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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고 Nov 04. 2020

태동의 진면모

태동이다! 태동이 나타났다!

임신 16주에 접어들어 2차 기형아 검사를 기다리고 있다. 1차 기형아 검사 때는 맘카페를 둘러보며 어떤 검사를 하는지, 어떤 경우에 문제가 되는지, 문제가 있는 경우에 다음 스텝은 어떻게 되는지를 찾아봤는데 요즘은 부쩍 안정감이 많아진 덕분에 그런 걱정들을 할 부정적 여유가 생기지 않는 것 같다. 그 이유 중에 하나로 최근 나에게 종종 찾아오는 미세한 태동이 있다.


'물고기가 헤엄치는 느낌, 뽀글뽀글 하는 느낌'


맘카페에서는 첫 태동의 느낌을 대략 이렇게 표현한다. 임신을 3주차 말-4주차 초에 알아채고 피검사를 했을만큼 성격이 급하고 민감한 편인 나는, 이 느낌이 빨리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14-15주차 부터 뱃속의 모든 느낌에 온갖 신경을 곤두세웠다.


빠른 사람은 16주, 늦어도 20주차 쯤에는 태동이 시작된다는 맘카페 피셜을 고려할때 역시나 조금 빨랐던 것일까. 갑갑하게도 1주 가까이 애꿎은 속방구만 자주 마주쳤다. 이로 인해 내가 혹시 태동과 속방구를 헷갈리나? 라는 고민에 까지 이르렀던 차에 16주에 접어들었고, 지난 금요일! 드디어 회사에서 앉아 일하던 나는 FINALLY, '이 느낌은 필시 태동!!!'이라는 확신을 만날 수 있었다.


'물고기가 헤엄치는 느낌'이나, '뽀글뽀글'에 대한 해석을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다르게 해왔던 것일까. 나의 태동은 내가 상상해온 것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뱃 속에서 태동이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배의 비교적 앞쪽, 아랫배의 앞쪽의 국소 스팟에 안에서부터 밖으로의 불규칙한 떨림이 있었고 계속해서 나타나지는 않았으며 밤이되어 침대에 누우면 더 격렬한 움직임을 전했다. 그리고 그 때 하이베베를 대어보면, 어김없이 그곳에서 아이의 심장소리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이베베로 만나는 자궁 입주자


태동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신기한 것보다 뱃 속에 있는 생명체와 내가 정말로 연결이 되어있다는 것을 재차 확인 시켜 준다는 점에서 임신 중 겪어야만 하는 많은 수고로움들을 견디는데 큰 동기부여가 된다.


예를 들면 임신 초기 부터 새벽에 몇번씩이나 화장실을 가야해 잠을 깨는 데, 한동안은 '방광이 왜이래' 라며 짜증이 나던 것이 요즘은 '아기를 위한 공간을 내어주자면 어쩔 수 없지'라는 생각으로 태연해지는 부분들이나, 흡연구역을 지날 때 숨을 참는 것이 혹여 아이에게 불편함이 될까 조금 더 돌아가더라도 흡연 구역을 피해 걸어다니는 습관, 내가 감기에 걸려 열이 나면 내 자궁에 세 들어 사는 이 아이도 위험해질 것이기 때문에 답답하지만 찬바람 부는 날엔 옷을 좀 더 챙겨 입는 습관 같은 것들을 지식에 기반한 생각으로 말미암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책임감을 기반으로 한 본능으로 하여금 생기게 하는 것이다.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그가 가진 아직은 작지만 다부진 건강만으로도 나에게 즐거움이 되고 책임감이 되어준 이 날을 오래 오래 기억하고 좋은 부모가 되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30년 남짓 세상을 살아오며 이제는 어느정도 세상이 돌아가는 것들을 구석구석 듣고 봐서 안다고 생각했던 나의 자만을 반성한다. 나에게 매일 매일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주는 앉은 키 10cm 남짓한 아이에게 고마움을 담아 오늘도 최상의 룸서비스를 선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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