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에세이
“거 다 필요 없고… 영양제 좀 하나 맞읍시다.”
진료실 밖 대기실에서 조금 기다리라는 직원 안내를 무시하고 들어온 한 할아버지가 진료석에 털썩 앉더니 대뜸 말했다. 방금 인근 관광 레일 바이크를 타다가 철조각에 베인 중학생의 다리 상처를 봉합한 직후였고, 1번 응급 병상에는 벌에 쏘여 얼굴이 붇고 통증과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중년 남성이 불편감을 호소하며 애타게 추가 처치를 요청했다. 나는 혹여나 그가 혈압이 낮은 응급상황인데 부주의로 인지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어 모니터를 힐끗힐끗 쳐다보느라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오월 말 무렵의 주말 응급실 근무는 짜증의 연속이었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하지만, 한낮에는 달력에 그려진 봄 꽃놀이 사진이 무색하게 보일 정도로 무더웠다. 모든 직원과 환자들이 때 이른 더위로 괴로웠지만 아직 병원의 에어컨 사용은 요원했고, 한창 바쁜 과수원일이나 나들이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외상들, 벌레 물림 및 벌 쏘임 환자는 넘쳐났다. 일교차가 커서 방심하고 창문을 활짝 열고 잔 후 얻은 감기로 고생하는 사람들로 응급실은 북적였다.
이런 바쁜 시기에 응급실 의료진이 가장 못마땅하게 여기는 환자군이 있다. 응급실이라는 단어를 무색하게 만드는, 아무런 의학적 증상 없이 단백질 영양제 수액을 맞기 위해 내원하는 사람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터무니없이 낮은 의료 수가에 허덕이는 시골 응급실의 적자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는 병원의 매출 효자 아이템이기도 하다. 세계를 강타한 감염병 사태가 있기 전까지는 보약처럼 주기적으로 와서 맞는 분도 있었고, 오랜만에 고향을 방문한 자식들이 부모를 위한 효도선물처럼 여기고 내원하는 경우도 많았다. 일하던 병원은 아미노산 함량이 낮은 것부터 높은 것까지 차례로 가격이 3,5,7만 원으로 책정되어 있는데, 아미노산 영양제 수액의 도매 단가를 우연히 알고 나서 그 터무니없는 폭리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의학적으로 냉정하게 말하자면 소화기 관련 문제가 없다면 그 비용으로 맛난 소고기를 사서 맛있게 한 끼 먹는 것이 더 영양가 있고 가성비 높은 선택이라고 생각해왔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앞 환자 기록 및 처방 내리고 진료할게요.” 나는 일부러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진료 컴퓨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이틀 전 병원 사정으로 처방하던 항생제 및 소염진통제 공급처가 갑작스럽게 변경되어 간편하게 수행하던 약속 처방이 무용지물이 되었다. 안 그래도 바쁜데 약을 일일이 약품명 검색해서 처방을 해야 했고, 전자 의무기록 시스템도 이상하게 그날따라 버벅거렸다. 아무리 보아도 응급상황이 아닌 이 할아버지가 진짜 응급환자들 한복판에서 지팡이를 땅에 딱딱딱 규칙적으로 치면서 꼿꼿하게 앉아 당당하게 영양제를 요구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은근슬쩍 화가 치밀었다.
그날 오후 응급실 주임간호사(Charge RN)는 근무 20년 차에 접어든 베테랑 간호사였는데, 그녀는 능력이 정말 뛰어났지만 다소 차갑게 느껴지는 구석이 있었다. 일할 때만큼은 의사를 포함한 직장동료에게도 엄격하고, 환자한테도 무심하고 냉랭한 태도로 대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그녀와 근무할 때는 모두가 긴장했다. 그러던 그녀가 할아버지를 빤히 보더니 갑자기 옆에 쪼르르 다가가서 할아버지 귀에 소곤소곤 말을 걸었다. 할아버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전한 메모에 의하면, 할아버지는 삼만 원짜리 가장 싼 영양제 1개를 원했다. 나는 오히려 이상한 요청이 없어, 안도하며 처방을 넣었다. 의무기록도 간단히 넣었다.
한 시간쯤 흘렀을까? 침상들에 가득 차 있던 환자들 중 입원할 분은 병실로 이동했고, 나머지는 모두 퇴실했다. 수년째 무릎 통증으로 일요일 오후마다 아들과 함께 진통제 주사를 맞기 위해 내원하는 할머니가 마지막 차례로 진료받고 돌아갔다. 휘모리장단으로 응급상황이 펼쳐지다 갑자기 마침표 같은 뿌듯한 평화가 도달하곤 하는 이 역동적인 직업환경은 도저히 적응할 수가 없었다. 당직실에 잠깐 들어가기 전 재원환자 차트를 새로 고침 하였는데, 한 명이 남아있었다. 아까 전 그 영양제를 처방한 할아버지였다. 모니터에서 눈을 들어 병실을 눈으로 훑었는데 남은 환자는 없었다. 나는 옆에서 간호기록을 열심히 정리하고 있는 간호사에게 이 환자의 소재를 묻자, 간호사는 무심하게 위증 병실에 아내가 입원해 있는데, 옆에서 영양제를 맞겠다고 고집해서 위로 보냈다고 했다. 벌써 몇 주째 반복적으로 그렇게 내원한다고 했다.
그 이듬해 이른 봄부터 전 세계를 집어삼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팬더믹 이후에는 감염 통제 때문에 병원 문화 및 규칙이 많이 바뀌었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환자 면회가 특별한 사유 없이는 매우 자유로웠고, 감염관리가 비교적 덜 엄격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무리 단순 영양제 투여일지라도 엄연히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 환자였는데 간호사가 나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올려 보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주임 간호사의 스타일을 아는지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당직실로 들어왔다. 침대에 몸을 던져 잠깐 눈을 붙였다. 그 할아버지는 어련히 알아서 퇴실할 것이다.
얼마쯤 지났을까? 침대 옆 전화기가 울렸다. 병동이었다. 입원해있던 환자가 간병인이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비위관을 스스로 제거해버려서 식사가 불가능해 다시 삽입을 좀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알츠하이머 치매가 있는 분이어서 협조가 잘 되지 않았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수차례의 시도 끝에 성공하였는데, 위생장갑을 집어던지면서 뒷정리를 부탁하고 병실을 나섰는데, 건너편 병실에 아까 영양제를 처방받은 할아버지가 비스듬히 누워 있는 모습을 우연히 보았다.
그 병실의 활짝 열린 창문으로 따뜻한 황금빛 노을이 은은하게 병실 벽을 비추고, 다소 식은 바람이 은은하게 들이치고 있었다. 2인실 병실 한쪽 침대에서 할아버지는 옆으로 비스듬하게 누워 커튼으로 반쯤 가리어진 건너편 병상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내 기척이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물끄러미 돌렸다가, 이내 무심하게 건너편 병상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호기심에 병실 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어떤 할머니 한 분이 반대편 병상에서 산소마스크를 쓰고 눈을 감은 채 깊은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보글보글 거리는 산소공급장치의 장단에 맞추어 바람에 흔들리는, 거대한 은행나무의 푸른 잎들이 바람에 일렁이며 출렁였다. 그 병실의 모습은 마치 하루의 고된 일과를 마치고 등지고 노을 진 항구로 귀환하는 조그마한 낡은 어선 같다고 생각했다. 수십 년간 함께 고기잡이를 해온 시골 노부부의 작은 통통 어선은 이제 마지막 항해를 마무리 짓는 중이었다.
할머니는 몇 주 전 광범위한 급성 뇌경색으로 깊은 잠에 빠졌다. 반평생 함께해왔던 아내의 뇌는 손상이 심해 회복을 기대할 수 없다고 했다. 집에 돌아가고 싶었으나, 그곳에서 가까운 이 시골병원이 그나마 그녀가 집과 가장 가깝게 머무를 수 있는 곳이었다. 몇 주 동안 제대로 된 식사를 못해 야위어가는 몸과 점점 힘겨워지는 그녀의 호흡 앞에서 몸도 성하지 않은 한 할아버지는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그들에게 남은 마지막 시간을, 별 힘도 안나는 것 같은 영양제를 구실 삼아 온전히 함께 하는 것이었다. 이 영양제 면회를 지켜보며 어쩌면 사랑의 본질은 모두를 감동시키는, 거대하고 아름답고 화려한 무엇이 아니라, 흘러가는 세월의 강물에 나란히 손잡고 떠내려가면서, 함께 인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며칠 뒤 다시 출근했을 때 간밤에 그녀가 야속하게도 돌아오지 못할 여행을 할아버지 몰래 훌훌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후 할아버지는 더 이상 가장 영양제 주사를 맞기 위해 병원 응급실을 방문하지 않았다. 수년이 지난 지금도 이따금 다른 환자로 채워진 그 병실 앞을 지날 때마다 그 낡은 통통배 같았던 병실이 생각난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고픈 구실을 만들기 위한 처방이라면, 그 가성비 없는 영양제라도 몇 번이고 기꺼이 다시 처방할 수 있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