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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트앤노이 Jan 02. 2021

세상 끝 절벽에서 만난 네가 너무 아름답다

눈부신 세상 끝에서, 너와 나

눈부신 세상 끝에서, 너와 나   All the Bright Places (2020)


며칠 전보다 부쩍 추워진 날씨는 자연스레 따뜻한 것을 찾게 합니다. 따뜻한 코코아, 온기가 퐁퐁 올라오는 이불속 같은 것들이요. 그리고 마음이 따뜻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영화를 볼 때에도 스릴러나 범죄물 장르보다는 마음이 몽글몽글하고 따뜻한 이야기에 더 관심이 가는 것 같습니다. 풍요 속의 빈곤(ㅎㅎ)이라는 곳에서 따뜻한 이야기를 찾았습니다. 좋아하는 배우 엘르 패닝으로 인해서 더 눈부시게 빛나는 영화 <눈부신 세상 끝에서, 너와 나>입니다. 


핀치(저스티스 스미스)는 높은 다리 위 난간에 서있는 바이올렛(엘르 패닝)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난간 위에 위태롭게 서있는 바이올렛을 가까스로 내려오게 합니다. 그 날 이후, 핀치의 모든 관심사는 바이올렛이 되었습니다. 교통사고로 베스트 프렌드였던 친언니를 잃고 그저 버티며 살아가는 바이올렛을 밝은 곳으로 끌어내려는 노력을 하게 되죠. 그리고 둘은 수업 과제로 “인디애나의 여러 장소를 헤매어보고 경이로운 장소에 대한 보고서 제출”을 함께 하게 되며 가까워지고 연인이 되죠. 둘은 경이로운 장소를 찾아다니고, 바이올렛을 위한 핀치의 노력이 더해지며 그녀는 차츰 변하고, 세상 속으로 다시 걸어 나옵니다. 그렇지만 사실 핀치 또한 스스로 큰 문제를 감싸 안고 있었습니다. 힘든 바이올렛이 치유되길 바라면서 정작 자신의 아픔은 치유하지 못했던 핀치. 학교를 자주 결석하고 친구들 사이에서 “좀 특이한 괴물”로 불리던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당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로 인해 갑자기 멍 해지거나 어디론가 훌쩍 떠났다가 돌아오면서 학대와 불안전한 가정환경의 상처가 만든 아픔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며 살아왔습니다. 바이올렛도 그의 아픔을 알게 된 후, 핀치가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밝은 곳으로 끌어내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좀처럼 열리지 않습니다.


영화의 원제는 “All the Bright Places”입니다. “모든 밝은 곳”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한국어로 된 제목인 “눈부신 세상 끝에서, 너와 나”가 훨씬 더 잘 어울리는 이름 같습니다. 서로가 상대에게 치유의 약물처럼 퍼져가며 아찔한 다리 위, 두 소년 소녀가 서있던 세상 끝 절벽이 눈부신 곳으로 차츰 변화하는 모습을 가장 잘 담은 것 같습니다. 마케팅적으로도 끌리는 제목을 사용했다고 생각합니다. 



헤맨다는 것

두 사람이 경이로운 장소를 찾아 헤매는 행위가 모든 변화의 시작점이 됩니다. 인간적으로도, 이성적인 느낌으로도 바이올렛에게 다가가고 싶었던 핀치에게 좋은 기회를 주었고, 바이올렛의 마음을 변화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니까요. 헤맨다는 말은 삶 속에서 그리 좋지 않은 행위로 다가옵니다. 누구든지 헤매는 과정을 겪고 싶지 않아 하죠.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보면 헤매었기 때문에 소년 소녀도 마침내 밝은 곳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 말은 누구나 다 아는 아주 기초적인 철학 같은 느낌이지만 실제 삶 속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특히나 스스로가 헤매는 구간에 서 있는 경우엔 더 그렇습니다.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처럼 헤매는 것은 힘든 과정이지만, 삶 전체로 놓고 보면 밝은 곳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영화를 관통하는 주요 메시지가 이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All the Bright scenes

소년 소녀가 과제를 위해 찾아갔던 장소들은 헤맴에 대한 의미들과 동시에 영화의 메시지를 포함합니다. 그리고 이 장면들과 장소는 영화에서 가장 밝게 빛난다고도 생각돼요. 

어느 시골마을의 아주 작은 롤러코스터를 타고 행복해했던 두 친구의 모습에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됩니다. 롤러코스터는 여러 굴곡이 있고, 그 굴곡을 오르내릴 때의 긴장감과 공포감은 크죠. 그렇지만 결국 그 모든 굴곡을 경험하고 롤러코스터가 멈추었을 때, 두 사람은 너무나도 행복하게 큰소리로 웃습니다. 헤매었던 삶의 굴곡을 어떻게든 이겨내고 나면 그 뒤에 오는 감정은 환희와 기쁨일 것입니다. 

인디애나에서 가장 높은 곳은 해발 383m로 사실 동네 뒷산 정도 되는 곳이라서 그리 힘들이지 않고 올라갈 수 있죠. 그곳을 기념하는 바위 위에 올라선 둘. 높은 곳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힘들이지 않고 올라갈 수 있는 그곳은 어려움은 생각하기 나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았습니다. 정상에 올라가는 과정은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별거 아니란 생각이요. 

깊은 호수는 두 사람이 찾았던 곳 중 가장 심오한 뜻을 가진 곳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깊은 호수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칫하면 영영 나를 잠식할 수 있는 곳이죠.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다면 잠깐의 헤맴으로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잠식될 수 있죠. 이 커다란 헤맴의 공간이 두 사람이 다른 길을 걷는 장치가 되기도 합니다. 후반부에 어떤 이유로 인해 이 호수에서 마르코 폴로(둘이 같이 했던 장난)의 “마르코”를 외치는 바이올렛을 보면 마음이 조각나듯 아픈 느낌을 받습니다. (엘르 패닝이 연기를 참 잘하기도 합니다.) 어떤 장면인지 직접 보시면 저와 비슷한 느낌을 받으실 것 같습니다. 


우리는 좋은 어른이 되어야 한다

이 영화는 두 소년 소녀의 로맨스보다는 이들이 겪는 환경과 문제에 좀 더 초점이 맞춰졌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를 자극적이고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나 어렴풋이 짐작 가는 행동과 감정으로 연출하며 안타까움을 증폭시키는 영리한 연출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좋은 어른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상처 받은 아이들은 너무 일찍 성숙하고 그 모습마저 안타깝습니다. 몇 해 전 방영했던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보며 좋은 어른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아이에겐 좋은 어른이 필요합니다. 성장 기간 동안의 가정문제와 그로 인한 우울감, 불안감, 가정 폭력은 눈부시게 빛나는 핀치라는 소년을 눈부신 세상 끝이 아닌, 세상 끝 절벽으로 몰고 가니까요. 그의 아버지가 좋은 어른이었다면 핀치는 절벽으로 내몰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좋은 어른도 없이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내면의 문제 앞에서 핀치는 바이올렛이 치유되길 바란 것입니다. 그녀를 보며 사춘기 아이들이 그렇듯 동질감을 느꼈고, 그녀가 나아가는 모습을 보며 자신도 치유되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도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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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RDIE

이 영화에서 반짝이는 엘르 패닝은 2001년에 그의 언니 다코타 패닝이 출연한 <아이엠 샘>으로 데뷔했습니다.

 다코타 패닝의 아역시절을 연기한 그녀는 연기 경력이 무려 20년이나 되는 중견배우 같은 느낌입니다. 2019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으로 선정되었었는데, 그녀 나이 21살이었습니다. 역대 최연소 심사위원이라고 하죠. 커리어에서 볼 수 있듯 제게는 믿고 보는 배우입니다. 여러 작품에서 다져온 탄탄한 연기로 불안하고도 밝았던 내면을 가진 바이올렛을 잘 소화해낸 것 같습니다. 


넷플릭스의 하이틴 로맨스로는 <키싱 부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퍼펙트 데이트>, <반쪽의 이야기>등이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반열에 합류한 <눈부신 세상 끝에서, 너와 나>는 다른 작품들처럼 유머스럽진 않지만 인디애나 주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은 영상미와 그에 어울리는 OST가 색다른 느낌을 주는 영화입니다. 넷플릭스에서 보실 수 있어요. 따뜻하고도 힐링이 필요한 시간에 추천드립니다. 


주관적 평점 : ★★★


* 이미지 출처 : <눈부신 세상 끝에서, 너와 나>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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