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에세이
그는 숨 쉬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다고 했다.
간호사 선생님이 5층 일반병동을 부산하게 돌며 아침 활력징후를 재고 있던 나를 급하게 불렀다. 수년 전 본과 4학년 때 짧은 방학을 틈타 2주간 평일 오전에 가톨릭 복지병원에서 의료 봉사를 하고 있었던 어느 겨울날이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 중인 외국인 할아버지 환자의 영어 발음이 불명확해서 무엇을 말하려는지 모르겠으니, 한번 가서 이야기해보라는 것이었다.
카트를 병동 복도 한편에 밀어놓고 나서 4층 호스피스 병동에 내려가 간호사실 벽에 붙어 있는 입원환자 현황표를 읽어 내렸다. 영어 이름을 쓰고 있는 환자는 한 명이었기에 환자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R 씨. Pancreatic Adenocarcinoma, terminal(췌장암 말기). 간호사실 바로 옆방 3호실이었다.
남향의 1인실인 3호실의 문은 살짝 열려있었다. 문 밖 복도로 새어 나오는 황금색 겨울 아침햇살이 참 따뜻해 보였다. 병실 입구로 다가가니 환자분의 상태가 정말 안 좋은 듯 산소가 공급되는 소리가 가쁘고 거친 숨소리와 혼돈스럽게 섞여 들려왔다. 알코올로 손 소독을 하고 들어가려다가 뭔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열려있는 문에 노크를 했지만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문을 밀고 발걸음을 옮겨서 환자 곁에 다가섰다.
무슨 말을 할까 순간 당황스러웠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아 맞다. 자기소개부터 해야지. 영어로 자기소개를 했다. "한 달 동안 복지병원으로 봉사활동 온 의과대학 4학년 학생입니다. 영어 이름인 토마스로 부르셔도 됩니다."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지만 내 얼굴을 보지 않은 채 허공을 응시했다. 코를 통해 산소를 공급하는 공기방울 소리와 숨이 금방 넘어갈 것 같이 헐떡이는 신음만이 병실 안을 외롭게 맴돌 뿐 그는 아무 말도 없었다. 일분 정도가 흘렀을까. 마침내 그가 입술을 움직였지만 내 귀에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의 입에 왼쪽 귀를 가져다 대며 물었다. 무엇이 가장 불편하신가요? 제가 주치의 선생님께 전해드려서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말기 암환자 특유의 퀴퀴하면서도 불쾌한 입 냄새가 내 코를 확 찔렀지만,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싶었다.
"I... I'm in p.. pain..." 그는 고통스럽다고 희미하게 속삭였다. 그는 가슴으로 손을 천천히 가져다 대었다. "숨 쉬는 것이 고통스러우신가요?" 내가 다시 물었다. 그는 잠시 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두 눈가는 고통스러워 보였지만 눈의 초점은 어느 곳에도 집중하지 못한 채 공허하게 천장 어딘가를 맴돌고 있었다. 환자의 가장 불편한 점을 알아냈다는 점을 알아냈다는데 내심 흡족한 채 서둘러 인사를 하고 나가기 위해 일어나 몸을 돌렸다. 그런데 그 순간. 그의 허무한 시선이 나의 등을 따라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아직 의사도 아닌데 해줄 수 있는 것은 손을 잡아주는 것뿐이지 않을까. 나는 다시 몸을 돌려 손을 내밀고 그의 오른손을 살며시 잡았다.
그는 갑자기 느낀 내 손길에 깜짝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는 이내 눈을 지그시 감으며 마치 남아있는 힘을 다 끌어내듯 내 손을 꽉 쥐었다. 그러고는 왼손을 뻗어 내 얼굴을 향해 당신의 손을 내미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직감이 왔다. 아, 그는 앞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병실 전체를 따뜻하게 데우는 이 찬란한 햇빛을 보지 못한 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서서히 다가오는 차가운 죽음의 그림자를 응시하고 있었던 그의 두려움과 절망, 외로움이 손을 통해 전달되었다. 그는 내 얼굴을 한번 만지더니 고맙다는 속삭임과 함께 울음을 터뜨렸다. 눈물 줄기가 얼굴을 타고 떨어지고 그는 다시 손을 침대 위로 내려놓았다.
간호사 선생님은 인터폰을 들고 주치의 선생님께 연락을 취했으나, 이미 폐로 전이된 다수의 암 때문에 딱히 방법이 없다는 눈치였다. 다시 한번 병동 현황표를 보았다. 환자의 두려움과 외로움, 허무함의 고통을 저렇게 췌장암 말기라는 의학 용어로 써 놓는 것이 차갑다는 생각을 했다. 간호사 선생님이 멍하니 표를 바라보는 나를 보고 그 환자에 대해 조곤조곤 말하기 시작했다.
R 씨는 한국에 파병을 온 미군이었다. 복무 중 만난 한국인 여성과 결혼해서 한국에 정착했는데 그가 나이 들고 병들자 아내는 곁을 떠나서 연락도 닿지 않는다고 했다. 당뇨와 고혈압 관리를 전혀 안 해서 실명한 지 오래되었다고 했다. 그러고서는 한마디 덧붙이시기를 그 많던 미군 월급은 어떻게 탕진했는지 궁금하다고. 그날 나머지 오전 내내, 그리고 오후에 친구를 만나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수다를 떠는 동안에도 R 씨에 대한 생각이 멈추질 않았다.
다음날 아침도 여느 날과 같이 일반병동에서 내 할 일을 마치고 빈 병실의 소파에 앉으니 시계가 열 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문득 R 씨가 생각났다. 그 텅 빈 눈동자가, 내 얼굴에 뻗었던 거친 손이, 병실에 들어오던 따뜻한 햇볕이. 일어나 4층으로 내려가 밤새 특이사항이 없었나 하고 현황표를 훑어 내렸으나 영어 이름으로 된 환자 이름은 없었다. 간호사 선생님이 내 뒤를 지나가며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이른 새벽에 임종하셨어요. 이렇게 빨리 떠나실 줄은 몰랐네요.”
호스피스 병동은 환자가 버스가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삶과 죽음의 환승역 같은 곳이라는 생각을 해왔지만 그의 죽음은 당시 의과대학생이었던 나에게는 너무 갑작스러웠다. 그때 내과 실습시간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모름지기 훌륭한 의사란 자신이 관심 깊게 돌보았던 환자의 죽음 앞에서도 이성의 끈으로 감정을 붙들어 놓아야 한다고. 하지만 봄에 꽃이 피지 말라고 내가 소리친다고 해서 꽃이 피는 것을 막을 수 없듯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이 내 가슴과 머릿속에서 솟아났다. 나는 내 혼란스러운 표정을 혹여 다른 사람에게 보일까 걱정하면서 3호실로 들어갔다.
병실은 어느새 깔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햇볕은 어제처럼 한결 같이 큰 창문을 통해 병실 안을 내리쬐며 흰 벽을 노랗게 물들고 있었다. 시트가 치워진, 검은 매트리스만 덩그러니 남은 침상을 보며 마지막 순간에 우리에게 남는 것은 어찌 보면 저런 날 것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침상에 걸터앉아 창밖의 시리도록 파란 겨울 하늘을 응시하면서 손을 모아 그의 영혼의 안식을 위한 기도를 드렸다.
'오늘 새벽, 여기 누워 어둠 속 죽음을 응시하며 두려움에 떨던 한 영혼이 당신 곁으로 갔습니다. 그가 삶 동안 저지른 잘못 보다는 그가 견뎌야 했던 삶의 무게와 슬픔만을 바라봐주소서. 동시에 제가 만나는 그리고 앞으로 만날 수많은 이의 꿈과 사랑과 행복, 가장 깊은 두려움과 외로움을 이해하고 껴안을 수 있는 의사가 될 수 있도록 하소서. 그리하여 제가 이 세상을 떠날 때에는 이 침상처럼 저의 가장 낮은 모습을 드러내며 홀가분한 마음으로 저런 햇살을 따라 걸어가게 하소서. 아멘.'
기도를 끝내고 나는 잠시 창밖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는 이제 숨을 쉬지 못하는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을까. 그리고 나는 마지막에 과연 누구에게 어떤 모습으로 남을까 하는 의문이 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바람에 자신을 내맡기고 어지럽게 춤추고 있는 저 나뭇가지들을 바라보다 아직 그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자국이 남아있는 침상을 한번 어루만지고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