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쉐만 갔다 오면 두 손은 무겁고 마음은 풍성해지고 지갑에서는 눈물이.
건강한 먹거리, 채식, 식습관에 관심을 갖게 되고 여러 채식 식당과 카페, 베이커리의 소식들을 인스타그램으로 접하면서 마르쉐@라는 장터가 매달 두 번 열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각 지방의 농부들과 요리사들 수공예작가들이 모여서 한 달에 두 번 혜화와 성수에서 장터를 열고 그들이 직접 재배하고 만든 물건과 음식, 농산품을 파는 장터가 마르쉐@이다. 그래서 마르쉐를 알게 된 후에 바로 혜화에서 열리는 4월 8일 장터에 가게 되었다.
마르쉐@는 프랑스어로 시장이라는 뜻의 '마르쉐'와 전치사 at을 @로 표현해서 '어디서나 열리는 시장'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2012년 대학로 혜화에서 처음 마르쉐 장터가 열렸고 그들은 돈과 물건만 교환되는 요즘 시장이나 상점 대신 사람과 관계 그리고 사고파는 행위에서 대화가 있는 시장을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장터에 들어가면 판매자와 소비자가 음식에 관해서 오랫동안 이야기하는 풍경들을 계속 보게 되고 나도 어느 순간 그들처럼 재료와 음식에 대해서 웃으면서 질문하고 대답하고 있게 되는 아주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매달 두 번째 주 일요일에는 혜화 마로니에 공원에서, 네 번째 주 토요일에는 성수 서울숲 언더스탠드 에비뉴에서 장터가 열린다.
마르쉐에서는 농산품뿐만 아니라 음식도 팔고 있기 때문에 음식을 담을 접시가 필요하다. 보통 노점이나 테이크아웃을 할 경우에는 일회용기에 담아주지만 마르쉐에서는 본인의 식기도구를 가지고 오지 않을 경우 접시와 텀블러 식기도구를 대여해서 써야 한다. 일회용품과 쓰레기를 줄이자는 취지에서 만든 규칙인데 마르쉐 장터의 분위기, 취지와도 너무 잘 어울려서 꼭 텀블러와 식기를 가지고 가려고 노력한다. 장터 구석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소비자들이 대여하고 사용 후 반납한 식기들을 설거지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개인 식기와 텀블러 장바구니를 가지고 온 사람들은 안내부스에서 보여주면 마르쉐@ 엽서도 받을 수 있으니 다음에 갈 계획이 있는 사람들은 꼭 작은 락앤락과 텀블러를 가지고 가기를 적극 추천한다.
솔직히 나는 집에서 요리를 자주 해 먹는 편은 아니다. 요리를 좋아하고 즐기고 나름 맛있게도 하는 편인데 평일에는 일과 학교를 병행하고 주말 정도만 집에 있는 생활을 하고 있어서 집 앞에 대형 마트에서 소분된 야채를 구매해서 먹는다. 그리고 혼자 살다 보니까 대량으로 식재료를 사다가 보관하면 반도 못 먹고 상해서 버리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마르쉐에서 식재료는 많이 사지는 않았다. 하지만 직접 농산품을 키우고 재배한 농부들이 본인의 땀과 노력을 판매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 흥미롭기도 했고 본인의 농산품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설명하고 있는 모습이 대단하기도 했다.
현강 자연애 농원에서 삶은 팥을 샀다. 안 그래도 얼마 전부터 시중에 파는 단팥 앙금이 너무 달아서 직접 팥을 사서 앙금을 만들어볼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전에 삶은 팥을 한번 먹어보고 싶었는데 마침 저렴하게 팥을 팔고 계셨다. 팥을 생으로 파니까 사람들이 삶기 귀찮아해서 잘 안 사간다고 요즘은 삶은 팥을 팔고 계신다고 했다. (탁월한 선택이셨어요... 저도 너무 귀찮아요...)
진공 포장된 용기에 삶아진 포슬한 팥들이 들어있었는데 팥 덕후에 팥 러버인 나는 안 살 수가 없었다. 그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부쩍 GMO에 관심도 갖고 있는 편이라 특히 콩이나 팥을 살 때 유전자 변형을 하지 않은 재료로 사려고 노력 중이다. 아직 채식 햇병아리인 나도 조심해서 먹고 있는데 만렙 초고수 채식주의자분들은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할지 판매자분들은 거의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마르쉐에서도 대부분의 농부분들이나 요리사분들이 GMO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꼭 내걸고 있다.
직접 키운 한라봉을 판매하고 계시면서 그 한라봉으로 과일칩과 잼까지 만들어서 함께 판매하고 계셨다. 크래커에 잼을 발라서 마음껏 시식해 볼 수 있게 해주셨는데 대형마트에서 파는 공장 잼이랑은 역시 맛도 재료도 첨가물도 달랐다.
아직까지 후회되는 것은 '자란다'에서 맛본 시금치 페스토를 사지 못한 것이다. 크래커에 발라서 먹어봤는데 정말... 너무 맛있어서 이 페스토로 파스타를 만들어 먹는다면 정말 천상의 맛이 날 것 같았다. 가격대가 생각보다 비싸서 고민하다가 안사면 너무 후회할 것 같은 마음에 다시 돌아와서 당차게 '시금치 페스토 하나 살게요!'를 외쳤지만 고작 10분 사이에 남은 모든 병이 다 팔렸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아... 그냥 고민하지 말걸... 농부분도 너무 안타까워하셨지만 이미 품절인걸 다시 뾰로롱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여기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살까 말까 할 때는 그냥 사자. 저 병 하나에 8000원이라는 꽤 값이 나가는 아이였지만 내가 여기서 8000원을 안 쓴다고 부자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마르쉐@를 다녀오고 집에서까지 찾아본 가게는 아빠맘 두부가 유일했다. 점심으로 뒤에서 소개할 폴브레드에서 난과 카레를 먹고 목이 말라서 아빠맘 두부의 두유를 마셨다. 사실 두유보다는 콩국에 가까운 맛이었는데 정말 너무 깔끔한 콩 맛이어서 깜짝 놀랐다. 나는 두유를 고를 때도 당이 거의 없고 첨가제도 안 들어 있는 두유를 골라 마시다 보니까 입이 꽤 까다로운 편인데 지금까지 먹어본 두유 중에 가장 첨가물이 없는 맛이고 (실제로도 국산콩과 정제수로만 만들었다고 한다.) 콩의 비린맛도 나지 않았다. 아 이제 두유는 아빠맘 두부에서 나오는 두유만 먹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사이트에 들어가서 주문하려고 하니까 그제야 가격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좋은 재료로 만든 좋은 음식은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 머리로도 이해하고 마음으로도 이해하는데 내 지갑은 이해하지 못했다... 나중에 직장인이 되면 꼭 여기서만 두유를 시켜먹는 멋진 여자가 돼야지.
여기서 산 두부 브라우니도 두부로 만든 건지 말하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그냥 일반 브라우니랑 맛이 똑같았다. 집에 와서 아무 말하지 않고 동생한테 먹어보라고 권했는데 '맛있다~ 어디서 사 온 거야?'라고 물어보길래 '응 두부집에서 사 온 두부 브라우니야'라고 하니까 동생도 깜짝 놀라 했다. 평소에 내가 먹는 음식은 맛없는 음식일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애였는데 맛있다고 해주니 그 편견을 조금 없애준 것 같아서 뿌듯하기도 했다. 브라우니는 홈페이지에서 판매하고 있지 않아서 마르쉐에 가야지만 살 수 있는 음식이었다. 다음에 마르쉐에 가면 두부 브라우니로 가방을 가득 채워서 오기로 다짐했다.
원래 정성과 마음을 다해서 농산품을 재배하면 맛도 좋은 건가요? 마르쉐 장터를 혼자 구경하러 갔는데 농부분들이랑 요리사분들이 계속 말도 걸어주시고 먹어보라고 시식도 권해주시고 너무 친절하셔서 먹고 먹고 말하고 또 먹고 말했다. 왜 항상 시장이나 장터에서 한입씩 먹는 음식들은 맛이 좋은 걸까? 그래서 모두들 홀린 듯이 두 손 무겁게 재료들을 사 가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마르쉐 장터의 꽃은 요리팀이라고 생각한다. 채식을 하고부터는 재료에 뭐가 들어갔는지 내가 먼저 물어봐야 했는데 여기서는 모두가 재료를 100% 먼저 알려주신다. 그리고 놀라운 건 채식인들을 배려해서 비건 메뉴를 따로 주문 가능하다는 문구나 달걀 유제품이 들어있는지의 유무를 써놔주셨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안 쓰여있는 가게에 가서 '혹시 여기에 달걀이나 유제품이 들어가 있나요?'하고 여쭤보면 '아! 비건이시구나 저희는 우유가 들어가서 비건 브레드는 아니에요'라고 친절하게 알려주신다. 하도 채식하는 사람들이 마르쉐를 자주 이용하고 채식 식당이나 베이커리 요리사 분들이 여기서 음식을 만들고 판매하시다 보니까 모든 요리사분들이나 농부분들이 비건이나 채식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는 것 같았다.
일본 분이 팔고 계시던 아마자케 두부도넛을 마르쉐에 들어가자마자 제일 먼저 먹었다. 아마자케는 일본식 쌀로 만든 달달한 소스라고 하셨는데 사전에서는 '일본 식혜'라고 나온다. 설탕 대신에 쓰는 쌀누룩 조미료라고 하는데 두부로 만든 튀긴 도넛 위에 하얀색 아마자케 소스를 뿌려주신다. 달달하고 고소한 맛이 나는데 놀랍게도 소스와 도넛 모두 비건이었고 설탕도 들어가지 않은 건강한 메뉴였다.
아마자케 두부도넛을 다 먹고 타파스를 먹었다. 4월 초에 한창 미나리 하면 '어디!!!' 하고 뒤돌아 볼 정도로 미나리에 빠져있었어서 저 칠판에 쓰인 봄 미나리 냉이 페스토란 글을 보고 홀리듯이 사 먹었었다. 위에 올라가는 요거트소스는 빼 달라고 부탁드리고 바게트 위에 페스토와 말린 가지, 연근튀김만 올려서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야채는 좋은 점이 꽤 오래 씹어야지 삼켜진다는 점이다. 오래 씹을수록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채식을 하기 전에는 미나리, 냉이, 가지는 줘도 안 먹을 정도로 야채를 싫어했는데 요즘은 그 맛을 알아서 그런지 천천히 꼭꼭 씹으면 정말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로푸드 팜은 마르쉐에서 유일하게 아는 가게였다. 로푸드 디저트와 채식 버거를 판매하고 있었는데 버거는 배가 불러서 못 먹었고 여기서 파는 로푸드 마카롱 몇 개를 샀다. 계란, 우유 없는 마카롱이었는데 집에 와서 순식간에 세 개를 먹어치웠다. 너무 맛있어... 로푸드 마카롱이기 때문에 오븐에서 굽지 않고 건조기에서 건조해서 만든 마카롱이었다. 익히지 않아도 되는 견과류 가루들을 이용해서 반죽을 만들고 적당한 크기로 건조하면 제법 마카롱이랑 똑같은 모양과 맛을 낼 수 있다. 로푸드 브라우니와 케이크도 있었지만 마카롱으로 욕심을 억눌렀다.
마르쉐 요리팀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았던 폴 브레드에서 점심을 먹었다. 빵과 난을 팔고 있던 중년 노부부 요리사분들의 가게였는데 카레 냄새가 주변에만 가도 솔솔 나서 나도 모르게 홀리듯이 줄을 섰다. 카레도 비건 카레여서 고기나 유제품이 들어가 있지 않은 카레였고 난도 화덕에서 바로바로 구워서 나오는 쫄깃하고 맛있는 난이었다. 인기가 많아서 20분 정도 줄을 섰다가 받은 카레 난은 정말 너무 맛있었다. 카레를 난 안쪽 부분에 살짝 발라주셔서 다른 가게들을 구경하면서 간단하게 먹기 너무 좋았다. 사진을 찍고 있는데 난을 굽고 계시던 요리사분께서 '왜 사람들은 화덕이랑 빵만 사진 찍고 나는 안 찍어줘~?'라고 하셔서 '그럼 제가 찍어드릴게요!!'라고 하고 찍어 드렸더니 너무 좋아하셨다.
지금은 마르쉐 장터가 열리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어떤 가게들은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품절이 되기도 한다. 점점 사람들이 어떻게 이 식재료가 생산되고 만들어졌는지 어떤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서 먹어야 하는지의 중요성을 점점 깨닫고 GMO나 수입농산물을 지양하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고 나도 그 흐름 속에 함께 있다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내가 내 삶에서 채식을 실천해야겠다고 생각한 지 4개월이 막 지났다. 항상 드는 생각은 왜 채식을 일찍 시작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의식하고 내 몸이 원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알고 먹는다는 것이 다행일지도 모른다. 먹는다는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지, 무엇보다 '나'를 이해하지 못하면 알 수 없는 부분인지 깨닫지 못한다면 옆에서 누가 뭐라고 하던 잘 들리지 않는다. 스스로 인지해야 변할 수 있고 누군가가 억지로 등을 떠밀어 줄 수 있는 부분도 아니다.
3월 초에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데 교수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다. '너희는 옷을 살 때도 물건을 살 때도 인테리어를 할 때도 각자의 취향대로 고르고 물건을 사고 공간을 꾸미는데 왜 먹는 음식은 아무거나 막 먹냐?' 너무 공감이 되는 말이라 아직도 그 한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왜 먹는 것은 아무거나 막 먹을까? 내 글을 읽어보는 분들은 내가 지금까지 뭘 먹어왔는지 한번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길 추천한다. 개개인마다 추구하는 음식의 정의가 다 다를 것이다. 누구는 맛이 가장 중요할 것이고 누구는 치킨이 중요할 수도 있다. (채식을 하기 전까진 나는 치킨이 가장 중요했다. 일주일에 두 번은 치킨을 먹어야 했다.) 지금처럼 먹는 것이 나에게 중요한 가치를 주는가? 정말로 내가 원하는 음식을 잘 먹고 있는 것인가? 를 생각해보면 어렵지 않게 답을 찾아갈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것이다. 답은 본인에게 있다. 누구를 참고하는 것도 따라 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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