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마빌레 Apr 22. 2023

아들아 아프냐, 나도 아프다.

아쉬움과 당연함 사이

“응, 사랑해”


작년 겨울 세찬 바람이 부는 신병 입영날, 부대 입구에서 빡빡머리의 아들이 속삭인다.


나도 사랑하는 우리 아들.


아들의 애절한 ‘사랑’의 대상은 내가 아닌 미국에 있는 여친.




코로나 19 상황으로 입영식 행사는 없었다. 자가차량으로 부대 입영 시에, 부대 입구에서 5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신병만 하차하고 가족은 승차를 유지한 채 돌아서 나와야 한다.


처음 군대 가는 아들 행여나 부족할까 싶어 입영자 지참 품목을 과다하게 챙겨준 관계로 큰 가방이 2개나 되어, 남편한테 부대 입구까지 같이 들고 가주라고 했다. (2주 후에 큰 가방 한 개 반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의 허탈함이란!)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한 번 더 안아주고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급히 차량에서 내려 부대 입구까지 뛰어갔다. 중간 지점에서, 돌아 나오고 있는 남편을 보았고, 저 멀리 부대 입구에서 나를 등지고 있는 아들이 보였다. 뛰어가 아들 앞에 서니 통화하고 있었다.


근데 어라.

눈물이 고여 있네.


아들은 들키기 싫은지 고개를 돌렸다. 나도 모른 척, 얼굴을 보지 않은 채 급히 안아주고 돌아섰다.


괜히 갔나 싶었다. 한 달 후 훈련 수료식에서나 볼 수 있는데, 군대 들어가기 전에 본 마지막 모습이 울먹이는 모습이어서 마음 아팠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남편과 나는 휴가를 내고, 훈련 부대가 있는 지방에 입영일 이틀 전에 내려왔었다. 장거리 운전도 있고, 일찍 내려와서 행여나 미처 챙기지 못한 입영자 지참 품목들도 챙겨주고, 가족만의 오붓하고 편안한 시간을 가지고 싶은 마음도 컸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바람일 뿐, 모든 사람의 마음이 내 마음 같지가 않다. 하물며 자식 마음이란.


내려와 있는 이틀 내내, 군 입대하면 여친과 매일 통화할 수 없다는 갑작스러운 비보에 아들의 기분은 많이 가라앉았다.

하필이면, 아들 기수부터 한 달 동안의 훈련 기간 동안 매일 30분 휴대전화 할 수 있었던 휴대전화 시범 운영이 종료된 것이다. 매주 토요일에만 부대 전화로 10분 통화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변경되었다.

또 하필이면, 입영 이틀 전에 이 사항이 공지되었다.


여친과의 매일 휴대폰 통화를 기대하다가, 어쩌면 한참 동안 통화를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멘붕이 제대로 왔다. 부대의 수신자 부담 전화로 미국 통화는 가능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멘붕에 어쩔 줄 몰라하는 아들을 어이없게 한참 바라보다, 문득 아들의 뇌 구조는 어떠할까 그려보았다.

95% 여친, 4.5% 군대 및 전화. 나머지는 부모? 마지막은 확신이 서지 않는다.  헛헛.


우리 부부는 아들이 아침저녁으로 미국에 있는 여친과 통화해 대는 것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때로는 힘들어하는 아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때로는 부모가 안중에도 없어 보이는 아들을 서운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다, 나의 20대를 떠올려 보았다.

아들의 마음, 뇌 구조가 당연한 것이라 생각됐다.

나 또한 그 나이에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느라, 노느라, 공부하느라, 내 앞에 바쁘게 펼쳐지는 삶을 살아내느라, 부모님을 먼저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20대만이 아니라 그 후 오랫동안까지도, 어쩌면 지금까지도 그랬다.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에, 더욱 마음이 아리고 아쉽다.


그러나 아쉬워한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 사랑은 없다잖아. 당연한 삶의 진리, 싫든 좋든 받아들여야지.


아들아, 사랑도 열심히 해! 응원할게!


커버 사진:

구스타프 클림트 ‘여성의 세 시기 (The Three Ages of Woman)’ 일부

매거진의 이전글 도대체 아들을 어떻게 키우셨나요(a.k.a시어머니아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