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적인 아이들은 대상과 사랑에 빠지면 깊이 빠져 지낸다.
공룡에 빠진 푸름이는 공룡 백과사전을 쓸 정도로 깊이 있는 지식을 갖게 되었다.
안철수는 전자 기계를 좋아해 집에 보이는 기계를 분해하고 조립하기를 반복했다.
소설 “개미”를 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개미에 빠져 관찰하고 탐구하던 오랜 시절을 거쳐 개미의 집단생활과 관계, 인간 사회와의 대립을 그린 소설 개미를 편찬했다.
내향적인 아이들은 한번 몰입이 시작되면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는 끈기와 집중력을 보인다. 이 아이들은 대상을 향한 집중력과 끈기가 강해서 외부 세계에 대한 다양한 관심과 호기심에 이끌리는 외향적인 아이들보다 몰입의 정도가 더 강하게 나타난다.
내 딸은 어릴 때부터 그림을 보고, 그렸다. 책을 읽어줄 때도 페이지가 끝날 때마다 꼭 그림을 확인하고 가야 했고, 혼자서 읽을 때에는 글 대신 그림을 보았다. 그림 하나에 담긴 모든 디테일을 꼼꼼히 보며 글을 읽지 않고도 줄거리를 정확히 파악했다. 이야기 자체보다 이야기가 그림으로 표현되는 방식에 더 관심을 보였다.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생각은 모두 그림으로 쏟아냈다. 종이 한 장과 펜만 있으면 두세 시간은 넉끈히 보냈다. 떠들썩한 친구 관계가 빠진 빈자리를 완벽하게 그림이 메워주었다. 세상을 그림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니 언어나 수와 같은 인지적인 발달에는 영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관계의 사전 정의는 “둘 이상의 사람, 또는 사물, 현상 따위가 관련을 맺고 있다.”이다. 관계란 사람과의 관계나 현실 세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사람은 관계의 일부일 뿐이다.
내향적인 아이들은 사람과의 관계가 빠진 자리를 더 넓은 대상 -우주, 동물, 생각 –과 폭넓게 관계 맺고 있다. 한번 몰입이 시작되면 몰입하는 대상에 맞게 현실을 재조정하니 현실과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다.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창의력이 돋보이는 인물 91명의 삶을 조사해본 결과, “이 인물들의 대다수는 청소년기에 어느 정도는 '호기심이 대단하거나 또래들에게는 별 나보이는 관심사에 집중했던' 이유로 사회적 주변부에 머물렀다”라고 한다.
호기심이 많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누구나 쉽게 친해지는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지만 아주 뛰어난 성취를 낸 사람들 중에는 수줍음 많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내향적인 사람이 많다. 위에서 거론한 푸름이, 안철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경우도 어린 시절 빠져 지내던 대상이 성취의 밑거름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들의 몰입은 성인이 되었을 때 창의력과 전문성의 토대가 되었다. 물론 내향적인 사람만 몰입과 집중력을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주변 세계의 동향에 둔감한 내향적인 성향을 가졌다면 관심사에 집중하기에 더 유리하다. 현실과 덜떨어져 보이던 늦된 아이들이 유청소년기의 고독한 시간, 대상에 대한 무조건적인 집중력을 통해 비교적 어린 시절 인생의 방향을 잡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