 점점 무표정한 얼굴, 울상으로 바뀌어 갔다. 시어머니에 대한 실망과 서운함은 차츰 원망과 미움, 신세한탄으로 바뀌었고, 결국 그것은 독처럼 내 마음을 병들게 했고, 몸까지도 해치게 되었다.




오십이 넘어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고부 갈등은 며느리만이 감당해야 하는, 끝나지 않은 고통의 숙제이다. 시어머니는 일도의 타격도 없다. 적어도 내 경우는 그랬다.


좋은 관계는 쌍방의 노력이 필요하다. 아무리 신식이라 불리는 시어머니라 해도 며느리에게 기대하는 전통적인 역할이나 아들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 한쪽의 일방적 수용만으로는 세월이 많이 흘렀다고 해서 나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관계의 역학은 변한다. 며느리는 더 이상 참지 않는다.


갈등이 오래 지속되면, 어느 순간부터는 누가 갈등의 유발자이며 누가 더 잘못했는지 따지는 것조차 무의미해진다. 시간의 한 조각만 잘라보면 그 경계가 흐려진다. 따지고 드는 것도 피로하고, 변명조차 구차해진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누군가를 미워할 때 가장 큰 상처를 입는 건 결국 나 자신이라는 걸. 미움의 날카로운 화살은 상대를 겨냥하지만, 결국 나에게 돌아와 깊은 상처로 남는다.


고부 갈등은 상처의 크기와 깊이에 차이가 있을지언정, 결국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까지도 다치게 만든다. 그래서 나 하나만을 위한 선택조차 쉽게 할 수 없다. 갈등의 여파는 생각보다 크고, 때론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이어지기도 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십이 넘어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 어느 순간엔 나 자신을 위해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을. 이유야 어찌 됐든 결정을 미룬다면, 그 책임은 결국 누구에게도 돌릴 수 없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나의 큰 탓이로소이다."

천주교의 기도문을 되뇌며, 마음속에서 조용히 내려놓는 법을 배운다.




배너 이미지: Edvard Munch ‘The Scream (1893)’ | 에드바르트 뭉크 ‘절규 (1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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