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아이들을 지켜보니 재능을 타고나지 않은 아이는 하나도 없고, 누구나 즐거워하고 더 열심히 하는 분야가 있다.
어릴수록 경향이 분명하다. 어려서부터 짧은 시간이라도 아이와 진심으로 상호 작용하는 시간을 가져왔다면 아이가 집착하는 분야를 눈치챌 수 있다. 그 안에 재능의 씨앗이 숨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재능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하는 경우를 개인적으로 추측해 본다면 다음과 같은 원인이 아닐까 싶다.
첫째, 아이가 자발성을 가지고 놀 시간이 없다.
재능을 발견하기 위한 선결 조건은 풍부한 시간이다.
모든 육아, 교육 전문가들의 일관된 의견 중 하나는 ‘아이를 심심하게 두라’이다. 선진 교육 기관이라는 곳에서는 숙제까지 제한하며 자유로운 시간을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놀 친구가 없다고? 친구는 노는 대상의 일부일 뿐이다. 온 세상이 놀이 상대이다. 어른이 간섭하지 않고 전적으로 이 시간을 스스로 요리하게 두면 너무 심심해서라도 적극적으로 탐색한다. 건강한 밥 해주고 칭찬해주면 그만이다.
실상은? 아이의 여유 시간은 엄마의 계획으로 꼼꼼히 짜여진다. 계획 사이사이에 선물처럼 30분, 1시간을 ‘후하게’ 넣어준다. 짧은 토막 시간에 “어머니, 나는 이 짧은 시간도 효율적으로 운영하겠어요” 하는 아이는 아무도 없다. 다음 일정이 있는 이상 짧은 휴식에는 널브러져 쉬는 것이 최선이다. 확실하고 신속하게 기분 전환하는 방법? 휴대폰과 게임이 이렇게 급부상한다.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시간을 최소한 하루 3시간 이상씩 ‘만들어 줬다’. 학기 중에는 여유 시간 확보가 어려워 최소한의 예체능 수업 외에는 그 무엇도 보낼 수 없었다. 놀이 시간의 대부분은 엄마를 ‘불쾌하게’ 만드는 활동들이다. 일단 방문을 닫는 것으로 시작한다. 침대 위에서 부스러기 날리며 과자를 먹기도 하고 유튜브를 시청하기도 한다. 독서의 98%는 만화다.
숙제는 혼나지 않을 정도로, 자기 직전에 해치운다. 99%의 뻘짓 속에 간간히 빛나는 1%의 보석 같은 시간. 이렇게 어려서부터 훈련이 된 딸은 하루에 1초도 낭비하지 않고 알차게 놀 줄 안다. 충분한 여유 시간에 자기 힘으로 놀이를 이끌게 둔다면 굳이 재능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아이는 어른이 상상도 못 하는 추진력과 열정으로 자신의 관심을 무섭게 확장시켜 나갈 것이다.
놀게 하라. ‘스스로의 힘으로’ 놀게 하라. 놀이와 자유 시간은 자식을 위한 최고의 투자이다. 돈도 들지 않는다. 산란한 내 마음만 다스리면 된다. 왜 이렇게 쉽고 편한 길을 놔두고 어렵고 비싼 길을 가는지.
둘째, 아이의 강점을 알기는 하는데 즐기기 전에 바로 전문 교육으로 연결시킨다는 것이다.
농구 선수 마이클 조던은 “가르치지 말아라. 즐기는 것이 먼저다 … 좋아서 미치면 알아서 배운다. 기술부터 배우면 좋아하는 마음이 사라진다”고 조언한다. 알아야 잘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해야 잘한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공부도 못하고, 그저 집에서 조용히 상상을 즐기던 스티븐 스필버그의 엄마는 “네 상상력은 세계 최고”라며 정체 모를 아이의 취미를 격려했다. 아이가 상상을 ‘유의미하게’ 확장하도록 글짓기를 시키거나, 다른 영화감독을 소개 주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는 없다. 그저 그 세계를 즐기고 사랑하도록 격려할 뿐이었다.
전문가의 목적은 ‘잘하게 만드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남들보다 더 잘할 수 있지만, 기술은 절대로 열정을 따라잡을 수 없다. 반면 좋아서 하는 데에는 아무 조건이 없다. 좋으니까 열심히 하고, 좋으니까 잘하고 싶다. 미하이 칙센트 미하이는 “몰입의 즐거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놀이 자체가 좋아서 두는 체스는 나에게 자기 목적적 경험이 되겠지만
만일 돈을 걸고 체스를 두거나 순위에 오르기 위해 체스를 둔다면
똑같이 두는 체스라도 자기 외부의 목적을 실현하려는 행위가 되어
외재적 목적성을 강하게 띌 수밖에 없다.
외부의 다른 목적을 달성하려는 의도보다는
일 자체가 좋아서 하는 사람이 자기 목적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자기 목적성을 가진 사람은 원하는 일을 하는 것 자체가 이미 보상이 되기에
물질적 수혜라든가 재미, 쾌감, 권력, 명예 같은 별도의 보상이 필요하지 않다.
가정생활에서, 남들과 어울리면서, 먹으면서,
심지어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혼자 있을 때도 몰입을 경험하므로
외부적 보상이 없어도 무방하다.
이런 사람은 더 자율적이고 독립적이다.
딸아이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딸이 곧잘 그림 그리는 것을 보면 주변 사람들이 ‘밀어주라’고들 조언을 했다. 내가 가장 크게 밀어준 행위는 ‘홀로’ ‘자유롭게’ 그리도록 놔둔 것이다. 딸은 초등 미술에서 인정받는 방향과는 다른 그림을 그렸다. 눈과 귀를 닫고 아이가 원하는 대로 놔두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기술보다 감성, 열정, 자기 세계가 더 중요하다’고 어렵게 마음을 다졌다. 유명한 미술 선생님에게 아이를 맡기면 쉽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물살을 거슬러 역행하는 건 이렇게나 어렵다.
자신의 작품 세계를 일군 예술가들은
예외 없이 어린 시절에 키운 자기만의 감성이 있다.
동물의 형상을 모티브로 한 한 북유럽 가구 디자이너의 성장기를 읽어보니 숲에서 동물을 관찰하고 함께 뛰어놀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에 최초로 컴퓨터 기술을 도입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어린 시절 컴퓨터와 공상에 빠져 지냈다. 기술보다 열정과 자기 세계가 더 중요하다.
셋째, 유치한 수준을 봐주지 못하는 것도 아이의 재능이 사장되는 원인 중 하나이다.
어떤 재능도 처음부터 화려하게 시작하지 않는다. 그림에 재능이 있는 아이라고 처음부터 형체가 분명한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음악 천재라고 5살 때부터 작곡을 할 리 없다. 타고난 천재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평범한 아이들은 착실하게 밑바닥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쌓아간다.
그림에 재능이 있는 아이가 맨날 촌스러운 꽃분홍 공주 드레스만 입겠다고 고집을 피울지 모른다.
체육에 재능이 있는 아이가 잠시도 몸을 쉬지 않고 있을지 모른다.
인체에 재능이 있는 아이가 대변 소변을 파헤치며 탐험할지 모른다.
재능은 절대적으로 '그 나이 때에 맞는 수준과 과정'에 맞게 발전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세기의 천재나 영재들은 재능에 대한 편견을 갖게 한다. 하워드 가드너 박사는 아이의 재능이 발현되기까지 10 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영재들이 우리 아이 재능을 흐릿하게 해서는 안된다.
꽥꽥거리며 노래 부르는 아이에게 재능 없다고 하지 말자. 지도 편달하지 말자. 편견 어린 말을 하지 말자. 비난하지 말자. 절대적으로 유치하고 말도 안 되는 온갖 서툰 짓이 지나고 지나야 소위 '결과물'이 나온다. 그 결과물이 대단하지도 않다. 며칠 전보다 봐줄 만하고, 작년보다 나으면 충분하다. 느릿느릿 거북이처럼 보이는 결과물이 토끼를 이길 수 있다. 기억하자. 현재 한심해 보이는 아이의 수준이 아니라 엄마의 비하하는 발언이 아이의 재능을 잘라 버린다.
마지막으로 부모가 재능을 강요하는 경우이다.
좋아하는 게 있지만 밥벌이가 안되니 방향을 바꾸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4차 산업 시대를 맞아 미래의 직업은 지금과 전혀 다른 형태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생산 효율이 높아지면서 기존 직군이 사라진다. 반복되는 업무는 로봇이나 인공 지능이 대체한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1인 기업, 프리랜서가 트렌드가 된다. 의학은 치료가 아닌 양생의 개념으로 바뀐다. 전략적인 판단이나 창의력같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최상위 분야의 직종만 유의미해진다. 요는 미래 사회를 지금의 상식으로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두가 동의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사유, 창의력, 열정, 양심만이 직업으로서 의미를 지닌다고 전망한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 예체능 전공자는 공부를 못한다는 편견이 팽배했다. 하지만 실용적인 기술로 무장한 예체능 전공자들이 사회에 나오니 상당수가 회사나 나이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일한다. 한 때는 기초과학 분야가 시들하더니 이제는 기초 없는 발전은 불가능하다며 다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양생과 관리로 치료의 개념이 바뀐다면 의학이나 약학의 위상도 지금과 같을 리 없다.
어떤 재능도 사회에서 쓸모없는 것이 없고, 현실 세계와 결부시킬 수 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다면 누구나 잘하는 것과 사회가 요구하는 바를 현명하게 결합시키며 살아갈 수 있다. 미래 사회는 이 생각을 더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행복하고 자존감이 강한 사람들을 보면 기존의 직업이나 사회의 기준이 아닌 자신의 영감과 열정을 따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멋모르는 아이보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어른들의 직업 프레임이 아이의 잠재력을 제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