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의 착각이야
대여섯 살 위 동네 언니에게 시어머니의 이상적인 역할에 대한 나의 다짐을 말하자, 나만의 착각이자 쓸데없는 다짐이라고 웃었다.
밀레니엄 세대의 시월드 탈출은 이미 시작되었고, 하물며 아들의 Z 세대에서는 기성세대의 시월드 개념을 애초부터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는 계속 높아지고, 능력에 따른 남녀평등도 계속 강조되고 있어, 가정 내 며느리의 위상은 올라가고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도 기존의 상하 관계에서 점차 대등한 관계로 바뀔 것이라고 한다. 아들도 고부 관계에 있어 더 이상 방관자가 아닌, 아내 편을 적극적으로 두둔하는 입장으로 가고 있다.
시어머니들의 인식도 변화되고 있다고 한다. 자식세대에는 기성세대와 같은 시댁으로 인한 고통과 부담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고, 시어머니들도 본인 삶의 질을 우선시하다 보니 본인 삶을 즐기며 살기에도 바쁘다.
지금과 같은 고부갈등을 일으키는 요인들이 없을 것이므로, 고부갈등도 예전 같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정작 아들과 며느리는 지금 같은 시월드에 입성할 생각 조차 하지 않을 텐데, 미리부터 혼자 넘겨짚어 다짐하고 있다고 웃기다고 말한다.
언니 말이 맞다.
먼 훗날의 예비 시어머니인 나의 인식도 달라지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이겠지.
그러고 보니, 직장에서 90년대 이후의 MZ 세대의 시어머니-며느리의 역학 관계에도 이미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MZ 세대 여직원들이 고부 갈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다.
나의 세대에서는 명절이나 주말에 시댁에 가는 것은 육체노동과 아울러 감정노동까지 수반되는 부담스럽고 힘든 날이다 (물론 X 세대에 속한 나의 세대도 50대 중후반 및 이전의 세대와는 강도가 다르지만). 그러한 상황에 처하게 될 때 모두가 안쓰러운 시선으로 위로의 말들을 주고받곤 했다.
요즘 세대는 나의 안타까운 시선을 의아해한다. 그들에게는 명절이나 시댁과의 만남이 그리 싫지만은 않다.
명절에 시댁과 여행을 갔다는 이야기, 캠핑을 같이 갔다는 이야기, 주말에 시댁과 외식을 했다는 이야기 등 시댁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이야기들을 쏟아낸다. 심지어 명절에 시부모님이 여행 가셔서 자유로운 시간을 보냈다고도 한다. 나의 안타까운 시선이 겸연쩍어지고, 부러워지는 순간이다.
시댁과의 만남이 가족 구성원 간 불평등한 구조를 확인하고 경험하는 불편하고 불쾌한 장이 아닌, 가족 간의 친목 및 화합의 장이 되고 있다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부모와 자식 간에 각자의 생활을 이해하고 배려하며 존중한다면, 부모 자식 간에 모일 수 있는 기회는 예전보다는 줄어들더라도 관계는 더욱 돈독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사진: 이만익 '도원 가족도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